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9단 김영호의 핫스팟
역사와 전통 간직한 전통시장
“전통 고집할수록 새로워졌다”
브랜딩·마케팅 새롭게 차별화

우리나라 전통시장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복합쇼핑몰이나 백화점, 각종 할인점에 밀려 생존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전통시장만의 뚜렷한 차별점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엔 남다른 경쟁력을 가진 전통시장이 숱하다. 그중 하나는 바로 호주 멜버른에 있는 ‘퀸 빅토리아 마켓’이다. 언뜻 우리와 별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색다른 전략이 가득하다.

호주 멜버른의 퀸 빅토리아 마켓은 143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이다.[사진=퀸 빅토리아 마켓 홈페이지]
호주 멜버른의 퀸 빅토리아 마켓은 143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이다.[사진=퀸 빅토리아 마켓 홈페이지]

필자는 전통시장과 연이 깊다. 전통시장을 관리ㆍ감독하는 ‘시장진흥원(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연을 맺고 오랫동안 관련 강의와 경영컨설팅을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호주 멜버른을 방문했을 때에도 필자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멜버른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전통시장 ‘퀸 빅토리아 마켓(Queen Victoria Market)’이 있다.  

필자는 총 2회에 걸쳐 퀸 빅토리아 마켓을 방문하고 시장조사를 했다. 상품별로 나눠진 마켓 전체를 세밀하게 점검한 것은 물론 매주 수요일 밤에만 개장하는 ‘나이트 마켓’도 직접 경험했다. 이를 통해 국내 전통시장과 상당히 다른 퀸 빅토리아 마켓만의 전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퀸 빅토리아 마켓이 우리 전통시장과 어떻게 다른지 하나씩 살펴보자.  

■전략➊ 브랜딩 = 퀸 빅토리아 마켓의 명칭은 영국 여왕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장에 여왕의 이름을 붙였다는 점에서 독특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시장에도 왕의 이름을 붙여 브랜딩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퀸 빅토리아 마켓은 이름에서 왕의 권위를 빌려온 만큼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1000여명의 상인들은 1878년 3월 시장이 문을 연 이래 140여년 가까이 ‘스톨(stall)’이라고 불리는 재래식 매대를 사용하고 있다. 

1970년대 멜버른 시 당국에서 도심 재개발을 추진하려 했을 때도 시민들이 나서 시장을 지켰다. 문화유산을 지키겠다는 시민들의 의지에 재개발은 없던 일이 됐다는 거다. 당시 시장과 시 당국은 육류관 등 일부 매장의 코너를 현대식으로 보수 공사하는 정도로 타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결과는 호주와 정반대였을 것이라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전략➋ 다양성 = 퀸 빅토리아 마켓은 자그마치 6만9300㎡(약 2만1000평)의 넓이를 자랑한다. 시장 내부는 먼저 상품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한 후 각 판매점을 여러 개의 블록으로 나눠 배치했다.

그만큼 퀸 빅토리아 마켓은 멜버른의 보물창고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식재료ㆍ산물ㆍ공예품ㆍ의류 등 의식주와 관련된 대부분의 상품을 바로 구입할 수 있다.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기 위한 퀸 빅토리아 마켓의 노력은 ‘마켓 내 마켓’ 시스템에서도 드러난다. 시장에서는 고객들이 관심 있는 제품군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미니마켓(Mini Market)’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그 종류도 ▲과일 ▲책 ▲장난감 ▲애견용품 ▲아트상품 등으로 다양하다. 

■전략➌ 항상성 = 퀸 빅토리아 마켓은 개점 이래 143년간 일관된 개점일과 휴점일을 고수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일요일은 문을 열고 월요일과 수요일은 휴장한다. 대신 봄ㆍ가을에는 수요일 저녁 5시부터 밤 10시까지 ‘나이트 마켓’이 열린다.  

고집스럽게 지켜온 운영 시간만큼이나 퀸 빅토리아 시장 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 푸드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푸드 트럭에서 판매하는 도넛과 호주 커피 ‘롱블랙’, 유기농 재료로 만든 수제 햄버거는 시장에 방문한다면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명물이다.   

■전략➍ 이벤트 = 앞서 말했듯 매년 봄ㆍ가을에만 열리는 나이트 마켓에는 60여개 나라의 대표 음식들과 전 세계 관광객이 총집합한다. 각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현장에서 직접 만들기 때문에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때 시장 한편에 있는 공연장에선 음식을 나눠 먹는 참가자들에게 라이브 밴드 음악을 들려준다. 덕분에 평상시 마켓과는 전혀 다른 풍경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퀸 빅토리아 마켓은 식재료부터 공예품까지 의식주와 관련한 대부분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사진=퀸 빅토리아 마켓 홈페이지]
퀸 빅토리아 마켓은 식재료부터 공예품까지 의식주와 관련한 대부분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사진=퀸 빅토리아 마켓 홈페이지]

나이트마켓에서는 신선한 과일과 코코넛 주스, 호주의 맥주와 와인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아울러 각국의 문화를 담은 작품들과 오래된 서적, LP는 물론 직접 만든 오가닉 향초와 비누 등 다양한 바디 제품까지 선보인다. 이 시기 퀸 빅토리아 마켓은 복고풍 상품과 이국적 제품들이 뒤섞인 ‘지구촌 마켓’이 된다.

■전략➎ 마케팅 = 퀸 빅토리아 마켓에는 매일 오전 전문 가이드가 시장 전체를 소개해 주는 시장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신청자들은 2시간 동안 가이드와 함께 시장을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햄이나 수제 빵, 커피 등 넘쳐나는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건 덤이다.  

퀸 빅토리아 마켓의 남다른 전략은 오프라인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한 이후 발 빠르게 온라인ㆍ모바일 판매 시스템을 구축했다. 덕분에 소비자는 집ㆍ직장에서 온라인으로 상품을 주문해 편하게 배송을 받을 수 있다. 

자, 어떤가. 우리 전통시장도 충분히 벤치마킹할 만하지 않은가. 도시의 소비자들이 초현대식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퀸 빅토리아 마켓의 존재 의의는 각별하다. 다양한 상품과 즉석에서 값을 흥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 풍성한 볼거리가 전통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쇼핑의 재미를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도 있다. 최근 퀸 빅토리아 마켓의 상인들이 중국인들로 교체되고 있는 분위기다. 상점을 매입하는 주체도 호주 원주민이 아닌 중국인이 상당수다. 머지않아 중국인들이 이 전통시장의 주류가 될 것 같아 불안해 보인다. 만약 국내 전통시장이 부활에 성공한다면 똑같은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전통시장의 발전 과정에서 미리 대비를 해놓아야 할 대목이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 더스쿠프 전문기자 
tigerhi@naver.com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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