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업계 여성 리더 3인방

이서현 제일기획 부사장, 정성이 이노션 고문,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 국내 광고업계를 이끄는 여성 리더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벌 3세. 실력보다는 아직 후광에 의존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과연 ‘오너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광고업계를 이끄는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을까.

 
1984년 10월, 서울 경기초등학교에선 ‘교내 음악경연대회’가 열렸다. 매년 열리는 경기초 특유의 축제였다. 수상은 대상부터 동상까지 한다. 동상은 참가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참가상이다. 당시 5학년이었던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혼성 중창단을 결성해 경연에 야심차게 나섰다. 여섯명의 친구와 함께 목청껏 노래를 불렀지만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동상, 아니 참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노래솜씨는 조금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이 부사장에겐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예술적 감각만큼은 어린 시절부터 탁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동창생들은 한결같이 “창의적인 그림을 잘 그렸던 것으로 기억난다”고 말한다.

▲ 삼성가家 3세 이서현 제일기획 부사장은 국내 광고업계를 이끄는 여성 리더로 꼽힌다.
이 부사장이 파슨스디자인스쿨을 다녔다는 소식을 들은 한 동창생은 “그래! 노래보단 그림을 잘 그렸지”라고 말했다. 어릴 적 자질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부사장은 패션업계를 대표하는 여성 리더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창의적인 이미지 메이킹에도 능해 최근엔 ‘광고업계’까지 손을 뻗쳤다.

이에 따라 국내 광고업계는 여성 리더 3명의 전쟁터가 됐다. 이 부사장과 정성이 이노션 고문,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가 그들이다.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재벌3세라는 것이다. 이서현 부사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다. 정성이 고문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녀, 조현민 상무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다.

이서현 부사장은 제일기획 경영전략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패션업체 제일모직에서 근무하던 이 부사장은 2009년 12월 제일기획 기획담당 전무(겸직)로 광고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재계에선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앞둔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부사장은 생각보다 포부가 큰 것으로 보인다. 그가 강조하는 핵심 키워드가 ‘글로벌’일 정도다. 실제로 제일기획은 최근 미국•중국 광고회사를 인수•합병(M&A)했다.

2009년 중국 광고 회사 ‘OTC’, 올 8월에는 ‘브라보’를 인수했고, 7월에는 미국 ‘맥키니’를 사들였다. 미국의 광고시장은 연간 1540억 달러로, 세계 1위 규모다. 중국은 3위 시장(320억 달러)이다. 국내 1위 광고회사 제일기획이 이 부사장의 지휘로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것이다.

섬세한 재벌의 딸들 광고업계서 두각

삼성에 이서현 부사장이 있다면 현대차에는 정성이 고문이 있다. 정 고문은 현대차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의 ‘숨은 리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정 고문은 외부에 알려진 부분이 많지 않다. ‘고문’이라는 직함만 봐도 경영에서 한 발 물러나있는 모습이다. 대외 활동은 거의 없다. 이는 ‘여성은 경영 및 대외 활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현대가家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정 고문이 이런 전통을 조금씩 깨 나가고 있는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보수적인 현대차그룹에서 오너인 정몽구 회장의 딸인 정성이 고문이 광고 부문을 맡았다. 현대가家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현대차 역시 변하고 있다.”

▲ 선병원 설립자인 고 선호영 박사 5주기 추모식에 모인 가족들. 사진 왼쪽에서 여섯 번째가 선두훈 이사장 아내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
실제로 정 고문은 2005년 이노션 설립을 주도했다. 2008년 3월 사내이사에 오른 그는 현재 이노션의 최대주주(지분율 40%)다. 정몽구 회장의 지분율은 20%다. 하지만 이노션 측은 정 고문의 역할에 대해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정성이 고문이 이노션 경영 전반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는데 확대 해석된 부분이 크다”며 “전문경영인이 있고 정 고문은 고문으로서, 주주로서 주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서현 부사장이 이끄는 제일기획, 정 고문이 배후에서 지원하는 이노션의 실적은 괜찮다. 제일기획은 국내 1위 광고기획사다. 이노션의 광고 취급액은 설립 당시인 2005년 1000억원대 수준에서 2010년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3조4891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광고업계 한편에선 제일기획과 이노션의 실적으로 이 부사장과 정 고문의 경영능력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내부거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눈부신 성장을 기록하지 못했을 거라는 의견이다.

올 8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광고제작 업종에서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 비중은 69%로 나타났다. 제일기획(삼성그룹), 이노션(현대차그룹), HS애드(LG그룹), 대홍기획(롯데그룹) 등 대형 광고기획사가 60%가 넘는 광고를 그룹 계열사로부터 수주받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는 56개다. 이 회사들로부터 광고를 수주한다면 규모가 엄청나다. 그룹 계열사로 설립된 광고회사가 기본적인 역량만 있다면 단숨에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그룹은 8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제일기획은 지난해 4조1532억원의 광고를 취급했는데, 주요 고객은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카드•삼성화재•삼성증권•삼성물산 등 그룹 계열사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그룹의 광고회사 설립 이야기가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는 그룹 광고와 홍보부문을 맡고 있다. 한진에는 자체 광고회사가 없다. 조 상무를 중심으로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IMC팀이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한진의 광고 대부분은 LG 광고계열사인 HS애드에서 제작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조 상무가 이끄는 그룹 광고회사가 설립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조 상무는 HS애드(2005년 9월~2007년 3월), 대한항공 광고선전기획팀 과장(2007년)•부장(2009년), 통합커뮤니케이션 IMC 팀장(2010년), 상무보(2011년)를 거치는 등 광고 분야에서 역량을 키우고 있다.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대한항공 광고를 총괄기획한 주인공도 조 상무다.

한진, 조현민 광고회사 설립할까

조 상무가 만약 광고회사를 설립한다면 이 부사장, 정 고문처럼 ‘그룹 계열사 광고 수주’라는 확실한 성장 발판을 깔고 수 있다. 광고 분야에서 여성의 섬세함과 감성은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한 광고 크리에이터는 “여성의 본능은 브랜드를 낳아 보듬고 키우는 일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여성 재벌 3세인 이서현 부사장, 정성이 고문, 조현민 상무가 광고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그룹 계열사 광고 수주로 인한 성장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재벌 3세, 오너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서현 부사장, 정성이 고문, 조현민 상무의 도전은 어쩌면 지금부터다. 
 
박용선 기자 brave11 @ thescoop.co.kr|@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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