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엄마 쌤께
ㅡ스승의 날에

이원만


말도 느리고
행동은 더 느린 저를
수업시간도 노는 시간도
조용조용
친구들 사이에 숨어 있는 저를
어떻게 찾아내셨어요?

땀 송송 나면서도
치렁치렁 긴 머리
어쩔 줄 몰랐는데
고무줄로 묶어주시니 시원했어요

여섯 살 때부터
엄마가 없어 슬펐는데
머리를 묶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ㅡ『오랜만에 나하고 놀았다』(모악, 2023)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 아기 예수님이 오시기 전날이다. 아마도 전국의 수많은 교회와 성당에서 연중 가장 큰 행사를 오늘 할 것이다. 성탄절 전날을 더욱 가치있게 여겨 내일보다는 오늘 행사를 하는 것이다. 시내 곳곳이 흥성거릴 것도 예상된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이런 것도 나쁠 게 없지만 오늘 같은 날은 우리가 ‘나눔’과 ‘베풂’을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이원만 씨는 포항에서 35년째 아이들에게 꽹과리, 장구, 징, 북을 가르치며 살아가다가 아이들하고 노는 과정에서 동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동시에는 엄마가 없어 외롭게 살아가는 한 아이가 나온다. 늘 기가 죽어 있다. 엄마가 없어서 그런지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묶지 않은 상태로 학교에 온다. 선생님이 그 아이의 머리를 정성껏 빗고 묶어주었다. 아이는 마음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이 되었다. 아이는 “여섯 살 때부터/엄마가 없어 슬펐는데/머리를 묶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과 함께 선생님을 ‘엄마 쌤’이라고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오늘 같은 날, 우리 이웃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생각하면서 나눔과 베풂의 마음을 갖자고 이 동시를 골라보았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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