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솜방이 처벌’만 하는 까닭

▲ 시민사회단체들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가 솜방망이 처벌을 거듭하고 있어서다. 사진은 12월 12이 오후 서울 청계광장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있었던 대기업불공정거래행위 근절 촉구 대회.(사진=뉴시스)
공정위의 ‘과징금 폭탄’이 도마에 올랐다. 기업은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공정위는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징금 폭탄 논란은 따져봐야 할 게 많다. 공정위가 강도 높게 담합행위를 규제해 과징금을 부과했다면, 기업들의 불공정행위가 줄었어야 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장에선 불공정행위가 판을 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9138억원(11월 기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사상 최고치다. 대다수 언론은 ‘과징금 폭탄’이라고 비판했다. “경기도 안 좋은데 기업에 너무 많은 부담을 준 것 아니냐” “이명박 정부의 공정사회 기조가 영향을 미쳐 공정위의 칼날이 매서워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의문이 있다. 공정위가 ‘과징금 폭탄’을 날렸는데, 기업의 불공정행위는 왜 줄지 않았느냐다. 위평량 경제개혁연대 상임연구위원은 “공정위가 얼마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몇 건의 사건을 해결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처벌이 있으면 기업의 불공정행위가 줄어야 함에도 줄지 않고 불공정행위 수법은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징금 규정 모호해 재량 남용

실제로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제품 가격 담합의 경우 사전에 모여 가격을 결정하고 입을 맞추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9년간 가격을 담합해 올해 초 135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라면업계의 수법은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들끼리 가격인상 계획과 생산•출고 예정일, 판매실적과 홍보대책까지 전화•팩스•전자우편으로 주고받으며 담합했다. 원가상승 때문에 소비자가격이 자연스럽게 오른 것처럼 위장한 셈이다.

위 상임연구위원은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처벌은 강하지 않다”며 “안 걸리면 다행이고 걸려도 담합 등 불•편법행위로 챙긴 부당이득 중 일부만 토해내면 되는데 담합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공정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공정위가 솜방망이 처벌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공정거래법의 규정이 모호하다. 공정위가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사례를 보자.

공정위는 올 6월 4대강 사업입찰 과정에서 담합행위를 한 건설사 19곳 중 8곳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115억여원을 부과했다. 강하게 처벌을 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과징금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과징금부과 고시)’에 따르면 위반행위의 사안에 따라 중대성의 정도를 정해 부과기준을 정한다.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는 7~10% 이하, ‘중대한 위반행위’는 3~7% 미만, ‘중대성이 약한 위반행위’는 0.5~3% 미만이다. 그런데 ‘중대성의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다.

공정위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건설사 상위 6개사가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공구를 사전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담합이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진행됐다는 의미다. 4대강 사업 입찰담합을 통해 건설사들이 얻은 이익은 상당했다. 담합을 통해 가격을 부풀려 입찰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문제는 4대강 사업이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전형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국민 세금 수조원을 갉아먹은 입찰담합에 대해 공정위는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로 규정했다. 하지만 과징금은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의 가장 낮은 부과기준인 7%를 적용했다. 재량을 이용해 가장 낮은 기준을 적용한 거다. 여기까진 빙산의 일각이다. 앞서 언급했듯 담합 건설사는 111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7%가 적용됐다면 과징금 규모는 2725억원이 돼야 한다. 하지만 과징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공정위가 가장 낮은 과징금 부과기준을 적용한 것도 모자라 할인까지 해줬기 때문이다. 위 상임연구위원은 “애초 부과해야 할 과징금의 절반 이하로 경감됐다”며 “경감 사안의 기준이 뭔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최근 공정위는 지난해 광주시 하수처리장 공사 입찰담합을 공모한 대림산업•현대건설•금호산업•코오롱글로벌 4개사에 대해 68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자 담합이 적발된 건설사들은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해 달라’ ‘회사 사정이 어렵다’ ‘위반사실이 없다’며 과징금을 줄여달라고 졸랐다. 업체들의 통사정에 휘둘린 공정위는 과징금 규모를 30% 할인했다.

과징금을 부과받은 업체 중 경영난을 겪고 있던 업체는 없었다. 담합을 주도하고 회사 임원급이 가담한 현대건설에 적용할 수 있는 가중과징금, 조사를 방해한 GS건설에 대한 가중과징금은 빠졌다.

공정위의 내부심의 과정도 문제가 있다. 공정위는 처벌수준을 9명의 전원회의를 통한 내부심의로 결정하는데, 이들의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올해 9월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정무위원회)이 공정위 내부제보를 인용해 “공정위가 4대강 사업 입찰담합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안건 처리시기를 청와대와 협의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반박은커녕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 내부제보자 색출에 나섰다. 독립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위평량 상임연구위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공정위 위원들을 시민단체 등에서 추천을 받고 엄격한 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정위가 자신들의 고유권한인 ‘전속고발권’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의 고발조치는 지난 30년 동안 전체 시정실적의 0.9%에 불과했다. 고발여부를 재량껏 결정했다는 뜻이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해 검찰고발권을 공정위에 일임한 제도다. 행정적 제재와 민•형사적 제재가 중복될 경우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 1996년 도입됐다. 명백하고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대해선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고발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재량권이 남용될 소지가 많아 문제로 지적돼 왔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동의, 해법은 달라

현재 유력 대선후보들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다만 중대한 불법행위에 대한 일부 폐지냐 전면 폐지를 통한 전속고발권 확대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전속고발권을 전면 폐지하고 고발권자를 조달청장이나 중기청장, 감사원장 등으로 확대해 처벌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경우 공정위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느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전면적인 폐지보다 중대한 위반행위에 대해 일부 폐지하자는 입장이다. 담합이나 하도급 등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만 공정위 고발권을 견제하는 동시에 전면적인 폐지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해결책으로 내놓고 있다.

공정위의 시장감시를 ‘과징금 폭탄’이라고 떠드는 언론이나 과징금 액수가 늘어난 것을 자랑처럼 여기는 공정위 모두 문제다. 과징금을 많이 부과한 게 공정위의 성과가 될 수는 없다. 공정위의 역할은 이름처럼 공정경쟁 시장을 만드는 거다.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불공정행위가 줄어들었는가. 공정위 개혁이 시급하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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