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미샤 특혜 임대계약 논란

서울메트로가 논란에 휩싸였다. 유명 화장품 브랜드 미샤를 갖고 있는 에이블씨엔씨에 ‘지하철 매장 독점운영권’을 제공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서울메트로는 지하철 매장 입찰 당시 독점운영권을 폐지했었다. The Scoop가 논란의 핵심을 파고들었다.

▲ 서울메트로 계약담당자들이 회사의 정식결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에이블씨엔씨에 독점운영권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서울메트로 경영진의 암묵적인 묵인과 방조가 있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가 모럴해저드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특정 화장품업체와 임대사업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어서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 6월 화장품업체 에이블씨엔씨와 지하철 역사 내 매장을 임대하면서 독점운영권을 줬다. 에이블씨엔씨는 유명 화장품 브랜드 ‘미샤’를 갖고 있다.

논란은 서울메트로가 에이블씨엔씨에 독점운영권을 보장했는지에서 시작됐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 6월 사업자를 공모하면서 독점운영권 폐지를 공지했기 때문이다.

폐지된 독점운영권, 계약과 동시에 부활
사건의 전말을 보자. 서울메트로는 2008년 6월 17일 ‘네트워크형 화장품 전문매장 사업’을 공모했다. 입찰기간은 2008년 6월 17일부터 6월 23일까지. 사업대상 매장은 지하철 1~4호선 내 60개소, 임대차 기간은 5년이었다. 계약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면 계약을 2년간 갱신할 수 있었다.

계약조항에서 눈여겨 볼점이 있다. 동일역 동일업종제한 폐지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역에 화장품매장이 있다면 다른 브랜드는 입점할 수 없었다. 2007년 1월 서울메트로는 이 조항을 폐지했다. 독점운영권을 특정업체에 주지 않겠다는 거였다. 사업공고문에도 독점운영권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분명하게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이블씨엔씨가 서울메트로의 화장품 전문매장 공모사업에 입찰했다. 2008년 6월 23일의 일이다. 다음날 11시, 최종사업자로 에이블씨엔씨가 선정됐다. 입찰과정이 단 하루 만에 종료된 것이다. 낙찰금액은 약 360억원이었다.

그런데 에이블씨엔씨는 금감원에 이상한 공시를 올렸다. 이런 내용이었다. “서울메트로 화장품 전문매장 사업에서 독점운영권을 확보했다.” 서울메트로는 사업을 공고할 때 분명히 독점운영권을 폐지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런데 에이블씨엔씨가 낙찰된 직후 ‘독점운영권’ 조항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상한 일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에이블씨엔씨는 독점운영권을 확보했다고 공시를 해놓고, 정작 독점운영권을 달라고 서울메트로에 요구했다. 공시 직후 에이블씨엔씨와 서울메트로는 10일 동안 추가협상을 했다. 그 과정에서 에이블씨엔씨는 서울메트로 사장(김상돈 전 사장) 앞으로 한통의 공문을 발송했다. 임대차 계약에 ‘독점운영권을 명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 동일역 안에 동종업종의 브랜드입점을 제한해 달라….”

 
여기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에이블씨엔씨는 낙찰 직후인 2008년 6월 24일 금감원에 ‘독점운영권’과 관련된 내용을 공시했다. 그런데 공시 이후 ‘독점운영권’ 관련 협상을 진행했다. 공시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에이블씨엔씨는 “담당자가 낙찰을 받은 후 흥분해서 잘못 올렸다”고 알려졌다.

나머지 문제는 다음과 같다. 추가협상이 완료된 7월 4일, 서울메트로와 에이블씨엔씨는 실제 계약을 체결했다. 에이블씨엔씨가 요구한 대로 계약문건엔 ‘독점운영권 조항’이 삽입됐다. 독점운영권 요구공문을 보낸 지 반나절만의 일이다. 문제를 지적하는 이도 없었다. 에이블씨엔씨로선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렸다는 얘기다.

에이블씨엔씨의 독점운영권 조항이 다시 대두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 2010년 10월경 S사는 4호선 사당역 매장을 ‘액세서리에서 화장품으로 업종을 변경하겠다’며 서울메트로에 승인을 요청했다. S사는 2006년 6월 이동통신판매상 임대 사업자로 선정된 상태였다. 에이블씨엔씨는 반발했다. 독점운영권 조항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메트로는 독점운영권이 폐지됐음에도 에이블씨엔씨와의 계약에 독점운영권 조항이 삽입된 사실을 확인했다. 2010년 취임한 서울메트로 사장(김익환 사장•2012년 12월 14일 사의표명)이 나서 자체적으로 감사를 벌였다. 전임 사장 때의 문제를 확실하게 털고 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2010년 감사결과, 당시 부대사업팀 오모 과장과 재무관리팀 최모 차장은 서울메트로 사장 직인을 도용해 에이블씨엔씨와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독점운영권 조항이 삽입됐다. 서울메트로의 정식결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서울메트로 독점권 삽입 “알았나 몰랐나”
검찰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5월 3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조사결과의 내용을 보자. “… 오 과장과 최 차장은 에이블씨엔씨와 임대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보완삽입요구(독점운영권)’에 서명했다. ‘임대차계약 일반조건’에 특약조항(독점운영권)을 추가 삽입해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은 인정된다…” 임대차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에이블씨엔씨에 독점운영권을 제공한 사실을 서울메트로 경영진이 알고 있었는지다. 서영진 서울시 의원(민주통합당•노원 제1선거구)은 올해 11월 6일 서울메트로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에이블씨엔씨의 특혜 제공 의혹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이틀 후엔 보도자료를 내고 ‘서울메트로와 에이블씨엔씨 간의 지하철 매장 사전 담합 의혹’을 제기했다.

에이블씨엔씨는 즉각 반박했다. 올 11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메트로와 매장 입찰 담합은 절대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오 과장과 최 차장이 독점운영권 관련 계약에 서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불법사항은 없었다고 결론내렸다는 게 에이블씨엔씨의 주장이다. 계약 당사자가 무혐의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담합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 검찰은 조사결과에서 독점운영권 등 특약조항이 계약의 핵심사항이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계약담당자들이 계약절차를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윗선에 구두로 보고했기 때문에 서울메트로 경영진의 암묵적인 묵인과 방조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에이블씨엔씨의 주장은 사실관계가 잘못됐다. 검찰의 불기소결정서 내용을 다시 보자. “… 서울메트로의 계약 담당자들은 회사 경영진의 묵시적 승낙 또는 적어도 추정적 승낙을 받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이 권한 없이 계약을 체결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혐의가 없다….”

‘오 과장과 최 차장이 계약절차를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윗선에 구두로 보고를 했기 때문에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서울메트로의 경영진, 다시 말해 윗선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꼬집은 거다.

서 의원 역시 “서울메트로 경영진의 암묵적인 승낙 혹은 방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2008년 7월 4일 계약 당일 오전 에이블씨엔씨가 공문으로 독점운영권 조항을 요구했다. 서울메트로 경영진의 묵인과 방조 없이 어떻게 계약 당일 독점운영권 조항이 반영될 수 있었겠는가. 만약 독점운영권 조항이 폐지되지 않고 공시됐다면 입찰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서울메트로 측은 “독점운영권 조항을 삽입했는지를 계약 당일까지 알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에이블이엔씨는 낙찰 직후인 6월 금감원에 ‘독점운영권’에 대한 내용을 공시했다. 사업당사자인 서울메트로가 이를 몰랐을리 없다. 또 알았다면 분명하게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서울메트로는 해명했다. “독점운영권 관련 내용이 담겨 있는 특약사항은 당시 계약의 핵심사항이 아니다. 김익환 사장 취임 후인 2010년 10월 이 문제를 발견하고 특약조건의 유효성 여부에 대한 법률자문과 함께 해당 직원을 업무상 배임 및 사문서 위조로 경찰과 검찰에 형사고소한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검찰은 특약조항을 계약의 핵심사항으로 판단했다. 다시 검찰의 불기소결정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에이블씨엔씨와 체결한 계약은 서울메트로의 중요추진사업이었다. 특약사항은 핵심적 사항이다….”

 
서울메트로는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오 과장과 최 차장을 징계하기 위해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는 징계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징계를 하지 않았다. 인사규정에 따르면 징계시효 2년을 넘길 경우 징계할 수 없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두가지다. 첫째는 무슨 이유로 오 과장과 최 차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는지다. 검찰은 이들에게 어떤 책임도 없다고 밝혔다. 되레 윗선이 묵시적으로 승낙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오 과장과 최 차장의 윗선이 누구인지 찾아내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서울메트로가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메트로는 “원인규명에 최선을 다했다”며 “꼬리 자르기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징계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던 오 과장은 2010년 1월 4급 과장에서 3급 차장으로 승진했다. 징계시효가 지나서 처벌하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승진시켰는지 의문이다.

다른 사례도 있다. 2009년 11월 서울메트로는 서울시의 감사를 받았다. 당시 서울시와 서울메트로 감사실은 최 차장에 대한 징계(감봉 또는 견책)를 요청했다. 서울메트로 인사위원회는 징계하기로 결정했지만 2차 인사위원회에서 돌연 경고로 처벌수위가 완화됐다. 최 차장은 대기발령 후 다른 부서에 배치됐다. 서 의원은 “직원의 명백한 과실이 밝혀지면 상벌위원회를 열어 처벌 수위를 정하는 게 상식이다”며 “이번 사건은 윗선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석연찮은 서울메트로의 꼬리자르기

 
서울메트로와 에이블씨엔씨의 계약은 내년 7월 종료된다. 에이블씨엔씨는 2년 재계약이 가능지만 서울메트로는 올 11월 감사에서 “계약연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계약이 존속되더라도 독점운영권 조항은 삭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정환 서울메트로 팀장은 “재계약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계약만료 시점에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에이블씨엔씨가 재계약 관련 소송을 제기한다면 적극적으로 다툴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이블씨엔씨는 수차례 입장표명을 요구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으로 서울메트로 인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메트로가 징계시효 때문에 징계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직원은 버젓이 승진했다. 징계수위를 낮춰 제식구를 감싸는 듯한 모양새도 연출했다. 더구나 윗선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메트로와 에이블씨엔씨의 ‘화장품 임대사업’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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