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도 피하지 않으니 이일의 간담이 서늘해져
사형도 피하지 않으니 이일의 간담이 서늘해져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 호수 9
  • 승인 2012.09.04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3회 ②

이순신은 하급 관료 시절 변경의 창, 칼 사이를 누비며 막대한 공을 세웠지만 시기 모함하는 자가 많아 흉악한 참소에 빠질 때가 적지 않았다.
 

 

조정에서 판서 김명원金命元을 순검사巡檢使로, 신립과 변협을 좌우 방어사로 삼아 남도의 정예 병사를 출발하게 하고 밤을 새워 달려 내려갔다. 오륙일이 지나도 적의 종적이 없으매 조정에서 심암의 간사함을 깨닫고 심암을 붙잡아 처참 효시하고 이대원의 충의를 표창하였다.

이 싸움은 일본 정부나 막부에서는 알지 못하는 오도 대마 일기20)등의 해적들이 저지른 짓이라 한다. 조선 반민21) 사화동沙火同이라 하는 자가 조선에서 죄를 짓고 일본에 귀화하여 오도의 해적을 인도하여 조선 삼남지방의 섬들을 침략한 것이었다. 이해 7월에 함경감사 정언신의 천거로 이순신을 두만강 하류에 있는 녹둔도22)의 둔전관屯田官을 겸임케 하였다.23) 경원慶源부사 이경록李慶祿이 부하 군사를 거느리고 들어와 순신과 같이 녹둔도의 전답의 추곡을 수확하며 또 한편으로 호적의 침입을 방어하였다.

원래 이 녹둔도는 토지는 비옥하나 호지胡地로 쑥 들어간 돌각지대가 되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고립된 섬이며 수비하는 군사도 적어서 호적을 방어하기가 어려웠다. 순신이 제장중의 이영남李英男을 보내어 북병사 이일李鎰에게 청하되 군대를 증파하여 주기를 여러 차례 요구하였으나 이일이 무슨 심술인지 종시 불청하고 말았다.

순신이 주장이 되어 제장과 약속하되 아군의 수가 적으니 목책木柵을 둘러 만일을 방비하기로 하고 명령에 따라 생사를 같이 하여 국사에 충성을 다하기로 하여 소수로 다수를 상대하는 방책을 발휘하였다. 제장중에 이운룡李雲龍 이영남은 이경록을 따라온 군관인데다 남방의 호걸로 무용이 과인하며 순신을 한번 보고 뜻이 서로 통하여 스승으로 또는 부형으로 섬겼다.

8월 중순에 추장 미니응개彌尼應介 등이 녹둔도의 양곡을 약탈코자 하나 이순신의 위명을 두려워하여 감히 움직이지 못하다가 그 수비하는 병력이 희소함을 알고 여러 부락을 합세하여 열배의 인원으로 쳐들어왔다. 아군이 수확에 바빠서 들에 흩어져 나가 목책 안이 비었음을 탐지하고 그 틈을 노려 몰래 내습하여 삼겹으로 목책을 포위하고 병사들을 풀어 약탈하기를 시작하였다.[이 전쟁은 이일이 증병하여 주지 아니한 소치라고 한다.]

수호장守護將 오형吳亨과 임경번林景藩이 적의 포위망을 뚫으려 하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호추 미니응개도 이 두 장수의 죽음을 기회로 승세를 타 참호를 뛰어넘어 목책 안으로 돌진하다가 수장戍將 이몽서李夢瑞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목책 안에서는 이순신이 말에 앉아 버티고 서서 막는다. 그 뒤에는 이운룡 등 제장이 호위하였다. 아군의 전사한 자가 십여인이요 적에게 잡힌 농민이 일백육십여인이었다. 순신이 책문柵門에 막아서서 들어오는 적장을 방어하며 제장을 독려하였다.

붉은 담요로 된 전포戰袍를 입은 추장 두 명이 칼을 빼어들고 적군을 지휘하여 맹렬히 돌격하여 들어온다. 순신이 철궁鐵弓에 유엽전柳葉箭을 당겨 연달아 발사하니 그 두 명이 차례로 활 소리를 따라 거꾸러져 죽는다. 그밖에도 말을 타고 들어오는 적장을 십여인이나 순식간에 쏘아 죽였다. 참으로 신전수神箭手가 다시 태어났다.
 

▲ 충무공 이순신 초상화.

적은 열배의 세력을 믿고 예기가 성하다가 이로써 좌절되어 감히 책문 안으로 향하지 못하고 그 신전神箭이 오는가 하여 무서워한다. 그제는 순신이 책문을 크게 열고 이운룡 등 제장과 더불어 칠척 장검을 휘두르고 함성을 지르며 추격하여 아군의 포로된 자를 60여인이나 탈환하고 더욱 추격하여 적을 수없이 베었다. 그러나 순신도 역시 왼쪽 다리에 화살을 맞았다. 전쟁중에 군심이 경동될까 염려하여 남모르게 살을 빼어 버리고 조금도 기색을 보이지 아니하고 분전하였다.
 

이운룡은 영남 청도淸道 사람으로 약관에 붓을 던지고 무술에 정진하며 일찍 무과에 급제하여 칼을 잡고 북변에 종군하는 용사이다. 이번 싸움에 이순신의 지용을 감복하여 후일에도 그 부하가 되기를 자원하여 충의를 다하였다. 이순신이 적을 추격하여 베던 이곳을 후인들이 전승대戰勝臺라고 명명하고 지금까지 비석을 새기고 제사를 받들어온다.
 

북병사 이일이 녹둔도에서 전투가 일어나 아군의 사상이 10여인이요 포로 된 자가 90여인이며 이순신이 힘써 적을 무찌른 결과로 탈환된 자가 60여인이요, 오랑캐의 사망자가 미니응개 이하로 50여인이며 부상자가 수백명임을 상세히 들었다. 그러고는 자기가 증병하여 주지 아니한 죄상이 조정에 탄로될까 두려워하여 순신을 죽여 입을 막아 그 화근을 미리 인멸하려고 순신이 패전하였다고 무함하고 형구形具를 관청 뜰에 벌여놓고 순신을 잡아들여 난장24)의 모진 형벌로 대번에 때려죽이려고 계획을 짜냈다.

순신이 잡혀 들어갈 때에 병사의 군관 선거이는 본래부터 순신과 정분이 두터운 친우였다. 순신이 애매하게 죽음을 당할 것을 심히 애석히 여겨 순신을 권하되 술을 먹어 취하여 혹독한 형벌을 잊어버림이 가하다하고 술을 권하였다.

순신이 정색하고 말하되 “삶과 죽음에는 천명이 있는 법이니 내가 이유 없이 죽지 않을 것일세. 술을 먹어 무엇 하겠는가?” 하였다. 선거이는 순신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러면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들어가게” 하였다. 이것은 선거이가 이일의 심술을 미리 알기 때문이었다. 순신과 영원히 작별하는 자리로 알고 비창한 정을 이기지 못함이었다.

순신은 안색이 태연하여 웃으며 대답하되 “목이 마르지 아니하거든 어찌 물을 마시리오”하고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태연히 들어갔다. 이일이 갑자기 대노하며 순신에게 패전한 사유를 써서 올리라고 호령하였다. 이일의 군관들은 당상에 열립하였다. 순신은 천하에 굳센 사람이다. 그 심중에는 이일을 어린아이로 본다.

순신은 엄정한 태도로 단연히 거절하되 “내가 녹둔도를 수비하는 군사가 적음을 걱정하여 증병하여 달라고 여러 번 청구하였으나 병사가 종시 불청하였습니다. 그 청병하던 서류 원본이 증거로 엄연히 있은즉 만일에 조정에서 이 일을 알면 그 죄가 내게는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단신으로 역전하여서 강포한 호적의 맹장들을 쳐 베고, 잡혀갔던 군민 60여인을 탈환하였거늘, 어찌 병사는 패군하였다 하시오? 여러 사람이 본 바이거늘 혼자 우기면 되오?” 하고 맹호와 같은 위세를 보이며 이일을 노려보았다.

관청 뜰에는 사형을 집행할 타살打殺하는 형구가 벌여있고 건장한 나졸25)이 좌우로 늘어 선 것을 본 순신은 참으로 사생이 코앞에 닥친 판이라 순신은 분을 참을 수 없게 되어 노한 눈으로 이일을 노려보았다.
순신의 두 눈에는 불꽃이 일어나 혜성 같은 두 줄기 빛이 이일을 쏘았다. 이일은 그만 겁이 나서 몸에 소름이 일었다. 순신의 당당한 언변에 대답할 용기를 상실하고 나무토막 같이 되었다. 순신은 신장 8척에 위풍이 늠름한 장사다. 불법의 억지 형벌에 굴복할 인물은 아닌 줄을 이일도 느낀 모양이었다.

순신의 전포에는 어제 전쟁의 혈흔이 낭자하여서 보기에 무서웠다. 꼭 타살하기로 작정하고 상관으로서 호령하던 이일은 의기가 꺾여 한참동안이나 아무 말도 못하고 정신없이 앉았다가 순신을 하옥하라고 한마디 말을 하고 순신의 죄를 얽어 장계를 올렸다.

선조가 보고 “이순신은 패군할 장수가 아닐 것이니 한쪽의 말만 믿을 수 없다” 하고 백의종군白衣從軍을 명하여 다른 날에 공을 세우기를 기다리라 하였다. 순신은 은혜를 감사하고 출옥하였다.

좌수사 심암이 군사를 끌어 안기만하고 구원하지 아니함은 이대원이 적에게 패망하기를 기대함이요 이일이 원병을 늘려주지 아니함도 역시 한가지 심술일지나, 그 후 결과가 심암은 그 죄에 벌을 받아 죽고 이일은 그 죄를 타인에게 전가하고자 하니 그 심술이 다시 가일층이로다. 대제학 택당 이식이 말하되“비록 기운을 자부하고 남에게 굽히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공을 대하면 우러러보고 몸을 낮춘다”하니 서익과 이일이 다 용감함으로 유명하며 또 상관의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이 달아나고 기운이 꺾였으니 돌이켜보건대 공은 오자서伍子胥 관운장關雲長과 같은 늠름한 영풍英風이며 밝고 빛나는 천추의 바른 기운일 것이었다.

이해 12월에 두만강 건너편 시전時錢이라 하는 마을에서, 귀순했던 오랑캐가 다시 반란을 일으켜서 북변 각읍을 침략하여 백성들이 많은 참화를 당하였다. 순신이 비록 관직은 삭탈되고 백의종군이 되었으나 그 용략은 세인이 다 아는 바이다. 경원慶源 온성穩城 부령富寧의 수령에게 순신이 선봉이 되기를 자청하였다. 수령들도 그 억울함을 알기에 곧 선봉을 삼아 정병 오백명을 주었다.

순신이 선두에서 행군할 제 큰 눈이 오는 날 밤에 두만강 얼음 위로 도강하여 차가운 삭풍을 무릅쓰고 시전 부락에 득달하니 밤은 이미 사경이라 적들은 다 잠을 잔다. 불시에 소굴에 들어가 적장 삼인을 풍우같이 베고 유유히 돌아오니 적들이 잠을 깨어 일어나 군사를 정돈하여 순신의 뒤를 쫓아온다.
순신이 험한 골짜기로 유인하여 미리 매복하여 둔 복병으로 격파하여 시전의 어려움을 평정하였다. 그 전공으로 순신은 백의종군이란 벌을 면제받고 서울로 돌아왔다.

순신이 서울에서 한거閒居하며 항상 탄식하기를 “대장부 세상에 처함에 국가에서 쓰면 충성을 다하여 목숨을 바칠 것이요, 쓰지 아니하면 구름 걸친 숲에 밭갈기와 달 비치는 여울가에 낚시질하기를 일삼을 것이며, 만일에 본래부터 품은 뜻을 굽혀 권귀한 사람에게 아첨하여 덧없는 세상의 허영을 엿본다면 이는 내 부끄러워하는 바이다” 하고 자기의 처향妻鄕인 아산현으로 돌아가 방화산 기슭 백암촌에 은거하려 하며 시를 지었다.

 

 

백암 이공이 이윤 신야지지莘野之志와 안연 누항지락陋巷之樂과 공명 남양지정南陽之情을26) 모르는 바 아니로되 집안은 가난하고 양친은 늙으시니 어찌하리오. 밭 한 뼘도 없으니 벼슬살이를 할 수밖에 없으나 이때 조정에서 동인 서인의 당쟁이 맹렬히 일어나 정치는 문란하고 인심은 비루 천박하여, 아부하는 자는 등용하고 정직한 사람은 미워하였다.

백암공과 같은 위인이 그 포부를 활용할 곳이 없어 하급 관료에 오래 머물러 변경의 창 칼 사이를 누비며 비록 막대한 공을 세웠으나 시기 모함하는 자가 많아 흉악한 참소에 빠질 때가 적지 아니하였으니 시사를 탄식하는 남아로 하여금 비분강개의 눈물을 금할 수가 없게 되었다.

무자1588년 윤6월에 조정에서 조야나 관민을 물론하고 문무 재국을 겸비한 장수의 자격이 있는 사람을 물색하였다. 대신 중에 유성룡 정탁鄭琢 정철鄭澈의 무리가 이순신 권율 김시민金時敏 신립 이억기 곽재우郭再祐 김덕령金德齡 등 칠인을 적임자로 추천하였다. 비변사에서 불차탁용27)에 선발되어서 신립이 제일, 이순신이 제이, 이억기가 제삼이 되었으나 순신은 백의종군한 일로 인하여 비록 죄는 풀렸으되 아직 서명28)이 내려오지 않았다 하여 임관되지는 못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775 에이스하이테크시티 1동 12층 1202호
  • 대표전화 : 02-2285-6101
  • 팩스 : 02-2285-6102
  • 법인명 : 주식회사 더스쿠프
  • 제호 : 더스쿠프
  • 장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 아 02110 / 서울 다 10587
  • 등록일 : 2012-05-09 / 2012-05-08
  • 발행일 : 2012-07-06
  • 발행인·대표이사 : 이남석
  • 편집인 : 양재찬
  • 편집장 : 이윤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중
  • Copyright © 2019 더스쿠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hescoop.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