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첫눈

이승하

  
세상에 처음 아기가 태어난 날
첫눈이 펑펑 내립니다.

세상에 처음 태어난 아기가 우는 날
첫눈이 녹아 눈물이 흐릅니다. 
눈물이 흘러내려 따뜻한 세상입니다. 
  
눈물이 녹아 낙숫물이 떨어지고
눈물에 씻겨 한결 고운 세상입니다. 
눈물처럼 가슴 후련케 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에 처음 아기가 태어난 날 
눈물을 펑펑 흘립니다. 

ㅡ『제2회 KBS 방송문학상 수상작품집』(KBS, 1987)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밖으로 나와 처음 하는 일이 펑펑 우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한자로는 고고지성(呱呱之聲)이라고 한단다. 10개월 동안 엄마의 따뜻한 자궁 안에서 잘 지내다가 바깥세상에 나오면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렇게 우는가 보다. 세상을 향한 신고식이라고 할까, 대성통곡하면서 자기 존재를 알린다고 볼 수도 있겠다. 세상살이의 험난함을 잘 알고 있기에 미리 겁먹고 운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아이가 태어난 날이 마침 첫눈이 온 날인데 그날 눈이 꽤 많이 왔다고 생각해보았다. 그래도 첫눈이니 빨리 녹을 것이다. 눈이 녹은 물과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같은 눈물로 간주하고 동시를 썼다. 

 중편소설 「설산」에 이 동시가 나온다. 뇌성마비를 앓아 장애인이 된 소녀가 쓴 자작시로 나온다. 눈물(tears)의 기능 중 우리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것이 있다. 눈물에는 슬픔의 눈물도 있지만 기쁨의 눈물도 있다. 울면 답답함이 풀리기도 한다. 울음을 터뜨림으로써 카타르시스가 해소되는 것이다.

 아기들은 모두 축복을 받으면서 태어나야 하는데 어른들의 잘못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낙태수술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두고 나라마다 의견 차이가 있다. 아기들의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는 결코 선진국이 아니다. 첫눈이 많이 내린 날 태어난 아기야 복 많이 받으렴. 저 눈 선물을 받은 대지처럼.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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