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한송희 에디터

탁란(托卵)에 대한 예의
ㅡ아홉 살짜리를 여행가방에 가두어 죽인 의붓에미에게 

한상호

열흘 남짓 품었던
그 정 하나로

뱁새는 오늘도
애벌레를 물린다

아기 뻐꾸기 붉은 입 속에

ㅡ『어찌 재가 되고 싶지 않았으리』(책만드는집, 2023)

이미지=뉴스페이퍼 제작

<해설>

 2020년 6월 천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의붓어미는 3학년인 아이를 가로 50㎝, 세로 70㎝ 여행용 가방에 들어가게 했다가 가방 안에서 용변을 보자 더 작은 가방에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사인은 질식사가 아니라 다장기부전증으로 인한 심폐정지로 추정되었다. 이 땅에서 계모와 계부를 포함해 부모의 손에 의해 살해되는 아이의 수가 매년 대략 3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다.

 시인은 탁란의 예를 든다. 탁란은 새가 다른 종의 둥지에 알을 몰래 낳아 그 종으로 하여금 새끼를 기르게 하는 것이다. 탁란하는 새로는 뻐꾸기와 두견새가 대표적이다. 뱁새가 없는 틈을 타 알을 뱁새 둥지에 낳아 놓으면 뱁새는 멋모르고 그 알을 자기 알인 양 부화시켜 키운다. 뱁새에게 뻐꾸기 새끼는 의붓자식이다. 부화시킨 이후 먹이를 주면서 정성껏 키운다. 내 새끼가 아니지만 자력으로 먹이를 구할 수 있을 때까지는 돌봐준다. 몸체가 자기 새끼보다 일찍 자라지만 입을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하니 의심하지도 않고 계속 돌봐준다. 

 새도 이러하거늘 우리 인간이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닌, 재혼한 아내(혹은 남편)의 자식이라고 학대 끝에 숨지게 하다니! 한상호 시인의 이런 세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를 통해 거론해본 것이다. 원래 언론에 발표된 이런 사건은 금방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다. 그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또 일어나니까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 시인은 한 편의 시를 통해서 반영구히 이 사건을 시집에 새기기로 했다. 휴머니즘의 소산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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