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한부모 조손가정과 원격수업
컴퓨터 앞에 앉은 손주와 할머니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지만 세삼한 지원 필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세계다. 행여 잘못 만졌다가 뭐라도 잘못될까 그저 바라볼 뿐이다. 조손가정의 원격수업이 그렇다.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도울 방법이 없다. 코로나19 시대와 교육 불평등 세번째 이야기 ‘조손가정의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 6월, 한 조손가정을 만났다. 무더위가 뜨겁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시스템에만 집중하는 사이, 취약계층은 더 큰 위기에 몰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스템에만 집중하는 사이, 취약계층은 더 큰 위기에 몰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로 원격수업 시스템이 도입됐다. 학교라는 전통적인 시설이 폐쇄되면서 스마트기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거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에만 집중하는 사이, 우리가 보듬어야 할 취약계층은 더 큰 위기에 몰렸다.

“취약계층이 소외되거나 뒤처지지 않게 다양한 방법으로 각별하게 지원해주길 바란다”는 정세균 국무총리(당시)의 당부가 있었지만, 그 말이 ‘다양한 방법’으로 ‘각별하게’ 취약계층에 닿았는지는 되돌아볼 일이다. 취약계층의 아이들은 더 외로워졌고, 그 아이들을 둘러싼 울타리 역시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장혜승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세계적인 팬데믹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중요하다”면서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정서·심리적인 지원을 비롯해 장시간 온라인 환경에 노출된 학생들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지난해 결연양육비 지원아동 582명에게 ‘코로나19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본 결과를 보면, 전체의 39.1%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영양이 풍부하고 다양한 반찬이 있는 식사(26.7%)’ ‘지역아동센터·복지관 등 외부기관 프로그램(25.2%)’이 필요하다고 답한 아이들도 많았다. 취약계층의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다.

꿈 많은 중학생 슬기(14·이하 가명)는 얼마 전까지 유튜버가 되고 싶었지만 최근 꿈이 바뀌었다. 손재주가 좋아 무엇이든 쓱쓱 잘 그리는 슬기는 웹툰 작가가 되는 상상에 종종 빠지곤 한다. 사실 슬기의 꿈은 따로 있다.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엄마처럼 아이들을 잘 돌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1년 넘게 계속되면서 슬기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지역아동센터·복지시설 등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인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초등학교 5학년 남동생 수호(11)와 사사건건 부딪힌다. 슬기는 동생도 바깥 활동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어째 자꾸 집에서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시간만 들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두 아이의 아빠 유성철(51)씨는 전기기술자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에어컨 설치 업무가 늘었다. 굵은 땀을 쏟으며 고된 하루하루를 보낸다. 성철씨는 10년 전 아내와 헤어진 후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 퇴근 후 마시는 소주 한잔이 유일한 낙이다.

이혼하면서 두 아이는 성철씨가 맡았다. 한창 엄마 품이 그리울 네 살, 한 살 때 떨어져 엄마 품이 그리울 법도 한데, 두 아이는 내색 않고 잘 자라고 있다. 살갑지 못한 성격 탓에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사이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다.

성철씨의 모친 이양순(83) 할머니는 성철씨를 비롯한 세 아들과 함께 산다. 자식 넷 중 딸은 시집가서 잘 사는데, 아들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예순이 코앞인 큰아들은 아직까지 미혼이고, 둘째와 셋째는 결혼해 자식 낳고 행복하게 사는가 싶더니 둘째에 이어 셋째까지 이혼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양순 할머니는 “나한테 며느리복은 없는 모양”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 근처 시장에 오일장이 열릴 때마다 양순 할머니는 외출을 한다. 시장 한쪽 바닥에 채소를 펼쳐놓고 판다. 벌이는 얼마 되지 않지만 ‘이 나이에 한푼이라도 벌 수 있는 게 어디냐’고 생각하며 5일에 한번 시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다리가 아파서 언제까지 장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제도 시장에 나갔는데 오래 못 있겠더라고요. 이제 그만해야지,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자꾸 가게 되네요.”

슬기와 수호, 유성철씨, 양순 할머니는 한 가족이다. 성철씨의 형제까지 포함하면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이들은 경기 고양시의 한 지붕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산다. 한부모가정이자 조손가정이다.

✚ 대가족이네요.
슬기 : “예전엔 아홉식구가 한집에 살기도 했어요. 그거 생각하면 많은 것도 아니죠.”
양순 할머니 : “식구들 밥 챙겨줄 나라도 있어서 다행이에요. 친구들은 어린 손주들 봐서라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고들 해요.”


✚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서 할머니가 신경 쓸 게 더 많아지셨겠어요.
양순 할머니 : “손주 둘 다 학교에 안 가고 집에 있으니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요.”
슬기 : “그래도 올해는 격주로 등교하고 있어요. 지난해엔 2주는 원격수업하고, 1주는 학교 가고 그랬어요.”


✚ 3주에 한번 등교한 거네요. 동생도 격주로 등교해요?
슬기 :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인데, 일주일에 2~3일 정도 가요.”


✚ 손주들 끼니 챙겨주기도 힘드시죠?
양순 할머니 : “좀 귀찮다는 생각도 한번씩 해요. 나까지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하니까. 장날 시장에 나가는 거 빼곤 집에서 손주들 밥 챙겨주고 있어요.”


✚ 장사를 하세요?
슬기 : “3일, 8일에만 나가세요.”


✚ 아, 오일장에 나가시는군요.
양순 할머니 : “장날 가서 채소 팔아요. 직접 농사지은 건 아니고, 시골에서 농사지은 거 받아다가 파는 거죠. 큰돈은 안 돼요. 그거 팔아서 애들 과일 사다주는 정도예요. 애들 클 때까진 뭐라도 해야 하는데….”


✚ 할머니가 장에 나가시는 날엔 누가 식사를 챙겨주나요?
양순 할머니 : “어쩌다 한번씩 라면은 끓여먹는 거 같더라고요.”
슬기 : “큰아버지가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세요. 큰아버지 아니었으면 저희 둘이 이렇게 크기 어려웠을 거 같단 생각을 종종 해요.”
양순 할머니 :  “모르는 줄 알았는데, 다 알고 있었네?”
슬기 : “에이, 그럼 잘 알죠. 큰아버지도 엄격하셔서 잔소리를 좀 많이 하시긴 하는데, 그게 다 우리 잘되라고 그러시는 거 알아요.”
양순 할머니 : “수호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거 같더라고요.”

✚ 동생은 큰아버지와 갈등이 좀 있나보죠?
슬기 : “요즘 사춘기이기도 하고, 한창 스마트폰에 빠져 놀 때거든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스마트폰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까 큰아버지가 그걸 좀 통제하세요. 아마 다른 집 부모님들께선 그렇게까지 안 하실 걸요. 그러니까 동생 입장에선 통제당하고 간섭받는 게 싫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예민할 시기잖아요.”

양순 할머니 : “그런데 난, 아무리 큰아버지라고 해도 얘네들한테 누가 잔소리하는 거 싫더라고요. 보기만 해도 안쓰러운 애들이라, 차라리 내가 야단을 치고 말지…. 그래도 이렇게 바르게 자라주는 거 생각하면 참 고마워요.”


✚ 아버지하곤 대화가 없어요?
슬기 : “아버지가 굉장히 무뚝뚝하세요. 필요한 준비물이 있거나 가정통신문이 있을 때 말곤 대화가 거의 없어요. 그래도 다음 생일엔 휴대전화 바꿔주신다고 했어요. 제가 그동안은 어른들 쓰던 것만 물려받아서 썼거든요.”


✚ 그럼 원격수업 받을 땐 어떻게 했어요? 
슬기 : “집에 컴퓨터가 있어서 저나 동생이나 따로 대여받진 않았어요. 그것보다 수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 집에서 공부하려면 아무래도 그렇죠.
슬기 : “중학교 2학년이라 이제 시험걱정, 공부걱정도 좀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중1 때 거의 학교에 못 가서인지 뭘 제대로 배우지 못한 느낌이에요. 처음엔 수학을 비롯해 몇몇 수업은 머리에 전혀 안 들어왔어요. 그래도 이젠 좀 적응이 됐어요. 전보다 집중은 되는데, 아무래도 교실에서 수업 받는 게 더 낫긴 해요.”


✚ 집중해서 원격수업 받는 게 쉽진 않을 거 같아요.
슬기 : “시력도 더 나빠졌어요. 얼마 전에 안경 렌즈도 바꿨어요.”


✚ 수업은 얼마나 해요?
슬기 : “보통 6교시까지 해요.”


✚ 쌍방향 수업도 있어요?
슬기 : “수업마다 다르긴 해요. 실시간으로 채팅하면서 수업하는 것도 있는데, 교실에서 수업 받는 것만큼 질문이 나오진 않더라고요. 대부분 구글 클래스룸으로 수업을 하는데, 수업방을 하나씩 만들어서 과목마다 들어가는 시스템이에요. 거기서 동아리 활동도 해요.”


✚ 수업 끝나면 뭐해요?
슬기 : “원격수업 끝나면 친구들 대부분은 학원에 가요.”


✚ 원래 학원에 많이 다니나 봐요.
슬기 : “코로나19로 원격수업 받으면서 학원에 더 많이 다니더라고요.”


✚ 슬기 학생도 학원에 다녀요?
슬기 : “아뇨. 학원 다닐 형편까진 아니어서 저는 지역아동센터에 가요.”


✚ 그곳에서 공부도 해요?
슬기 : “만들기 수업도 하고, 칸막이 설치해놓고 공부도 해요. 한달에 한번씩 생일파티도 하고요. 석식도 제공해줍니다.”

시스템에만 집중하는 사이, 취약계층은 더 큰 위기에 몰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스템에만 집중하는 사이, 취약계층은 더 큰 위기에 몰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동생도 같이 가요?
슬기 : “아뇨. 동생은 요즘 도통 움직이려 하지 않아서 집에만 있어요. 그래서 살도 많이 쪘어요.”
양순 할머니 : “수호는 일주일에 한번씩 드림스타트 선생님이 오셔서 공부를 봐주고 있어요. 주위에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슬기 : “보면 한번씩 미술심리치료 같은 것도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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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스타트 사업은 취약계층 아동에게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해 아동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고 공평한 출발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실시하는 아동복지 프로그램이다. 0~12세 아동과 가족을 대상으로 건강·복지·보육·교육 프로그램을 전개한다.


✚ 9월부턴 전면등교를 실시한다고 발표했잖아요. 어때요?
양순 할머니 : “애들이 빨리 학교에 갔으면 좋겠어요. 붙어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하루 종일 티격태격해요.”
슬기 : “그래도 컴퓨터 다루다 모르는 거 있으면 서로 도와주기도 해요. 아빠는 일 나가시고, 할머니는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시니까 어떻게든 둘이 머리를 맞대야죠.”


✚ 둘이서도 해결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슬기 : “실제로 그런 적이 한번 있었어요.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컴퓨터에 에러가 났는지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그땐 동생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급하게 컴퓨터 잘하는 친구한테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아슬아슬하게 수업 10분 전에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됐어요. 친구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아마 그날 수업은 못 들었을 거예요.”


✚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걱정이 많으시죠?
양순 할머니 : “남들한테 우리 형편이 어려워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 저는 그렇게 어려운 거 없어요. 이 아이들만 건강하게 잘 컸으면 좋겠어요.”
슬기 : “할머니도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식사도 거르지 마시고, 약 꼬박꼬박 챙겨 드시고요. 요즘 할머니 기억이 자꾸 깜빡깜빡하시는 거 같아 걱정이에요.”
양순 할머니 : “손주들 봐서라도 오래 살아야 하는데 나이가 드니 뭐 별수 있나요. 아버지라도 다정하면 좋을 텐데, 그러질 않으니 내가 한번이라도 더 살펴야죠.”


원격수업이라는 초유의 시스템을 도입한 정부는 2학기 전면등교를 발표했다. 교육격차와 돌봄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서다. 하지만 최근 델다 변이 바이러스가 새롭게 등장하고, 4차 대유행이 확산하면서 등교수업은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지금껏 그래왔듯 ‘교육 거리두기’에만 몰두하면 지금까지 벌어진 수많은 격차들은 더이상 손쓸 수 없을 정도까지 벌어질 수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손자녀들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이들에게 더 따뜻하고 촘촘한 지원 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 이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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