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직장은 자아실현의 장이다. 일을 통해 꿈을 실현한다.” 환상적인 문구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은 생계를 위해 일한다. 비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들도 쾌적한 직장과 자아실현을 꿈꾼다. 이상의 실현을 위해 이남신(48)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오늘도 잰걸음으로 노동투쟁현장에 선다.

▲ 이랜드 일반노조에서 핵심브레인으로 활동하던 이남신 소장은 현재 비정규직 복지개선을 위해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공약이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거 이후 변하는 건 많지 않다. 정치권만 탓할 건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곁가지를 쳐내고 큰 줄기로 문제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남신 소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젊음을 헌신한 인물이다. 그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긴 했으나 강성은 아니었다. 군 제대 후 학생운동을 접고 이랜드에 입사한 그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불공정한 노동자 탄압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운동권’으로, ‘강성 노조원’으로 변신했다. 이랜드 일반노조에서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구속된 뒤 해고됐다. 이후 노동법 개정을 위해 18대 총선에 진보신당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낙선 후, 그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요청을 받고 2010년부터 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10월 17일 서울 영등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실에서 이 소장을 만났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현황부터 짚어봤음 한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1740만명 중 800만~850만명이 비정규직이다. 거의 50%에 육박한다. 비정규직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이 비율은 고착화 되는 추세다. 정부는 비정규직 숫자를 500만~550만명으로 얘기한다. 하지만 불법파견근무나 특수고용직까지 포함한다면 1000만명이 넘을 수도 있다.”


비정규직이 많아지면서 유발되는 문제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30•40대는 정규직이 많다. 하지만 10•20대와 50•60대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정규직으로 취업해서, 정규직으로 일하다, 다시 비정규직으로 퇴직하는 구조다. 비정상적이다. 청년층과 노년층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청년층의 경우 3포 세대(취업•결혼•출산 포기)라고 한다. 비정규직으로 장래가 불안정해 결혼을 못한다. 그러면 출산율이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비정규직을 떠돌다 극단적 분노를 이기지 못해 ‘묻지마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기업임금’보다는 ‘사회임금(실업수당•보육지원금•기초노령연금•건강보험 등 사회적으로 얻는 급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것으로 안다.
“기업의 임금 인상만으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건 한계가 있다. 정부가 복지재원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사회임금 구성비는 10%가 채 안 된다. OECD 평균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복지를 기업이 책임지는 비중이 높다. 그러다보니 정규직에 ‘생사’를 걸어야 하는 거다. 실직하면 패가망신으로 이어지고,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면 전체 가계가 흔들리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사회임금 구조를 높여야 한다.”

정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비정규직 정책과 관련해 MB정부에는 몇 점을 주겠나.
“마이너스를 주겠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는 아이러니컬한 부분이 있다. 가장 민주적이었다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안착되고 틀이 잡혔으니 말이다. IMF라는 외부변수로 김대중 정부가 친기업적 구조조정을 받아들였다. 파견법과 정리해고도 입법화되며 비정규직은 완전히 대문이 열렸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MB정부에 모든 문제를 ‘독박’ 씌운다면 그들도 억울할 수는 있다. 하지만 MB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가속화시킨 부분이 분명 있다.”

비정규직 문제 가속화시킨 MB정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가속화시켰나.
“특히 실망스런 부분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늘렸다는 점이다. 민간부문의 비정규직은 칼자루를 쥔 이들이 기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치더라도 공공부문은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개선이 가능

 

하다. 공공부문의 간접고용이 크게 늘었다는 점도 문제다. 내부 고용의 질도 악질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직접고용에서 간접고용으로, 간접고용에서 특수고용으로 하향평준화 됐다.

그럼에도 비정규직•노인•저소득층 등 사회소외계층들은 선거 때 결국 여당을 찍는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는데.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는 이를 ‘자기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한 끼’가 아쉬운 사람들이 ‘한 표’의 소중함을 깨닫고 정치변혁을 꿈꾼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실질적으로 삶에 영향을 끼칠 사람, 이를테면 부도수표가 아닌 현금을 쥐고 있는 사람을 찍게 되는 거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의식이 바뀌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는 ‘정치 문제가 곧 빵의 문제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 부자 대변하는 사람 뽑아봐야 별 수 없다는 걸 지난 5년간 뼈저리게 느꼈으리라.”

노동현장 이슈도 한번 얘기해보자. 지난해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자동차 세습채용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그런 사례가) 한국노동운동의 현주소라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현대차 노조도 반성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세습채용의 구체적 내용은 25년 이상 장기근속한 조합원의 경우 ‘장기근속예우조항’을 적용, 그분들의 자녀들이 취업할 때 5%의 가산점을 준다는 것이다. 사실 현대차만의 문제는 아니다. 금속노조를 비롯해 힘 있는 노조들의 단협에는 그런 조항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특혜를 받아 자녀가 취업됐다고 해보자. 자녀에게 무슨 교육적 효과가 있겠나. 반성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13년 만에 이뤄낸 거다. 하지만 ‘교섭창구단일화’라는 독소조항이 삽입되면서 복수노조의 근본취지를 흔들어버렸다. 악의적인 노조탄압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섭창구단일화는 ‘노노 갈등’을 부추기는 양상을 가져올 수 있다. 대표교섭권을 갖기 위해 노조끼리 패권다툼을 하면 굉장한 에너지 손실이 온다. 교섭창구단일화는 폐지돼야 한다.”

타임오프(Time-Off)제 또한 논란이 많았는데.
“정부가 노린 핵심타깃이 있었다. 산별노조와 양대노총(민주노총•한국노총)의 파견 상근자들이었다. 타임오프로 시간을 제약해버리면 상근자는 대폭 줄어들고 정치적 영향력이 작아진다. 온전한 의미의 노동운동이 싹을 틔우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노림수가)상당부분 성공했다고 본다. 하지만 타임오프제는 노사 자율로 가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는 건 온당치 않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서야

다시 비정규직 얘길 해보자.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는 어느 정도인가.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 대비 48~49%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비정규직 관련 통계조사가 시작된 200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는 단 한 해도 줄어들지 않았다. 양대노총 간부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부분이다. 양대노총에서 비정규직문제에 대해 차별개선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서 비정규직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서겠다는 건 언어도단 아닌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같은 논제는 고용형태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대노총의 실력으로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임금격차는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상당부분 개선할 수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해 추상적 수준이라도 원칙이 서야 한다.”

어떻게 하면 비정규직 확산을 막을 수 있을까.
“새로운 법을 무리해서 만들려 하기 보단, 우선 있는 법부터 정확히 지키도록 해야 한다. 일정기간 이상

▲ 이남신 소장은 새 비정규 관련법을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 현행 법부터 정확히 지키자고 강조했다.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기간제법이라든지, 최저임금제도 등 말이다. 현재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00만명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법을 만들어 뭔가 해보려는 건 ‘빚 좋은 개살구’가 될 확률이 높다.”

Who is 이남신
서울대 사회계열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뒤 1992년 이랜드에 입사했다. 이랜드에서 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 민주노총 서울본부 부본부장과 비정규연대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 진보신당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현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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