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패션기업 강타하는 차이나머니

중국기업이 국내 패션계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패션기업을 인수ㆍ합병(M&A)하는 중국업체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국내 패션업계 안팎엔 우려감이 감돌고 있다. 재무구조가 취약한 국내 패션기업이 ‘차이나머니’를 쉽게 받아들이면 큰코다칠 수 있다는 얘기다.

차이나머니가 국내 패션계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기업이 국내 패션기업을 인수ㆍ합병(M&A)하거나 자본을 출자하고 있어서다. 주목할 점은 국내 브랜드 직수입ㆍ라이선스 계약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패션 제조업체 연승어패럴은 최근 중국 산동루이모직섬유유한회사(산동루이)와 공동자본합작을 체결했다. 산동루이는 중국의 대형 모직회사다. 이번 투자로 산동루이는 연승어패럴의 지분 50%를 획득한다. 연승어패럴의 지분구조는 한ㆍ중 50대 50으로 탈바꿈한다.

회사 형태가 달라지는 만큼 업무분담도 바뀐다. 연승어패럴은 기획과 디자인 등 연구개발(R&D) 분야와 경영을 맡는다. 산동루이는 생산과 중국 전역 유통 확장부문을 담당한다.

 
재무구조 취약한 국내 패션업체 노려
중국기업에 매각된 한국 패션기업 소식도 들린다. 인수가 가시화된 국내기업만 3곳이다. 의류 도매업체 아비스타는 11월 20일 중국 패션기업 디샹그룹의 인수 사실을 금융감독원에 공시했다. 아비스타는 디샹그룹에 300만주(132억원) 규모의 3자 배정유상 증자를 실시한다. 아비스타의 최대주주인 김동근 대표는 지분 중 180만주를 디샹그룹에 양도할 예정이다. 그 결과, 디샹그룹은 아비스타의 지분 36.9%를 확보해 최대주주로 등극한다. 회사경영은 김 대표가 계속 맡는다.

디샹그룹은 모기업인 위해방직그룹의 지주회사다. 의류생산과 수출입이 주력사업이다. 위해방직그룹과 체리그룹 등 다수의 계열사를 통해 연간 10억 달러(약 1조85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번 지분매각으로 아비스타는 중국시장을 빠르게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디샹그룹과의 시너지 창출도 기대된다. 아비스타는 그동안 국내 패션시장 침체에 따른 실적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 패션업체 더신화는 중국 의류기업 안나실업에 팔렸다. 더신화는 안나실업에 브랜드 인터크루의 국내 상표권ㆍ매장ㆍ재고를 매각했다. 디자인실과 개발실은 이미 안나실업으로 이동했다. 회사명도 더신화에서 안나인터내셔널로 바뀐다. 안나실업은 중국 의류 생산업체로 안나리ㆍ안니솔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과거 인터크루 제품의 주문자상표부착(OEM) 업체였다.

국내 캐주얼 기업 나일론엔코는 구두 전문업체 다푸니와 M&A를 협의하고 있다. 인수금액 규모와 경영권 보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다푸니는 국내 제화업체 세라제화와도 상품 기획 관련 업무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기업이 한국 패션기업을 M&A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패션기업은 디자인과 상품기획력이 뛰어나다. 더구나 중국 패션시장의 트렌드가 디자인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디자인과 기획력이 부족한 중국업체가 국내 패션기업을 노리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이유도 있다. 국내 패션업계의 사정이 녹록지 않아서다. 중국 패션업체의 장점은 대규모의 자본력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무구조가 취약해진 국내 패션업체로선 차이나머니라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 차이나머니의 침투에 대해 국내 패션계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중소패션업체에겐 중국진출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중국자본에 의존하게 될지 모른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차이나머니의 침투에 대해 국내 패션업계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먼저 중국업체의 M&A 시도가 국내 중소패션업체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경영자의 의지에 따라 성공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내 중소 패션기업은 중국시장 독자진출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현지 백화점에 입점한 업체도 마찬가지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백화점에 지급하는 판매수수료는 30%대다. 여기에 입점 알선료ㆍ금융보험료ㆍ관리자수수료까지 꼬박꼬박 지급한다. 중국시장에선 도저히 순이익을 낼 수 없다는 얘기다.

최근 중국시장에 진출한 중소 패션업체들이 직진출을 포기하고 신뢰할 수 있는 중국 파트너를 찾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중국 소비자를 알고 유통에 노하우가 많은 중국기업과의 제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기업에 매각된 패션업체 관계자는 “중국진출을 꾀하는 패션업체들의 화두는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중국시장에 천천히 진출하느냐, 아니면 경영권을 포기하고 빨리 안착하느냐다”며 “중국기업의 자본력과 국내 중소업체의 상품경쟁력이 결합하면 중국시장에서 능히 승부를 겨룰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 중국기업이 한국 중소패션업체와 브랜드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국 패션업체의 디자인 능력을 활용해 중국시장을 뚫겠다는 전략이다.
우려 섞인 시각도 많다. 국내 패션시장이 중국자본에 의존하게 될지 모른다는 비관론이다. 국내 패션시장이 차이나머니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경고다. 국내 토종 패션브랜드가 자력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차이나머니를 흡수하면 되레 토종 브랜드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차이나머니가 시장에 ‘판’을 치면 자본력이 부족한 국내 신진 패션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가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좁아진다. 국내 패션업체 간부는 “중국 자본을 발판으로 국내 브랜드가 한 단계 성장하면 다행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영권을 넘겨주게 되는 일이 초래될 수 있다”며 “M&A는 양면의 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기업 M&A, 독배 가능성 짙어

 
국내 패션기업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중국기업의 투자가 경영참여로 이뤄진다면 비토파워(정치ㆍ경제 권력 견제를 위한 일종의 거부권)와 같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자본이 국내 패션계를 흔들고 있다. 차이나머니의 영향력이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풍부한 자금력을 앞세운 왕서방의 행보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수면 위로 떠오른 중국기업 M&A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지금도 물밑에서는 한국 패션계를 접수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국내 패션업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중국업체가 국내기업을 M&A하려는 목적이다. 업계는 중국기업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막연한 투자라고 생각했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는 경고다. 국내 패션기업의 디자인 노하우가 중국업체 성장의 ‘밀알’이 될 수도 있다. 그들에겐 ‘차이나머니’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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