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주식 불개미

이경옥


증권사 객장 전광판에 개미들이 들붙었다 
찌라시 ‘카더라 통신’ 시시각각 수신하며 
호재성 명품 고르느라  
촉각 곤두세운다 

눈독 들인 불기둥은 한발 빨라도 이미 늦어
붉은 상향 화살표로 쭈욱 쭉쭉 올라가고 
잠깐만, 급하게 올라탄다
정말 잠깐 멈춘 그새 

첫사랑 떠나보낸 듯 놓치고 땅 칠 바엔 
무조건 가는 거다, 못 먹어도 Go, Go다 
끝 간 데 어디인지는 몰라 
너도 나도, 그 아무도 

그렇게 잡은 상투 화살표가 뒤집힌다
자진한 ‘영끌빚투’ 본전은 어느 천년 
불개미 환골탈태가 
지척이듯 멀어라 

 * 영끌빚투: 영혼을 끌어다가 빚을 내어 투자한다는 속어벽과 보드 블록.

ㅡ『김천문학』(한국문인협회김천지부, 2023)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증권회사 객장에 자주 가보곤 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쌍용이라는 회사에 다녔는데 명동과 멀지 않은 을지로3가에 회사가 있었다. 명동의 동서증권에 학교 선배 한 분이 계셨는데 점심을 같이 먹고자 백병원 앞을 거쳐 그곳에 가곤 했다. 대형 전광판의 숫자들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는데, 그 앞에는 주로 연세 높은 분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소일삼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셈인데, 이상하게도 표정이 다들 별로 밝지 않았다.

 시인은 주식 시세가 널 뛰는 객장의 풍경을 아주 재미있게 묘사하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전산화가 거의 돼 있지 않아서 증권회사에 직접 와서 사고팔고 하였다. 그러니 그곳에서 일희일비하는 것이다. 어떤 분은 고함을 지르고 어떤 분은 장탄식을 한다. 어떤 분은 환호성을 지르고 어떤 분은 웃으면서 박수를 친다. 그런데 주식을 해서 부자 되었다거나 대박 났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반대로 다 잃었다, 쪽박 찼다, 집까지 날렸다란 말이 그곳에서 종종 흘러 나왔다. 

 시인이 묘사한 객장 풍경이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주식’에 ‘투자’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재에 밝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데 나는 그런 재주가 0이다. 그래도 주식이 우리 경제가 돌아가게끔 하는 윤활유이니 시인의 말마따나 “첫사랑 떠나보낸 듯 놓치고 땅 칠 바엔/ 무조건 가는 거다, 못 먹어도 Go, Go다”. 하지만 재산이 거덜나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 주식은 여윳돈이 있으면 해도 되지만 재미로 시작해도 그 늪은 깊다. 주식 불개미가 되면 안 되는데, 패가망신한 사람을 여럿 보았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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