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브마트 리팡의 과제
유통기한 임박 상품 특가 판매
신뢰 얻는다면 획기적인 도전

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무서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면, 대출이 있는 서민들의 원리금 압박은 더 심해질 게 분명하다. 경기라도 좋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금은 코로나19 국면, 모든 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반품된 공산품이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류를 값싸게 파는 리퍼브마트가 등장해 이목을 끌고 있다.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리퍼브 시장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소비자들이 리퍼브마트 리팡에서 장을 보고 있는 모습.[사진=더스쿠프 포토]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리퍼브 시장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소비자들이 리퍼브마트 리팡에서 장을 보고 있는 모습.[사진=더스쿠프 포토]

“오늘의 식품 차(트럭)가 들어왔습니다. 오늘도 특가코너 및 깜짝 이벤트 빵빵하게 준비돼 있습니다. 얼른 리팡런해주세요.” 지난 15일 오후 네이버 밴드 알림 아이콘이 켜졌다. ‘리팡’ 상봉터미널점의 알림이다. 스크롤을 내리며 입고된 상품 사진들을 확인한 후 그곳으로 향했다.

지난해 10월 31일 서울 중랑구 상봉동 상봉터미널 1층에 문을 연 리팡 상봉터미널점은 리퍼브마트다. 리팡이 둥지를 튼 곳은 맞은편에 이마트 상봉점이 있고, 인근엔 홈플러스 상봉점과 코스트코 상봉점이 있는 마트 밀집 지역이다. 누가 이 격전지에 들어설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반품된 상품과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파는 리퍼브마트가 들어왔다.

리팡 상봉터미널점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단 체온체크를 할 수 있는 기기와 안심콜 번호가 적힌 안내문이 반긴다. 지켜 서서 일일이 확인하는 직원은 없지만 2년째 해오는 행위라 의식을 치르듯 체온을 체크하고 전화를 걸었다. 

매장은 입구를 중심으로 왼쪽으론 생활·주방용품 등 공산품, 오른쪽엔 식품이 진열돼 있다. 먼저 왼쪽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역시나 확진자 5만명(14일 기준) 시대를 실감케 하는 손소독기와 체온계다. ‘음성안내 스마트 자동 손소독기 온도측정기 겸용 벽부형 탁상용’이라는 스티커가 부탁된 손소독기(K9 Pro)는 50% 할인해 26만2630원짜리가 13만1320원에 판매되고 있다. 

비접촉식 체온계와 PC 스피커 등을 지나 코너를 도니 이번엔 주방용품 코너다. 상자 아랫부분이 살짝 찢어져 테이프로 붙인 자국이 있는 더플레이트 인덕션 1구 패키지(삼성전자)가 50% 할인된 가격인 17만원에 판매 중이었다.

대부분 반품 상품인 탓에 더러는 포장이 깨끗하지 않고, 테이프로 밀봉이 돼 있어 상태를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없는 것 빼곤’ 다 있는 듯했다.[※참고: 제품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검수코너에서 직원과 함께 검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안내문구가 진열대에 붙어 있다.] 주방 한쪽에 놓으면 제법 그럴싸할 것 같은 토스터기(발뮤다)와 커피머신(프랜잇)이 정상가 대비 각각 40%, 50% 할인된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고, 가습기, 히터, 와플메이커도 제법 싼값에 매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몇천원짜리 식기부터 고가의 르크루제 무쇠 주물냄비도 진열돼 있다. 이 냄비는 공식 온라인몰에서 27만3000원에 판매 중인데, 여기서의 가격은 40% 저렴한 16만3800원이었다. 유아 카시트도 있었다. 출산준비물로 샀던 카시트를 3년째 사용하고 있는 터라 ‘50% 할인’ ‘15% 추가 할인’이라는 문구에 솔깃했지만, 구매욕을 누르고 다시 매장 탐방(?)을 이어갔다. 

식품 코너로 방향을 다시 돌리던 그때, 기자의 눈에 리퍼브상품이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주는 안내문이 들어왔다. 설명을 보면 이렇다. “1. 반품 처리된 상품들을 창고로 회수 2. 창고에서 리퍼브상품 1차 검수 3. 매장에서 진열 시 2차 검수 4. 정상 품질의 상품을 값싼 가격에 득템.”

자, 이제 식품 쪽으로 가보자. 식품 코너엔 샐러드, 베이커리, 채소, 육류는 물론 밀키트까지 다채로운 상품들이 즐비하다. 온라인몰에서 봤던 상품들, 시중마트에선 보기 힘든 생소한 허브 종류도 많다. 공산품이 반품 처리된 상품 위주라면, 식품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들이 주를 이룬다. 상품에 따라 다르지만 샐러드와 베이커리, 밀키트 등은 유통기한을 하루 이틀을 남겨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만 샌드위치(치엔바오)는 유통기한이 하루 남았고, 불고기버섯샐러드(저스트그린)는 당일이 마지막 날이었다. 해당 제품은 각각 1500원(25% 할인), 4120원(36% 할인)에 판매되고 있었다.

리팡에서는 공산품 외에도 각종 신선식품을 판매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리팡에서는 공산품 외에도 각종 신선식품을 판매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공산품 코너에 입고 과정을 설명하는 안내문이 있다면, 식품 코너엔 ‘유통기한 임박 상품일 뿐 품질에는 영향이 없으니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는 안내글이 붙어 있다.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일까.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안내문도 발견할 수 있었다.

장바구니 가득 식재료들을 채운 이연숙(가명)씨는 “유통기한이 오늘 내일이라 두고두고 먹긴 좀 그렇지만 그날 먹을 찬거리를 살 땐 종종 이용한다”면서 “간편하게 조리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상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어서 꽤 괜찮다”고 말했다. 

리퍼브마트 리팡은 지난해 3월 인천 구월점과 경기도 고양시에 일산점을 내고, 10월엔 서울 1호점인 상봉점을 오픈했다. 리퍼브가전과 리퍼브가구 시장은 있지만 유통기한 임박상품을 파는 오프라인 매장은 사실상 처음이다.[※참고: 유통기한 임박상품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있지만 대부분 온라인인 데다, 가공식품 위주다.] 

그렇다면 이 시장은 왜 생겼을까. 김경자 가톨릭대(소비자주거학) 교수는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상품들은 재고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걸 소화해줄 시장이 필요했을 것”이라면서 “리퍼브마트는 그런 틈새시장을 겨냥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고물가’다. 경기침체가 길어지는 데다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나날이 팍팍해지고 있다. 여기에 고공행진하고 있는 물가는 서민의 시름을 더 깊게 만든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유통기한 임박상품은 이런 서민들에게 ‘숨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숙제가 있다. 깐깐한 소비자들에게 ‘믿고 먹어도 된다’는 신뢰를 선물하는 거다. 

리팡도 이걸 모르는 건 아니다. “소비자들이 신선식품 날짜에 특히 민감하다는 걸 우리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한 리팡 관계자는 “거래업체에서 물건을 받으면 가격표를 붙이면서 유통기한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매장에서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유통기한을 체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익성 동덕여대(경영학) 교수는 “유통과정에서 한번 걸러진 물건이지만 신선하게 관리하고 유통한다는 정보를 소비자와 공유한다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라면서 “이 문제만 해결하면 획기적이고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팡은 과연 이 숙제를 풀고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어 고물가 시대에 꼭 필요한 마트란 ‘정체성’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유통기한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빛을 보지 못한 상품에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리팡의 비전과 고물가의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고 싶은 서민들의 요구가 맞아떨어져 리퍼브마트 시장은 더 커질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통념을 넘어서야 하는 숙제가 이제 막 출발선에 선 리팡 앞에 놓였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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