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연길은 영결이다

박태일


긴 봄 장춘에서
마산까지 공부하러 왔던 겨레 학생
세무서 공무원에 부동산업까지 겸한다는
아버지 뱃심을 닮아선지 활달했던 처녀
한족 유학생보다 배달말 못했던 영결이가
한국 온 지 석 달 자랑스레 내게 가르쳐준 것은
선생님 한국 극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희극 비극 야동……
어느 날 전자편지에 나 영결이다라 써 나를 웃기더니
졸업하고 고향에 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던가
사업하러 북경에 상해에 있다는 소식을 받았건만
여섯 해나 더 지난 오늘 연길도
십칠 층 아파트 밖 뜨거운 불빛을 내려다보노라니
문득 나 영결이다…… 다시 웃으며 편지를 줄 것 같은 아이
장춘이나 길림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상해 어느 무역상 사무실 옆자리를 얻었을까
저 터가 영결이가 걸을 곳이다
영결이 아버지가 거쳐 왔던 길
딸에게 배달말을 가르치지 못한 아버지가 
다시 아침을 쬐며 걸어갈 저 터 위로
연길은 내게 영결이다
스물넷 장춘 겨레 유학생
영결이가 웃다 떠들다 간 마산 연구실 창밖 한 장 어둠이
이곳 연길 밤까지 따라와
그림엽서로 포개진다.

ㅡ『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산지니, 2023)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박태일 시인이 1991년 8월에 처음 연변 땅을 밟은 이래 코로나 사태 발발 직전까지 몇 번을 간 것일까? 연변 조선족 문학과 북한 문학에 대한 시인의 관심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연변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이번에 낸 시집은 30년 넘는 세월이 농축되어 있는 아주 뜻깊은 시집이다. 연변에서는 남편을 나그네라고, 아내를 안까이라고 한단다.

 이 시는 마산에 있는 경남대학교에 유학을 온 영결이라는 장춘 출신 여학생과의 에피소드를 갖고 쓴 것이다. 전자편지에 “나 영결이다”라고 썼으니 존댓말을 할 줄 몰랐다는 얘기. 이 시가 시사하는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딸에게 배달말을 가르치지 못한 아버지”다. 이민자로서 먹고사는 데 바빠서 자식에게 모국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은 이 집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에는 한인학교가 없으니 학교에 가면 다 영어로 말한다.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소련의 방침으로 학교 내에서는 한국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일본에는 그래도 한인학교가 있지만 재일교포 문단을 대표하는 대다수 작가는 일본어로 작품을 발표했다.

 박태일 시인에게 연길은 제자 영결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타국(중국)이지만 내 동포들이 사는 땅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우리 민족이 국경을 넘어가서 터를 다졌다. 그런데 어떤 경우 漢族보다 배달말을 못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근년에는 한류 열풍이 중국과 중앙아시아 쪽에도 불어서 다행이다. 연길에서도 <조선어문>를 가르치는 학교에 다녔다면 선생님께 “나 영결이다”라고 쓰지는 않았을 텐데, 영결의 아버지가 너무 무심하였다. 박태일 시인이 앞으로 좋은 연구 성과를 내면 좋겠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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