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쾌속 살균건조기 개발한 정지성 퓨어팟 대표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활동한 정지성(32) 퓨어팟 대표는 운동할 때마다 젖은 글러브가 불쾌했다. 뾰족한 세탁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중 함께 운동하던 동료들에게 도움을 받아 스포츠용 살균건조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열정에만 몰두한 나머지 첫 제품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첫 창업, 무엇을 새겨야 하는지 그에게 들어보자.

정지성 대표는 살균건조기 시장 틈새시장을 노린다.[사진=천막사진관]
정지성 대표는 살균건조기 시장 틈새시장을 노린다.[사진=천막사진관]

✚ 첫 창업이신가요?
“네, 공대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한 2년쯤 하면서 회사에 여러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런데 번번이 묵살되더라고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좌절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창업을 꿈꿨고, 창업 아이템을 찾아 나섰습니다.”


✚ 살균건조기는 어떻게 떠올렸나요?
“처음부터 살균건조기를 생각한 건 아닙니다. 국가지원사업이 많다는 걸 알게 돼 여기저기 사업계획서를 써서 냈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그러다 함께 운동하던 동료들한테서 힌트를 얻었죠.”


✚ 무슨 힌트요?
“제가 아마추어 권투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서 퇴근 후엔 복싱 체육관에서 코치로 활동했거든요. 관원들에게 운동하면서 어려운 게 뭐냐고 물어보니까 글러브에서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운동하면서 자주 느꼈던 부분이라 처음엔 세탁하는 방법을 고민해봤어요. 그런데 그것마저 번거로울 거 같았어요. 체육관에 놓고 사용할 만한 장비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살균건조기를 떠올렸습니다. 취미와 공대에서 배운 지식이 합쳐져서 아이템이 나온 셈이죠. 그 아이템으로 2018년 창업사관학교에 입교했습니다.”


✚ 기본 지식이 어느 정도 있었으니까 제품 개발은 수월했겠네요.
“그럴 줄 알았죠. 스포츠용품 업계에서 일한 덕분에 시장을 조금 알았고 복싱 체육관 관장님들과 네트워크도 형성돼 있어서 ‘만들기만 하면 잘 팔릴 것’이란 확신이 있었죠.”


✚ 문제가 있었나요?
“객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단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 객관화요?
“아이디어를 구현하다 보면 자꾸 나만의 시야에 갇혀요. 이게 맞는 건지 남들한테 물어보기도 해야 하는데, 아니라고 할까 두렵거든요. 그런 시간이 쌓이면 내 안에서만 좋은 제품을 만들어요. 그러니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꾸 욕심을 부리더라고요.” 


✚ 어떤 욕심이죠?
“처음 개발한 게 ‘스포츠용 살균 건조 키오스크(제품명 퓨어팟 슈퍼드라이 플래티넘)’입니다. 자체 개발해 특허를 받은 GTP(Grad ation Temperature Purge) 기술을 적용한 건데, 열 제어로 매일 세탁하기 번거로운 글러브·신발 등 스포츠 장비를 빠르게 살균 건조하는 제품입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살균·소독·건조·탈취 등 좋다는 건 모두 집어넣었어요.  기술 난도는 점점 상승했고 제품 가격도 800만원대까지 치솟았어요.”


무언가를 빠르게 건조하려면 온도와 바람이 필요하다. 온도를 높이면 빠르게 마르지만, 그만큼 소재가 상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더군다나 스포츠 장비의 소재는 대부분 가죽이기 때문에 온도가 6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제품이 갈라지거나 변색할 위험이 커진다. 퓨어팟이 특허를 받은 GTP는 건조 구간별로 온도와 풍량을 제어하는 기술이다.

✚ 살균건조기 1대 가격이 800만원이라고요?
“마음이 앞섰죠. 스타트업이 처음 만든 제품 1대 가격이 800만원이라니,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구매하겠다던 체육관 관장님들이 망설일 만도 했어요.”


✚ 그래서 첫 제품은 실패로 끝났나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18대를 만들어서 베어스타운·울산시청 등 10개소에 납품·설치했어요. 물론 기능은 모두 구현됩니다. 하지만 아직 보완할 부분이 있어서 계속 연구 중입니다. 퓨어팟의 첫 제품이고 특허기술을 처음 적용한 제품이어서 끝까지 함께할 겁니다.”


✚ 다른 출시 제품은 뭔가요? 
“1차 제품을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있는 1년 안에 끝내려고 하니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보완해 2차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판매하고 있는 ‘퓨어팟 슈퍼드라이 미니+’인데 기술도 가격도 많이 덜어낸 제품입니다. 보급형 버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 포트폴리오에 모자 관리기도 있던데요. 
“슈퍼드라이는 직접 가서 설치하는 제품입니다. 품이 많이 들죠. 택배로 배송 가능한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게 모자  관리기(제품명 퓨어팟 솔솔)입니다. 그러면서 노린 게 틈새시장입니다.”


✚ 틈새시장이요?
“신발 살균건조기는 있어도 모자나 가발 제품은 없잖아요. 저는 계속 그런 시장을 겨냥할 겁니다. 이 세상에 없는 제품, 대기업이 들어오지 못할 틈새시장이요.”


✚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퓨어팟이 독점할 수 있는 시장을 원했습니다. 스포츠용 살균건조기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였고요. 모자  관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세탁기나 의류관리기는 대기업에서 만들지만 모자나 가발만을 위한 신제품을 개발하진 않을 거잖아요. 시장이 작으니까요. 그렇다고 시장이 아주 작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해외시장까지 생각하면 작은 시장이 아닙니다.”


✚ 말 그대로 틈새시장이군요.
“그렇죠. 있을 법한데, 찾아보면 없는 제품들 위주로 만들고 있습니다. 자전거나 오토바이 헬멧도 전용 제품이 없어서 관리가 힘들었거든요. 모자 관리기는 그런 분들의 구매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 마케팅에도 신경을 쓰셨던 것 같아요. 모자 관리기는 제품 홈페이지가 재미있던데요. 
“그거 다 제가 한 거예요(웃음).” 


✚ 제품 상세페이지를 직접 만드셨다고요?
“네. 슈퍼드라이는 B2B 제품이라 마케팅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모자 관리기는 B2C 제품이다 보니 마케팅 공부를 해야겠더라고요. 6개월 동안 마케팅 서적을 쌓아놓고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공부했습니다. 밑줄 그어가며 상세페이지에도 바로바로 적용해봤죠. 마케팅 담당 직원을 채용할까 고민도 해봤지만, 제가 만든 제품은 제가 가장 잘 알잖아요. 그래서 직접 했습니다. 나중에 규모가 커지면 마케팅 전문업체에 맡길 수도 있지만 초기 마케팅 기획은 대표가 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 코로나19로 위생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는데 도움을 좀 받으셨나요?
“사실 그런 얘기들이 반갑지 않더라고요. 이슈를 타고 잘됐다는 건 이슈가 없으면 안 될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런 거에 편향되지 않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 해외시장에서도 관심을 보이나요?
“천천히 수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북미·캐나다 지역은 총판 계약이 진행 중이고요. 모자 관리기는 해외인증과 국제특허출원까지 완료한 상태입니다.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나중을 위해서 준비해뒀죠. 지속적으로 유럽, 일본, 미국을 중심으로 시장을 넓혀보려고 합니다.”


✚ 퓨어팟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인기 많은 제품을 만들긴 쉽습니다. 잘 만든 제품에 살짝 꼼수만 부리면 매출 10억, 20억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다음이 없겠죠. 저는 퓨어팟을 대중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게 꿈입니다. 살균건조기 제품을 떠올렸을 때 퓨어팟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죠. 그렇게 살균시장에서만은 독보적인 ‘퓨어팟 랜드’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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