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의 구주와 변수

“구주가격 더 인정해 달라” “그 돈으로 차라리 신주를…” 아시아나항공의 구주 금액을 두고 금호그룹과 현산 컨소시엄이 벌이는 신경전이다. 구주가격을 한푼이라도 더 받는 게 좋은 금호그룹 입장에선 당연한 요구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를 두고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기엔 그룹의 상황이 좋지 않다. 금호그룹이 그만큼 수세에 몰려 있다는 게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아시아나항공 구주의 변수를 취재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협상은 순조롭지 않다.[사진=뉴시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협상은 순조롭지 않다.[사진=뉴시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유력후보는 중장기 플랜을 밝히며 강력한 인수의지를 드러냈다. 목표였던 ‘연내 매각 성사’는 순조롭게만 보였다. 국적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얘기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 컨소시엄(현산 컨소시엄)과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 금호그룹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서다. 최근 현산 컨소시엄은 매각 주관사를 통해 금호그룹에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협상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가격’이다. 현산 컨소시엄은 입찰 당시 총 2조5000억원의 인수가격을 제시했고, 채권단과 금호산업은 여기에 ‘OK’ 사인을 냈다. 문제는 이 가격이 다시 구주와 신주로 나뉜다는 점이다.

이번 거래는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1.05%(6868만8063주ㆍ구주)와 아시아나항공이 새로 발행할 보통주(신주)를 함께 인수하는 방식이다. 신주는 현산 컨소시엄이 사들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협상 대상이 아니지만 구주는 다르다. 고스란히 구주 주인 금호산업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양측의 입장은 여기서 갈린다. 신주 규모를 낮추고 구주 매각대금을 높여달라는 게 금호그룹의 입장이다. 현산 컨소시엄 처지는 정반대다. 구주가격을 최대한 줄여 신주 비중을 늘리는 게 유리하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를 탄탄히 할 필요가 있어서다. 이 때문에 현산 컨소시엄은 인수가격 2조5000억원 중 구주가격을 3200억원 규모로 제시했다. “구주가격을 더 쳐줄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채권단에 전달할 만큼 입장이 확고하다.

 

하지만 이 가격만 받고 그룹의 주축인 아시아나항공을 팔기엔 금호그룹 상황이 좋지 않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금호고속이 갚아야 할 차입금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5099억원에 이른다. 현산 컨소시엄의 구주가격 3200억원으로는 그룹 재건은커녕 정상화도 어렵다.

금호그룹이 단순히 비싼 가격에 팔겠다는 이유로 몽니를 부리는 건 아니다.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를 고려하면 “구주가격을 올려 달라”는 주장도 설득력은 있다. 아시아나항공 구주의 시장가치는 1주당 5080원(12월 5일 기준)으로 3489억원 수준이다. 액면가 1주당 5000원으로 계산해도 3434억원이다. 

반면 현산 컨소시엄이 책정한 주당 가격은 약 4600원이다. 시장가격과 액면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데다, 통상 지분가에 20%가량을 더하는 경영권 프리미엄도 물리지 않았다.

사실상 제값 받기에 실패한 셈인데, 이쯤 되면 판을 엎는 것도 방법이다. 장기전을 꾀해 구주가격을 끌어올릴 방안을 검토하면 된다. 지금도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이자 매각주체는 금호그룹이기 때문이다.

구주가격 협상 갈등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금호그룹 편이 아니다.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연내 매각이 수포로 돌아가면 5000억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매각 주도권을 가져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채권단에 중재를 요청할 수도 없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산업은행은 매각 과정이 투명하기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할 뿐 그 이상은 관여할 수 없다”면서 “(구주가격은) 양측이 협의해주길 희망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대로만 흘러가면 연내 매각을 달성하고 차입금도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산 컨소시엄은 신주발행 비용을 2조원 이상으로 넉넉히 책정했다.

“시장 가치를 반영해 달라”는 금호그룹 요구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M&A 업계 관계자는 “5000원 안팎의 아시아나항공의 현재 주가는 매각 성사 기대감이 충분히 반영된 결과”라면서 “매각 얘기가 나오기 전엔 주당 3000~4000원 사이에 오르내리던 걸 감안하면 현산 컨소시엄의 구주 책정가를 헐값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꼬집었다.

정당한 대가 원한다면…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3월 회계 감사 이슈가 터졌을 땐 3500원 안팎으로 떨어졌고, 매각 발표 직후엔 한때 9000원을 넘겼다가, 다시 5000원 수준까지 떨어진 게 최근의 일이다. 주가 변동성은 앞으로도 커질 공산이 크다. 5월만 해도 2300만주를 상회하던 외국인 보유 주식수는 현재 1800만주에 그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떠난 자리엔 대부분 개인 투자자로 대체됐다.

업계는 금호그룹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장하는 것을 두고도 “염치가 없다”며 비난한다. 아시아나항공이 빚더미에 앉은 원인 중 하나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무리한 경영’이 꼽히고 있어서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그룹 재건에 나서는 과정에서 동원되면서 급격히 부실해졌고, 시장의 매물로 나오게 됐다.

결국 현산 컨소시엄의 ‘액면가보다 낮은 구주가격’은 예견된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그게 현실이 된 이상, 금호그룹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당장 뾰족한 수는 없다. 아시아나항공을 뺀 나머지 계열사의 사업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산 컨소시엄의 구주가격이라도 받아야 ‘아시아나항공 매각 다음’을 대비할 수 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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