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경제책사의‘궁합’

▲ 이번 대선처럼 성격이 다른 경제전문가들이 대선후보 캠프의 책사로 기용된 적은 드물다. 왼쪽부터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이정우 교수(경제민주화위원장), 장하성 교수(국민정책본부장).
리더와 참모의 ‘머리궁합’은 무척 중요하다. 철학이 비슷해야 같은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어서다. 둘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정책은 바다가 아닌 산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대선후보 빅3(박근혜•문재인•안철수)는 그들의 경제책사와 철학을 공유하고 있을까. The Scoop가 그들의 경제궁합을 체크했다.

대선주자 간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하던 과거에 비하면 18대 대선에선 비교적 정책 대결이 이뤄지고 있다. 가장 치열한 분야는 경제다. 핵심 화두는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별개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의 경제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 공감하고, 문제의 해결도구로 경제민주화를 꺼냈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유권자 역시 각 후보가 제시한 경제민주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때문에 원조 논란까지 일고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라는 슬로건은 같아도 의미나 내용은 캠프마다 다르다.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워낙 광범위해서다. 대선후보와 경제책사들의 생각과 성향이 제각각인 것도 이유다.

대선후보들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수많은 언론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경제책사들의 철학을 해부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 있겠는가.

대선은 승리를 좆는 게임이다. 대선후보와 경제책사의 철학이 일치할 수는 없다. 경제책사가 그동안의 주장을 살짝 바꿔 대선후보에 맞출 여지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경제책사의 철학을 들여다본다고 대선후보의 경제정책이 갖는 의미나 정책 실현 의지를 완벽하게 읽기란 불가능하다. 각 대선후보와 경제책사의 생각, 그리고 캠프의 정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캠프]
새누리당 DNA-김종인 철학 엇박자

경제민주화라는 이슈를 끌어낸 정당은 흥미롭게도 새누리당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를 달성할 구체적인 해법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정책국 관계자는 “극비리에 정책을 짜고 있는 중”이라면서 “현재 기사화된 내용 외엔 말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내부조율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새누리당의 성향이 어울리지 않아서다.

김종인 위원장은 전두환 정부부터 참여정부 시절까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는 경제개발계획 실무위원을 맡았고, 노태우 정권에서는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경제학자보다는 여당 정치인으로 지낸 세월이 더 길다. 이런 면에서는 박 후보와 잘 어울린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의 경제철학이 ‘친재벌’이나 ‘비즈니스 프렌들리’ ‘시장만능주의’에 맞춰져 있는 건 아니다.

김종인 경제철학, 새누리당 DNA 바꿀까

1990년대 초, 투기 붐으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자 당시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김 위원장은 재벌그룹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압박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재벌의 독점적 경제력에 비판적이라는 얘기다.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가장 먼저 들고 나온 인물도 김 위원장이다. 그가 말하는 경제민주화의 정의는 이렇다.

“모든 경제주체가 공존•공생할 수 있는 경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시장은 만능이 아니다. 효율과 안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바로 경제민주화다.”

김 위원장은 “양극화의 원인과 경제 구조의 왜곡은 경제세력(대기업 집단)의 지나친 탐욕 때문”이라며 사전 통제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나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내용보다는 온건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친기업 정서를 유지해 온 새누리당의 경제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김 위원장이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으니 당내 갈등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벌인 설전은 대표적 사례다. 올 10월 이한구 대표는 “경제민주화 내용이 무엇인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김 위원장을 공격했다. 김 위원장과 반대 입장에서 시장논리를 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과도 신경전을 펼쳤다.

흥미로운 사실은 박 후보가 김 위원장을 측면에서 지원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과 이 대표의 싸움은 김 위원장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 대표가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퇴출됐기 때문이다. 김광두 원장과의 파워게임에서도 김 위원장이 사실상 우위를 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김 위원장의 철학이 모두 수용될지는 미지수다. 박 후보가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를 달성하려면 당내의 모든 반대를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철학도 사실 다르다. 박 후보가 2013년 예산에 10조1000억원을 추가로 반영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자 김 위원장은 “경기 부양책은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수 없다”며 경기부양책 공약을 정면으로 부인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의 핵심공약 중 하나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을 세우는)’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김 위원장은 “5년 전 줄푸세는 당시 시대상황에 맞게 나왔다고 본다”면서도 “경제민주화와는 같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둘 사이에 큰 벽이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김종인 경제철학 달라

박 후보와 김 위원장이 대선으로 가는 마차에 동승할 가능성은 무척 크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김 위원장과 이한구 대표가 대립할 때 김 위원장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며 박 후보를 압박했다. 그러자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여론이 63.7%까지 껑충 뛰었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실현의지가 약하다는 평가가 박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박 후보에게 김 위원장은 ‘표밭’을 일구는 농부일 수 있다.

하지만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박 후보가 김 위원장의 철학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김 위원장이 스스로 지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는 산으로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철수 캠프]
서로 다른 경제철학 ‘한지붕 세가족’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경제책사는 장하성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다. 안철수 캠프에서 국민정책본부장을 맡은 장하성 교수는 소액 주주운동을 통해 한국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펼쳐왔다. 2006년에는 일명 ‘장하성 펀드’를 통해 재벌개혁 운동과 펀드를 결합시킨 주인공이다.

그러나 ‘장하성 펀드’의 공식명칭은 미국의 금융자본인 ‘라자드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F)’다. 라자드는 2005년 SK그룹의 경영권을 공격했던 외국계 투기자본 소버린의 금융자문회사다. 일각에서 장 교수를 두고 ‘주주이익을 위해서라면 외국계 투기자본까지 이용한다’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 교수는 사실 주주자본주의자라는 것이다.

장 교수의 이런 철학은 안철수 후보와 다르다. 안 후보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지나친 주주 중심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중심주의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안 후보가 조언을 듣는다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또 누군가.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두번이나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정통 재무관료 출신이다. 1998년 금융감독위원장 시절에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그의 꼬리에 ‘신자유주의’와 ‘관치금융’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다.

장하성, 이헌재 공통분모 있나 

그가 안철수 캠프의 경제자문을 맡았을 때 진보진영에서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안 후보와 이 전 부총리의 이미지와 철학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이 전 경제부총리는 10월 17일 열린 KT 독서포럼에서 자신은 “한쪽 이념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다”며 신자유주의자•관치금융론자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신자유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안 후보가 주장하는 재벌개혁명령제에 대해서 그는 “경제 권력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불법이 드러나면 법으로 규제하고, 필요하다면 독점시장 해체분할이 가능하다”며 “경우에 따라선 분리명령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분리명령이) 시장체제에 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경제에 그런 명령을 해야 할 만한 기업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재벌기업이 계열사 분리명령을 받을 정도로 문제가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정부보다는 시장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경제는 정치다」라는 저서에서 이 전 부총리는 “경제주체 간 갈등은 정부가 아닌 시장이 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안 후보와 공통분모를 가진 경제책사가 아니다.
 
[문재인 캠프]
후보와 책사는 한 몸, 당이 문제

문재인 캠프는 경제책사와의 불협화음이 가장 적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경제책사는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은 이정우 경북대 교수다.

그는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책특별보좌관을 지냈다.

2003년에는 보유세 강화를 골자로 한 ‘10•29 부동산대책’을 주도했다. 상속세와 증여세의 조세완전포괄주의(원칙적으로 모든 소득을 과세대상으로 보는 것)와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도입 등 대기업 규제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성장을 강조한 이헌재 전 부총리와는 대립각을 세웠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했다. 양극화 문제를 정부가 나서 해결하고 유럽식 노사관계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국의 경제위기, 민주주의와 시장만능주의」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상극이 아니고 얼마든지 조화가 가능하다”며 “경제민주화의 주적은 ‘오래 누적된 관치경제’와 ‘10년간(IMF 사태 이후) 수입된 과잉 시장만능주의의 병폐’”라고 밝히기도 했다.

신규 순환출자 제한,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금산분리 강화 등 재벌 개혁정책들은 이 위원장과 문 후보가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참여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을 만드는 데 일조한 이 위원장과 참여정부의 핵심인물이었던 문 후보의 만남은 그만큼 자연스럽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철학도 비슷하다. 이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지난 반세기 동안 정부가 개입한 고도성장은 국가독재모델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이와 정반대의 시장독재모델이 도입됐다. 둘 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 결과, 저성장과 양극화가 초래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다. 복지국가는 춥고 배고픈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경제적 약자의 억울함에 귀 기울이고 공정경쟁의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하지만 문재인 캠프의 경제정책에도 문제가 있다. 문재인 후보의 재벌개혁정책은 다른 후보들과 비교했을 때 무척 강력하다. 현실에서 과연 실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문재인 캠프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지만 당 스스로가 받아들이지 못해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며 “참여정부 때도 재벌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극복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경제개혁 의지가 부족했던 것을 인정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경제철학은 비슷, 실천 가능성은 의문  

“참여정부가 부족했던 것은 세 가지다. 양극화의 주범인 재벌을 개혁하지 못했고, 양극화의 밑바닥에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손보지 못했다. 한미 FTA 투자자국가제소권이라는 독소조항을 막지 못했다. 잘못한 것들을 고쳐나갈 예정이다. 가령 종부세는 가장 우수한 세금이지만 제대로 실시하지 못했다. 당시 위헌판결이 난 것은 부부합산에 대한 항목뿐이다. 그것을 부부별산으로 바꾸고 거래세•취득세•등록세 등은 낮아진다는 것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면 실천할 수 있다.”

이 교수의 반성을 문 후보가 공감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공약의 실천 가능성이다. 이제는 기득권을 가진 기성정당으로 전락한 민주통합당의 DNA를 먼저 바꿔야 할지 모른다. 문 후보와 이 교수의 공통된 고민일지 모른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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