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시와 정치

문봉선


시와 정치는 닮은 점이 많다고?
닮은 게 아니라 한 몸이라고?
먼저 말만 먹고 산다고?
냄새도 피우면 안 된다고?
개보다 사람 위하는 일이라고?
가장 낮은 곳에서 섬겨야 한다고?
가장 높은 곳에서 이상을 가져야 한다고?
보편적인 마음을 얻어야지,
고루고루 감동을 주어야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으로 쓰는 언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몸으로 비비는 언어
몸으로 웃는, 몸으로 우는 언어
긍지로 배부르다.
수시로 몸을 바꾸어 입는 옷.
넣었다 뺐다 조석으로 바꿔입는 사람 맘
붙들어 맨 뒤엔 광대짓을 해야 한다.

정치에 등불을 거는 직업을 천형으로 알고 쓴다. 

ㅡ『하늘눈물』(시선사, 2023)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이 시를 쓴 문봉선 시인은 과천시의회의 의원과 의장을 역임했고 경기도 의장단협의회 감사와 경기도 의장단 중부권협의회 부회장을 한 바 있으므로 이런 제목의 시를 쓸 자격이 충분히 있다. 시를 쓰다가 정치판에 뛰어들어 보람을 느끼기도 했겠지만 자존심이 상하거나 상처를 받은 적도 꽤 있었을 것이다. 의회주의와 지방자치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지역을 지키는 정치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정치가들이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정치가와 조폭이 닮은 점’ 같은 개그가 돌아다닐 정도다. 

 시인은 시와 정치가 닮은 점을 아주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간다. 시도 정치도 가장 높은 곳에서 이상을 가져야 하고, 보편적인 마음을 얻게 하고, 고루고루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이상론이다. 강단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는 본인은 ‘상상력’을 강조하면서 사실 그대로 쓰면 수기나 르포지 문학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시와 정치가 같은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가상, 허구, 상상 같은 것을 동원해야 하는데 적나라하게 말하면 시인은 사기꾼이다. 서정주가 “애비는 종이었다”고 한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이성복이 한 “어느 날 갑자기 X이 서지 않는다”란 말도 믿어선 안 된다. 

 총선 일자가 다가오니까 이합집산, 유유상종, 중구난방, 엉망진창, 오리무중 같은 한자성어가 생각난다. “수시로 몸을 바꾸어 입는 옷/넣었다 뺐다 조석으로 바꿔입는 사람 맘/붙들어 맨 뒤엔 광대짓을 해야 한다”는 시인의 말이 옳다. 정치권의 혼란은 국력의 약화를 가져온다. 부정직한 정치인은 거짓말로 거짓말을 막는다. 시인은 사기를 칠 수 있지만 정치인은 사기를 치지 말아야 하니까 시인과 정치인은 달라야 한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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