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 사업단 공동기획
기자 멘토 되다 - MOO민상팀 편
‘길거리 담배꽁초 없애기’ 도전기

환경미화원이 매일 길거리를 쓸어내는데도 늘 발견되는 쓰레기가 있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버린 담배꽁초다. 한편에선 치우면 그만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꽁초의 폐해는 거리 미관을 해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때론 토양을 오염시키고, 때론 바다 생태계를 망친다. 

하지만 재활용하기 어려운 꽁초를 없애는 방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 어려운 과제를 청년들이 풀겠다고 나섰다. 김무광(소비자주거학) 학생, 김민선(행정학과) 학생, 안상원(국어국문학과) 학생으로 구성된 ‘MOO민상’ 팀이 그들이다. 더스쿠프(The SCOOP) 기자가 멘토로 참여했다. 

길거리 담배꽁초는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길거리 담배꽁초는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담배꽁초가 없는 깨끗한 거리를 만들 수 없을까?” 이런 의문을 품어본 적 있을 거다. 비흡연자라면 더욱 그렇다. 사실 흡연자들이 무심코 버리는 담배꽁초는 미관을 해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2016~2020년 8월 통계)에 따르면 상가건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화재 10건 중 7건 이상(77.2%)이 덜 꺼진 꽁초 탓에 발생했다.

꽁초의 폐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버려진 꽁초가 하수관을 통해 하천이나 바다로 흘러가면 담배필터(미세플라스틱)가 잘게 부서져 수중 생태계를 파괴한다. 때론 토양오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담배 판매량의 3분의 2가 땅에 버려져 토양을 오염시켰다. 꽁초를 잘 수거해서 처리해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대안인데, 그게 마땅치 않다. 일례로 환경부가 외부기관에 의뢰해 2020년에 내놓은 ‘담배꽁초 관리체계 마련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방법론은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다. 담배 제조사에 폐기물 부담금을 더 부과하고, 꽁초 무단투기를 적극 단속하며(처벌법도 강화), 무단투기 방지 캠페인을 벌이는 게 해법의 골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꽁초는 재활용하는 것도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환경부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이렇게 어려운 숙제에 대학생들이 도전했다. 가톨릭대 ‘사회혁신 캡스톤디자인: 소셜리빙랩’ 수업(올해 1학기)에 참여한 3명의 학생들이다.[※참고: 이 수업은 가톨릭대가 둥지를 틀고 있는 부천시에 정책을 제안하는 걸 전제로 개설됐다. 학생들은 팀별로 각각 주제를 정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취재와 실험을 통해 대안을 검증한 후 정책으로 제안하는 게 목표다. 담배꽁초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선 팀의 이름은 ‘MOO민상’이다. 소비자주거학과 김무광 학생, 행정학과 김민선 학생, 국어국문학과 안상원 학생의 중간 글자를 따서 지었다.] 

MOO민상 팀 학생들은 첫 만남 때부터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MOO민상 팀 학생들은 첫 만남 때부터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MOO민상’ 팀이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올해 3월 말~6월 중순)에 기자가 함께했다. 난제를 떠안은 학생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기자는 흡연자로서 아이디어도 내고, 취재도 도왔다. 이를테면 참여형 밀착 취재였다. 

4월의 기록 : 브레인스토밍 = 공식적인 첫 만남일은 이 수업이 열리는 4월 8일이었지만 기자는 그보다 2주 앞서 학생들을 만났다. 학생들이 이 주제에 어떻게 접근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가톨릭대 인근 스터디카페에서 그들을 만났다.

학생들은 이미 외국에서 꽁초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부터 담배제조사 책임론을 둘러싼 논란까지 다양한 자료를 검토한 후였다. 기자도 환경부 용역자료 등을 공유했다. 덕분에 첫 만남에서부터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학생들 중엔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섞여 있어 입장 차이도 분명했다. 

흡연자는 “꽁초를 버리고 싶지 않지만 국가적인 금연정책으로 흡연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정작 꽁초를 버릴 곳이 줄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흡연구역이 많지 없으니 암묵적으로 흡연장소가 형성되고, 꽁초관리가 안 된다는 논리였다.

반면 비흡연자는 “흡연공간을 만들면 그 자체로 주변이 지저분해지고,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며, 이에 따라 별도의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맞섰다. 다만 접점은 있었다. 흡연자들이 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만들 ‘뭔가’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꽁초를 모아서 오는 이들에게 보상을 주는 건 어떨까?” “암묵적으로 형성돼 있는 흡연구역에 꽁초수거함을 놓아보는 건 어떨까?” “시가랩(cigarap)이라는 게 있더라. 꽁초를 싸놨다가 쓰레기통을 발견했을 때 버리는 건데, 그걸 나눠주는 건 어떨까?”

토론이 한창일 때 기자가 제동을 걸었다. “책상에 앉아 결론을 내리기보단 현장에서 의견을 들어보는 게 어때요? 토론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그날 이후부터 4월 말까지 ‘MOO민상’ 팀은 시간이 나는 대로 실험구역으로 미리 설정한 ‘역곡역 상가’ 주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참고: 가톨릭대와 인접한 상권에 있는 역곡역 북부 지역에는 별도의 흡연구역이 없다. 하지만 상가건물 주변 암묵적으로 형성된 흡연구역들에 무단으로 투기한 꽁초가 널려 있다. 역곡역 북부 지역을 실험장소로 정한 이유다.]

학생들은 꽁초를 버린 흡연자들과 상가회 사람들, 부천시 공무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방향을 잡아 나갔다. 부천시가 꽁초 무단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도 알아봤다. 

5월의 기록 : 두가지 장벽과 방향전환 = 현장 취재 결과는 어땠을까. 꽁초의 최대 피해자는 상가 사장님들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꽁초를 수시로 치우거나 임시 쓰레기통을 놓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환경미화원들은 덜 꺼진 꽁초의 위험성, 길거리 꽁초 수거의 애로를 토로했다. 흡연자들은 적절한 흡연 구역과 꽁초수거함이 있다면 꽁초를 무단투기하는 일도 줄어들 거라 주장했다. 꽁초를 양산하는 흡연자에게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건 현장 취재의 긍정적인 결과였다. 

그럼에도 부천시는 특별히 꽁초 관리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꽁초를 그저 치우면 되는 일반 쓰레기처럼 여긴 탓이었다. 흡연자들의 인식을 바꾸기 전에 지자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꽁초’를 줄일 방법들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 일단 흡연자의 요구에 따라 역곡역 북부에 ‘꽁초수거함’을 놔보기로 했다. 

기자는 사회공헌활동 중 하나로 꽁초수거함을 설치하고 있는 KT&G 측에 ‘실험에 참여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KT&G 측도 “학생들의 좋은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흔쾌히 지원할 뜻을 밝혔지만 두가지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첫째는 꽁초수거함의 성격과 타이밍이었다. KT&G의 사회공헌활동은 꽁초의 해양유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꽁초수거함을 ‘빗물받이 주변’에만 설치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아울러 꽁초수거함을 주문제작하는 데 최소 3주가 걸린다는 문제도 있었다. 

둘째는 지자체였다. 공적 장소에 꽁초수거함을 놓으려면 지자체의 승낙이 필요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부천시는 “공적 장소에 꽁초수거함을 설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문제를 푸는 건 간단하지 않다. 이해관계자도 설득해야 하고, 솔루션을 선택할 때도 숱한 변수를 통제해야 한다. 다행히 학생들은 에너지를 잃지 않았다. 커다란 장벽에 부닥쳤지만 우리는 거침없이 방향을 바꿔보기로 했다.

6월의 기록 : 새로운 아이디어 시가랩 = 학생들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나왔던 아이디어 중 하나였던 시가랩에 주목했다. 다행히 중소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어다인’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시가랩을 무료 배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도움을 요청했고, 어다인 측은 흔쾌히 시가랩을 제공했다.[※참고: 어다인 측은 학생들을 위해 기존 시가랩의 접착력을 개선하는 수고까지 아끼지 않았다.] 

시가랩을 제공받은 학생들은 상가회의 음식점과 술집, 편의점 등에 배포했다. 홍보와 함께 “흡연자들의 반응이 어떤지도 살펴봐 달라”는 부탁도 함께 남겼다. 흡연자들에게도 시가랩을 나눠주고 의견을 부탁했다. 기자도 시가랩을 받아 사용했다. 애초에 흡연자의 호응이 없었던 만큼 학생들은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하지만 흡연자들로부터 “막상 써 보니 괜찮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꽁초를 시가랩에 싸놨다가 쓰레기통을 발견하면 버린다’는 콘셉트가 신선하단 생각이 들었다. 담뱃갑 비닐에 쏙 들어가는 크기여서 휴대하는 데도 불편함이 없었다. 시가랩에 싸서 오래 두면 냄새가 배긴 했지만, 15~20분 내에 버리면 별문제가 없었다. 

학생들은 꽁초수거함 대신 시가랩으로 흡연자들이 꽁초 무단투기를 막아보려 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학생들은 꽁초수거함 대신 시가랩으로 흡연자들이 꽁초 무단투기를 막아보려 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흡연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학생들은 시가랩을 이용해 어떤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명함 크기의 시가랩에 지자체가 준비하는 각종 행사나 관광지를 소개하면 좋지 않을까” “주민에게는 유용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 정보를 담아도 될 듯하다” “꽁초 무단투기 캠페인을 적용해도 될 것 같다” “톡톡 튀는 디자인까지 덧입히면 ‘꽁초를 챙기는 흡연자=센스 있는 사람’으로 인식시킬 수도 있겠다” 등이었다. 기자가 보기엔 아이디어들이 꽤 그럴듯했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곁들여 ‘MOO민상’ 팀은 6월 18일 최종발표를 했다. 이들이 만든 제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흡연자들에게 시가랩을 배포해 꽁초 무단투기 방지 캠페인을 해보자.” 학생들은 꽁초 문제를 풀 수 있는 정책에 한걸음 다가갔고, 그렇게 정책은 무르익었다. 

3개월의 끝에서 = 꽁초의 무단투기를 막겠다고 나선 학생들은 3개월간 현장조사를 통해 시가랩이란 대안을 만들어냈다. 공은 이제 지자체로 넘어갔다. 지자체가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면, 청년의 아이디어는 정책이 된다. 지자체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과정이 의미 없는 건 아니다. 학생들의 발걸음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청년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