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공에의 의미
ㅡ서정주에게

황순원


이 사람은 서라벌 한 절간 우물 속에다 용을 기르되 한갓 강고기나 다를 바 없이 기르고

이 사람은 송도땅 깊은 산속 한 폭포에다 잉어를 기르되 폭포 위나 밑이 아닌 바로 폭포 줄기 한복판에서 살게 하고

이 사람은 한성 한 선비집 사랑방 병풍 속에다 자짜리 붕어를 기르되 먹이 없이도 살찌게 하고

이 사람은 서울 변두리 마을 자기 집 뜰 안 연못에다 비단고기를 기르되 있게도 기르고 없게도 기르고

ㅡ『황순원전집 11/시선집』(문학과지성사, 1985)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소설가 황순원이 쓴 시인 서정주에 대한 인물론이기도 하고 서정주 작품론이기도 하다. “이 사람은” 하고 네 번 말하면서 서정주 당신이 이런 인물이라고 평하는데, 다 고기를 기르는 사람이다. 이 사람 서정주는 절간 우물에다 용을 기르는데 한갓 강고기나 다를 바 없이 기른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을 강고기나 다를 바 없이 기른다니 무불통지다.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서정주가 잉어를 폭포 줄기 한복판에 살게 하니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한다. 병풍 속에다 붕어를 기르는데 어떻게 그 붕어가 살이 찌는지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한다. 마지막 연은 자기 집 뜰 안 연못에다 기르니 현실의 장소인데 “있게도 기르고 없게도 기른다”. 서정주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요 용왕이요 천지신명이다. 시의 제목인 ‘공에의 의미’는 ‘空에 대한 나의 생각’이 아닌가 한다. 서정주는 재료가 없는데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니 언어의 연금술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최고의 소설가가 최고의 시인을 이렇게 평가했다고 본다. 

 황순원과 서정주는 1915년 같은 해에 나서 2000년 같은 해에 작고하였다. 창작의 장르는 달랐지만 서로 최고라고 인정했을 것이다. 해설자는 개인적으로 황순원과 쌍벽을 이루는 소설가가 김동리라고 생각하는데 서정주와 쌍벽을 이루는 시인은 이 땅에 없었다. 쓰지 말아야 할 작품을 써서 생에 큰 오점을 남기긴 했지만 서정주의 시를 뺀 문학 교과서에 대해서는 생각을 다시 해보아야 한다. 우리 시문학사에서 서정주를 빼면 시문학사 자체가 공이 될 수 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