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개선 시급한 자영업계

자영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글로벌 불황 한파를 맞고 ‘죽는’ 업체가 속출한다. 간신히 연명한 업체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손님은 연일 줄어들고, 소득은 감소한다. 돈 구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야말로 이중고다.

글로벌 불황 한파에 폐업하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올 10월 18일 국세청이 집계한 ‘2011년 개인사업자 폐업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개인사업자 수는 82만9669명. 전체 자영업자 6명 중 1명꼴이다. 2007년 84만8062명 이래 최대치다.
 

▲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몰리고 있다. 국내 경제의 중심축인 자영업자를 위한 구호책이 시급하다.

자영업자의 몰락은 한국경제에도 큰 부담이다. 전체 취업자 수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자영업자가 벼랑 끝에 몰리면 한국 경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더구나 침체된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민간소비가 절실하다. 하지만 이들의 지갑은 열릴 기미 조차 없다.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전쟁터 같다. 수년간 질기게 이어지는 자영업 위기. 원인은 대체 무엇이고, 처방전은 또 뭘까.

외환위기가 한국경제를 강타한 1998년 중순. 대기업 A사는 3700여 명의 임직원을 퇴출했다. 그야말로 서슬 퍼런 구조조정. 그러나 보상금만큼은 넉넉하게 지급했다.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은 임직원들이 받은 퇴직금은 1인당 1억7000만원. 목돈을 손에 쥔 퇴직자 가운데 72%는 창업을 택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탓에 재취업이 여의치 않았다. 대기업에 다녔던 이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만한 직장도 없었다. 더구나 창업시장은 당시 ‘호황’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자영업계에 발을 들여놨던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창업 전문가들은 “10명 중 1명만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이상헌 소장은 “자영업 판에서 생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2005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체질이 달라졌다. 기업 구조조정이 제법 정착됐고, 노동 유연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자영업계도 덩달아 커졌다. 1999년 561만명이었던 자영업자 수가 2005년 617만명으로 10%가량 늘어났을 정도다. 상당수 퇴직자가 자영업계에 둥지를 틀었다는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자영업자 문제가 불거진 단초가 바로 이것이다. 시장에 상인 수가 많아지면 상점당 매출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N분의 1’ 경제학이다. 너도나도 뛰어든 자영업계는 결국 ‘파이 나눠먹기’로 이어졌다.

동네 골목길에 비디오방ㆍ인터넷방 등 비슷비슷한 아이템을 가진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고 하나 둘 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치열해진 경쟁 속 거금을 들여 인테리어를 바꾸고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돈을 번 만큼 ‘투자’해야 살아 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적지 않은 퇴직금을 들고 자영업 판에 뛰어든 퇴직자들은 이때를 기점으로 줄줄이 폐업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자영업자의 몰락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점이다. 올 9월 현재 자영업자 수는 580만3000여명. 2005년(626만9000여명)보다 46만6000여명 줄었다. 연평균 5만8000여명씩 감소했다.
파이의 크기는 늘어나지 않는데 정작 나눠 먹는 이들이 늘어서다. 수유동에서 한 중저가 피자 체인점을 운영하는 박정훈씨는 “한달 순이익이라고 해봤자 고작 100만원”이라며 “본사에서 금지하는 배달까지 감행해 겨우 벌어들이는 수익”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저가 피자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난 탓이다.

글로벌 불황 이후 대기업이 전통적인 자영업 시장에 침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골목길 상권을 호시탐탐 노리는 대기업 자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SSM), 편의점 등이 대표적이다. 자영업자들이 비교적 쉽게 뛰어들 수 있는 커피숍 사업에도 중소업체가 잇따라 진입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자금 수혈도 여의치 않다. 경영 악화로 수익은 줄어들고 매년 오르는 재료비와 인건비, 이것저것 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돈을 빌리기도 쉽지 않다. 확실한 보증이나 담보가 없으면 사채시장에서도 자영업자 대출을 꺼린다. 연 2~4.5% 금리의 미소금융 제도가 있지만 대출 가능한 금액은 크지 않다. 최근에는 대출금을 연체하는 자영업자가 많아지면서 대출 가능자를 선발하는 ‘기준’마저 엄격해졌다.

이중고 시달리는 자영업자들
그렇다 보니 빛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평균 10년이 지난 자영업자 10명 중 7명은 창업 당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있다. 평균 대출금은 2612만원으로 이 중 ‘이자만 상환하는’ 자영업자가 33%에 달한다. 지갑을 열 수 있는 잠재적 소비자인 자영업자는 전체 취업자 대비 30%가량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의 두 배를 상회하는 수치다. 이들이 지갑을 닫으면 소비가 감소할 수밖에 없고 이는 내수경기 침체로 치닫는다. 장기화된 경기 불황에 ‘내수침체’라는 이중고를 떠맡게 되는 셈이다.

소비가 위축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또 다른 위험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자영업자의 몰락은 이처럼 한국경제의 거시지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업자 몰락을 막을 수 있는 근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국내 큰 축을 차지하는 이들은 무너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왜곡된 자영업 구조부터 바꾸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도소매ㆍ음식숙박업 등 개인ㆍ유통 서비스산업에 몰려 있는 자영업자 분산을 우선으로 하라고 말한다. 전체 자영업자 중 도소매•음식숙박업 종사자는 45.9%로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이는 미국(4%)ㆍ영국(8.8%) 등 선진국과는 큰 차이가 난다.

소자본 생계형 자영업을 금융ㆍ법률ㆍ관광ㆍ레저 등으로 넓혀 외식업, 도소매업에 몰려 있는 자영업자가 사업을 전환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해 자영업 위기를 막자’는 대안도 나온다. 몰락했거나 위기에 빠진 자영업자를 흡수할 수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자는 거다. 이를테면 간병ㆍ보육ㆍ위생 등 사회 서비스업으로 흡수하자는 주장이다.

한 전문가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치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자영업자 몰락을 막을 수 있는 주요 해법”이라며 “OECD 국가의 취업자 25%가 사회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22%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2005년 11%였던 것과 비교하면 많이 올랐지만 아직 평균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OECD 28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업 규모는 체코(21%) 다음으로 낮은 22%다.

그는 또 “이런 사회적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전제한 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정부•지자체만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영업자도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한국의 경우 자영업자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 비자발적 퇴직이다. 등 떠밀려 회사에서 나오고, 마땅히 갈 곳도 없으니 자영업계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자영업계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자영업의 아이템 회전수는 2년이 채 안 된다. 그만큼 경쟁이 심하고, 상권변화도 빠르다. 업무량도 만만치 않다. 자영업자들은 하루 평균 13.5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왜곡된 자영업 구조 바꿔야

하지만 이제는 자영업자들도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한다. 장사꾼이 아닌 기업인의 자세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자영업으로 출발해 그럴듯한 기업을 일군 사람들은 적지 않다. 남들 다 하는 식당 하나로 성공해 거대 프랜차이즈 업체로 키워낸 이도 있다.

한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도 궁극적으로 경영을 하는 것”이라며 “자영업자 스스로 장사꾼 마인드를 훌훌 털어버리고 기업가정신을 가질 때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생계형 자영업자의 평균 월소득은 100만원이 채 안 된다. 상위 1%(8만 5411명)의 1인당 월소득은 1838만원으로 무려 18배나 차이난다. 소득 수준이 비슷한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약 229만여명이 자영업 부문에 ‘과잉 취업’해 있다. 소득이 높은 국가일수록 자영업 부문의 취업자 비중이 낮다.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경제민주화의 길에 들어서려면 자영업자가 살아야 한다. 양극화 해소를 통해 경제적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 지금이야 말로 정부ㆍ지자체ㆍ기업이 탄탄한 공조의 끈을 만들어 자영업자의 몰락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자영업자도, 한국경제도 부활의 축배를 들어올릴 수 있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itvfm.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