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산은 비토권 인수 시 최악의 시나리오

GM이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GM 지분(17.02%•비토권 포함) 인수에 나섰다. 이후 생산 물량 감소, 인력 구조조정 등 국내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토권을 보유한 산은의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분을 GM에 매각할 것이냐’ 아니면 ‘국내 자동차 시장 보호를 위해 지분을 보유할 것이냐’다.

GM(General Motors)이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GM 지분(17.02%)의 인수에 나섰다. 팀 리 GM해외사업부문 사장(한국GM 이사회 의장)과 세르지오 호샤 GM한국 사장은 올 10월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과 만나 산은의 지

 
분 매입 의사를 전달했다. 이 지분에는 산은이 한국GM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비토권이 있다. GM은 한국GM의 지분 76.96%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비토권 때문에 한국시장에서 산은의 눈치를 봐야 했다.

산은은 비토권을 행사, 한국GM이 자산 5% 이상을 매각하거나 해외 설비 이전 등 실질적인 자산 매각이 이뤄질 경우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이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국내 자동차 산업 보호와 성장을 위한 안전장치로 받아들여져 왔다. GM이 적극적으로 산은 지분 인수에 나서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논리 vs 국내 車산업 보호

이에 따라 산은이 비토권을 잃으면 GM의 일방적인 경영을 견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해외 공장 이전, 생산량 감소 등 한국GM의 역할 축소로 국내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는 것은 물론 자동차 산업의 발전에도 마이너스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 한국GM은 11월 1일 군산공장에서 크루즈 후속 모델 생산중단을 발표했다. 이어 20일에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한국GM 군산공장 차제 조립 라인 모습.
한국GM은 국내에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생산과 판매가 국내에서 이뤄지고, 수출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업계에선 한국GM을 국내 완성차업체라고 말한다. 그러나 소유주는 (미국) GM이다. 현재 한국GM은 GM에서 온 임원 150~200명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CEO), 카를로스 자를랭가 부사장(CFO•재무), 마크 폴그레이즈 부사장(HR•인사)이 주축을 이룬다. 생산량 조절•전략기획•재무•인사 등을 GM에서 총괄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일반적인 해외 자회사를 운영하는 형태다. 하지만 한국GM의 노동자는 대부분 한국인이다. 전체 직원 1700명 중 88%에 해당하는 1500명이 국내 근로자다. 군산 지역 경제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국가•지역적인 차원에서 보호•견제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산은의 비토권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GM의 물량축소 발표 이후 군산시에서 반대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사안이 중요한 만큼 산은은 지분매각과 관련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강만수 회장은 10월 23일 “협의할 내용이 많다”며 “신중하게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국GM은 11월 1일 군산공장에서 크루즈 후속 모델 생산중단을 발표했다. 올란도와 크루즈 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는 군산공장은 부평공장과 함께 한국GM의 핵심 생산 공장이다. 군산공장은 지난해 5조6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2009년 2월부터 크루즈 유럽시장 물량을 담당하며 크루즈의 핵심 생산 기지로 여겨진다. 지난해에는 크루즈 20만8000대를 생산했다.

한국GM 노조가 반발했다. 최종학 한국GM 노조 대외협력실장은 “크루즈는 군산공장의 생명줄인 동시에 한국GM을 먹여살리는 핵심 차종”이라며 “차세대 크루즈의 생산중단 결정이 GM 내에서 한국GM의 역할과 비중을 지속적으로 축소•재조정하는 시도의 일환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GM이 산은의 지분 17%를 매입, 한국GM을 100% 자회사로 만들어 마음대로 컨트롤하려는 속셈”이라며 “차종과 물량배정을 가지고 공장간 경쟁을 시키면서 노동자를 통제•관리하는 것은 전 세계 GM 공장에서 수없이 되풀이됐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GM은 경영 효율성을 내세웠다. 한국GM은 “전 세계적으로 준준형 시장의 수요를 고려했을 때 공장시설과 설비활용 면에서 군산공장에서 크루즈를 생산하는 것은 물류비 등을 고려했을 때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추후 한국은 경차와 소형차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여전히 GM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여기에 국회도 가세했다. 국내 자동차산업을 보호하는 입장에 섰다. 홍영표 민주통합당 의원은 11월 13일 류희경 한국산업은행 부행장(기업금융본부•한국GM 담당)을 만나 산은의 지분매각과 관련 논의했다.

홍 의원은 “아직 산은이 확실한 방침을 정한 것이 아니다”며 “정부의 방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MB정부 민영화 정책에 따라 추후 지분매각을 계획하고 있다. 여기엔 한국GM의 지분도 포함된다. 또 홍 의원은 “인천지역 국회의원들과 함께 산은의 한국GM 지분매각 반대 입장을 밝히는 성명서를 낼 계획”이라며 “오는 29일엔 호샤 한국GM 사장과 만나 구체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노조도 참석했다. 노조는 류 부행장에게 “산은이 2대주주로서 한국GM의 미래, 국가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위해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며 “지분을 매각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류 부행장은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반 시중은행으로 보면) 지분 매각 가치가 있다면 매각이 이뤄질 수도 있지 않겠냐”라며 “국책은행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면 어떤 방향으로든 정부의 지시가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민영화 얘기를 연결 짓는데 현재 진행 상황이 미적지근해 거리가 먼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 산업은행이 한국GM 근로자의 고용 안정 부분에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군산공장 생산중단 발표 이후 우려했던 사건은 또 터졌다. 한국GM은 11월 20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한국GM은 “올해 초 조직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부장급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했다”며 “프로그램 진행 과정 중 차장 이하의 많은 직원으로부터 퇴직 신청을 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퇴직일은 12월 31일이다. 회사의 설명처럼 지난 5월 부장급 이상 임직원 대상 이후 전 직원으로 확대된 두 번째 인력 구조조정이다.

노조는 “한국GM의 한국인 관리직 슬림화”라며 반대에 나섰다. 최종학 실장은 “산업은행의 한국GM 보유 지분 인수, 군산공장 차세대 크루즈 생산 중단, 희망퇴직 등 시차를 두고 GM의 노무 전략이 진행되고 있다”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리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생산, 인력 조정 그 이후엔…

최 실장은 “회사가 희망퇴직이라며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이뤄진다고 얘기하지만 이전 팀장•임원 대상의 희망퇴직의 경우 각 부문, 본부별로 할당을 내리고 반 강제적인 압박을 가했다”고 지적했다.

산은이 시장논리에 입각, 비토권을 팔아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2003년 매입 당시보다 지분 가치가 올랐으니 이익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GM의 노동자가 어떻게 될지, 나아가 한국GM이 국내 자동차산업에 끼치는 영향력이다. 최근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GM이 국내사업을 축소한다면 한국자동차 시장은 규모가 줄어들고, 성장 역시 더딜 수밖에 없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비토권을 보유한 산은이 한국GM의 경영에 참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하지만 공공적인 측면인 고용 안정 부분에는 분명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내엔 현대•기아차,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5개 자동차업체뿐”이라며 “특히 르노삼성•쌍용차는 부진한 상황이고, 현대•기아차가 거의 독점하는 형태인데 여기서 한국GM마저 사업을 축소한다면 국내 자동차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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