이미지=한송희 에디터

소록도 시편 1

최하림


살갗을 간질이는 아지랑이 속에서
오른쪽 발가락이 또 하나 떨이지고
내일이면 왼쪽 발가락도 떨어질 것이다
소록도에서는 다들 발가락이 떨어진다
저기 지팡이를 짚고 가는 문둥이가 누군지,
고향이 어딘지, 뉘 집 자식인지 몰라도
여기서는 모두 발가락이 떨어진 문둥이다
날마다 아픔을 발가락에 싸서 보내는
문둥이들은 오늘도 소록도 남쪽 끝,
공적비들이 국한 영문으로 씌어진 중앙공원을
지나 어두워지려는 숲길로 의지하며 간다

ㅡ『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문학과지성사, 1998)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이 세상에 많고 많은 병이 있는데 왜 한센병(일명 나병)이란 것이 있을까. 예전에는 ‘문둥병’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이 병명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하여 쓰지 않는다. 최하림(1939~2010) 시인이 이 시를 썼던 시대에는 한센병이라 하지 않고 나병이나 문둥병이라고 했다. 외형으로도 무서움을 주고 전염성이 있으므로 구한말에 조정에서는 자혜의원을 만들면서 소록도를 특별히 나환자들을 격리ㆍ수용하는 섬으로 지정하였다. 그래서 소록도는 우리의 섬이 아닌 그들의 섬이 되었다. 

 그로부터 11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정든 고향을 떠나 와 이 섬에서 남은 생을 산 사람, 즉 이 섬에서 죽은 이들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 통계자료가 있겠지만 온갖 사건이 다 있었기에 정확한 숫자 파악이 어려울 것이다. 자, 그런데 시인은 그들의 아픔을 골똘히 생각해 연작시를 7편을 썼다. 발가락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이 작두에 잘리는 아픔보다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는 특히 남들 앞에 떳떳이 나설 수 없기에 수치심, 소외감, 억울함, 그리움 등이 복합적으로 엄습해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을 터이다. 이 섬의 지배자였던 관리(官吏)들의 공적비는 즐비한데, 그들은 다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이기에 나환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즉, 그들은 때가 되면 이 섬을 떠났다. 

 나환자 시인 한하운도 시 「전라도 길」에서 이렇게 썼다. “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꼬락이 또 한 개 없다”고. 피부가 화농하여 고름이 흐르고 심해지면 손가락과 발가락이 결절되는 증세가 온다. 지금은 치료제가 많이 개발되어 그렇게까지 심한 환자는 없다고 하지만 시인은 그들의 아픔과 설움을 보듬어주고자 이 시를 썼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