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가족사진 

백옥희

격자 장롱 맞은편 벽에
뜰채처럼 걸린 잉어 네 마리
꼼짝없는 찰나가 형광등 아래 있다

왕소금 뻘을 누비던 잔뼈를 부려놓고
허기로 잘록한 아내는 머플러를 둘렀다

곧 죽어도 대학생이라고 비늘을 번쩍이며
낚싯줄쯤이야 얕보던 아들이 그 옆에

어부 낚싯바늘에 아가미가 걸린 딸
안간힘으로 팔딱팔딱거리다 멍이 들고

거친 풍랑과 맹골수에 식솔들 챙기느라
풍성하던 지느러미 다 뽑힌 아버지가 중심에 있다

저녁 바람이 곱게 다림질한 물 실크 옥색 치마
동해 바다가 태곳적 고향이라는데,

비린내만 일렁이는 항구 마을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는 턱걸이 급들 데리고
무리를 좇아 상경한 날의 일이다

한평생 초저녁처럼 쪼그리고 앉아
낚싯대만 바라보던 강태공 안방에
월척 기념사진 한 점이 있다

ㅡ『싸리비 무늬』(고요아침, 2023)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부부는 1남 1녀를 두었다. 부부의 고향이 어느 항구인지 나와 있지 않지만 가족사진 속의 네 식구가 모두 잉어로 비유되고 있다. “거친 풍랑과 맹골수에 식솔들 챙기느라/풍성하던 지느러미 다 뽑힌 아버지”가 나오지만 허기로 잘록한 허리를 갖게 된 어머니는 멋을 내느라 머플러를 하고 있다. 이 부부는 “곧 죽어도 대학생이라고 비늘을 번쩍이며/낚싯줄쯤이야 얕보던 아들”과 “어부 낚싯바늘에 아가미가 걸린 딸”을 두었는데, 뭐 그리 좋게 묘사된 가족은 한 명도 없다. 

 네 식구가 무슨 일을 계기로 상경하게 되었는지도 시에 밝혀져 있지 않다. 동해에 있는 항구도시에서 온 가족이 이사해 서울에서 살게 되었는데 갯내음 풍기지 않는 마을, 바닷바람 안 불어오는 거주지, 파도 소리도 안 들리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으랴. 가족사진 속의 네 명이 다 표정이 밝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가족이라는 것 자체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존재인지 모른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긴 하지만 대화가 거의 없는 집이 태반일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가족은 밥을 같이 먹어서 식구(食口)일 따름, 가족이라기보다는 우리 안에서 살아가는 가축 같다. 현대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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