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17회 ①

순신은 조수의 진퇴와 독룡의 발작으로 즉 우주간의 자연적 힘을 이용하여 사천 및 곤양의 적의 선봉을 파하고 또 많은 적선이 당포 앞바다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밤새도록 행선하여 창선도 사량도를 거쳐 당포에 이르렀다.

 

이순신은 손수 승전고를 울려서 싸움이 끝이 나니 날이 이미 저물어 황혼이 되었다. 순신은 전 함대를 몰고 모자랑포1)로 가 밤을 지내기를 하령하였다. 그래서 뱃머리를 돌려서 배질을 하는데 장수들은 금일 승전의 기쁨에 의기충천하였다. 다만 군관 나대용과 이설이 적의 탄환을 맞아서 장졸들에게 위문을 받았으나 상처는 급소가 아니어서 그리 대단치 아니하였다.

순신이 나대용과 이설을 자기가 탄 상선으로 옮겨와서 손수 그 상처를 살펴보고는 금창약2)을 붙여주었다. 우후 이몽구 순천부사 권준 이외에 광양 녹도 방답 낙안 등등 제장이 전승한 축하를 할 차로 순신의 기함에 모였다. 원균 기효근 이운룡 등등의 영남 제장도 찾아왔다.

순신이 입었던 갑옷을 벗으니 피가 흐른 것이 보였다. “사또 이게 웬일이오?” 하고 모였던 장수들이 놀랐다. 순신은 “왼편 어깨에 철환을 맞은 모양이야” 하고 피 묻은 적삼을 벗었다. 피가 많이 흘러서 버선목에까지 가득하였다.

순신은 “그 조선 사람인지 하는 놈들이 많이 탔던 큰 배를 칠 때에 등에서 뜨끔하더니 그놈들의 철환이 와서 나를 맞혔어. 자, 칼끝으로 살 속에 박힌 철환을 파내어 보오” 하고 제장들 앞에 등을 돌려 밀었다. 녹도만호 정운이 꿇어 앉아서 칼끝으로 순신의 왼편 어깨에 박힌 철환을 파냈다.

그리고 고약을 붙이고는 제장들이 순신에게 권하여 “들어가 장막 안에 누우시오” 하였으나 순신은 태연자약하여 제장들과 술을 나누어 전승 축하를 같이 하면서 각 병선에 미리 준비하여 두었던 철방패를 각선에 나누어 주어 이 뒤에 오는 전투에서 철환을 막으라고 명하였다.

순신이 철환을 맞고도 워낙 건강하여 넘어지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싸움이 막 어우러진 때에 자기가 총을 맞았다고 하면 군사의 사기가 꺾일까 두려워하여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아니하고 손에 활을 놓지 아니하여 종일토록 독전한 것이었다.

관장목3)이 뼈를 깎아 화살촉을 뽑아낸 이야기는 병가兵家의 미담이거늘, 지금 이충무가 등을 갈라 철환을 꺼냄에 있어서 태연자약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으니, 천고이래로 같은 영웅호걸의 풍모라,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는구나.

▲ 대장군전이라는 무기는 쉽게 말해 대포의 철환이다. 다만 대장군전은 대포의 철환보다 훨씬 무거웠다. 사진은 KBS드라마 중 한 장면.

이튿날 6월 1일 새벽에 원균이 제 배를 타고 순신에게는 아무 통지도 안 하고 어디로 가려고 하였다. 같은 함대 속에 있으면서 말도 없이 먼저 행선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었다. 순신은 이 소문을 군중 야경대장에게 듣고는 군관을 시켜서 원균에게 물어보라고 하였다.

원균은 순신 모르게 살짝 가려고 하다가 들킨 것이 낭패하여 뱃머리에 나서며 순신을 대하여 “영감, 어깨에 상처가 밤새 과히 아프지 아니하십니까?” 하고 아침 문안을 하였다.

순신이 역시 뱃머리에 나서서 “고맙소. 상처는 대단치 않지만 영감은 이 이른 새벽에 어디를 가시오?” 하고 원균에게 반문하였다.

원균은 “어제 싸움에 적선 대소 두 척을 남겨 놓으신 것이 있지 아니하오? 지금 알 수 없으니 제가 가더라도 얻어오는 적의 수급은 영감께 바치오리다. 제가 패군지장으로 영감의 덕택이 아니면 있을 곳조차 없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원균은 정성이 넘치는 듯한 어조로 말한다.

순신은 답하여 “그러하시거든 가서 보시오” 하고 좋은 낯으로 “우리네가 국가의 중대한 곤임을 받고 적과 싸우는 처지에 있어서 어찌 피차가 있소? 수급이 뉘 것이며 공이 뉘 것인 것을 말할 것이 있소? 혼자 가시기 고단하거든 전선 몇 척을 드릴 테니 데리고 가시오” 하였다.

이 얼마 전 옥포싸움 끝에 원균이 전리품을 빼앗으려 순신의 군사를 두 명이나 화살로 쏜 것은 순신도 기억이 아직 새로웠다. 그러나 금일과 같은 나라가 위급존망에 처한 때를 당하여 쓸 장수가 귀한 이 판에 원균 같은 자라도 단점은 버리고 장점을 취하여 아무쪼록 한마음이 되어 죽기로 힘써 보자는 성의를 피력하여 포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원균은 순신의 승낙을 얻어가지고 좋아하며 마음을 놓고 배를 급히 몰아 어제 저녁 싸우던 장소인 사천항 앞바다로 갔다. 거기는 순신이 적선을 남겨둔 곳이다. 그것은 적병이 죽기를 피하여 육지로 올라서 도망하였던 자들이 저의 배를 도로 찾아오리라고 예측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 빈 배만 있었다.

원균은 선중에 있는 전리품을 앗은 뒤에 그 배를 불사르고 적의 진 쳤던 곳을 두루 찾아 적의 시체 세구의 목을 베어가지고 면목 없이 본진에 돌아와 큰 공이나 세운 듯이 나라에 장계를 올렸다. 순신의 제장들은 순신에게 문의함도 없이 제 자의대로 행선하려 한 것을 분개하여 순신이 원균으로 하여금 적의 빈 배라도 차지하게 한 것을 불안하게 생각하였다.

순신은 제장에게 설명하되 “대개 나라를 생각하는 충성으로써 싸우는 사람도 있고, 공을 세워 상을 받자는 사욕으로써 싸우는 사람도 있소. 공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공을 주어야 잘 싸우는 것이오. 지금 국가의 일이 위급하고 싸울 사람이 귀하니 부득불 공을 주어 싸울 마음을 조장하는 것이 이것이오” 하며 자기가 원균을 우대하는 이유와 간절한 속마음을 설파하였다.

▲ 순신은 전 함대를 몰고 모자랑포로 가서 밤을 지내기를 하령하였다. 그래서 뱃머리를 돌려서 배질을 하는데 장사들은 금일 승전의 기쁨에 의기충전하였다. 사진은 KBS드라마 중 한 장면.

순신은 모자랑포에서 행선 출발하여 남해도 창선도의 두 섬 근처에 와서 진 터를 잡아 진을 쳤다. 그곳이 이상하게도 물이 맑고 파도가 일지를 아니하였다. 사방으로 탐보선을 내놓아 적선의 유무를 정찰하더니 탐보선이 달려와 보고하기를 “곤양 앞 광지光支 바다로부터 적선 15척이 검은 돛을 달고 우리 진을 향하여 달려오는 것이 보입니다” 하였다.

순신은 이 탐보를 듣더니 돌연히 하령하되 “거짓 도망하는 체하여 뒤로 물러나 피하는 모양을 보이고 다른 곳으로 진을 다시 치라”고 하였다. 제장들은 “용병함에는 지리를 선점하는 것이 가장 긴요하다 하거든 이제 사또는 이와 같은 좋은 진지를 연고 없이 버리고 또 조그마한 적을 보고 물러가려 하십니까?” 하고 항의하였다.

순신은 듣고 나서 얼굴에 노기를 띠며 “낸들 어찌 지리의 형세를 몰라보고 공연히 진을 옮기겠는가? 제공이 깨닫지 못하나 오래지 아니하여 자연 알게 될 것이니 장령을 어기지 마라!” 하였다. 제장들은 내심에 순신의 고집을 원망하였으나 전선 대소 80여 척이 각기 닻을 들고 북과 나팔을 울리며 대포 소리를 신호로 진을 옮겨 달아나니 그 거동이 요란하였다.

적의 함대는 싸우려고 오다가 조선 함대가 싸우지도 아니하고 물러나 달아나는 것을 보고 한편은 의심하며 한편은 기세를 얻어 순신의 진 쳤던 자리를 점령하여 진을 쳤다.

물빛은 극히 맑고 파도조차 일지를 아니하여 적군들은 의기충천하여 고함을 치고 조총을 쏘아 싸움을 돋우었다. 문득 별안간에 청천벽력이 일어나고 풍랑이 솟아오르며 검은 안개가 일어 하늘을 덮고 물결이 바다를 뒤집어서 일본 병선 15척이 몇 척도 벗어나지 못하고 미처 어찌 할 사이도 없이 거의 태산 같은 파도 속으로 파묻어버려 몰사하고 말았다.

이 광경을 멀지 않은 곳에서 바라보던 순신의 제장은 그제야 순신의 선견지명을 탄복하며 그 이상한 이유를 깨닫지 못하여 순신에게 물었다.

순신은 뜻밖에 하는 말이 “우리 인생은 시적 취미를 가졌으니, 옛 성인도 노래와 춤을 가르쳤소. 그러니깐 그대들은 고시를 잘 읽으오. 고시는 또 일종의 병서요. ‘독룡잠처수편청毒龍潛處水偏淸’ 4)이라, 즉 독룡이 잠긴 곳에는 물이 편벽되이 맑다 하였으니, 그곳에 물빛이 극히 맑으므로 반드시 독룡 즉 사나운 이무기가 있을 것이오. 그때는 이무기가 잠들어 있을 때라 우리의 함대가 북과 나팔과 함성으로 이무기의 잠을 깨우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적선은 반드시 진 터를 탐내어 그곳에 유진할 것이 분명하고 이무기가 잠을 깬 뒤에 해상에서 많은 사람이 시끄러울 것 같으면 이무기가 노할 것 같고 더 심하면 발작을 할 것이 의심 없지 않겠소?” 하며 일장 설명을 하였다.

삼도의 제장 군졸은 원균 한사람 외에는 모두 순신을 신인이 아니면 성인일 것이며 또 당세의 제갈량이라고 숭배하였다. 원균은 혼자 “요행히 들어맞은 것이겠지, 어찌 그럴라고?” 하고 중얼거렸다. 후인이 시를 지어 찬하였다.
용이란 동물은 상고시대의 수서水棲동물로 석척류5)에 속한 것인데 그 행동이 변화무궁하여 고대로부터 숭상하여 왔으나 지금 시대에는 실로 보기 어려운 것이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들 이는 상상동물이요 실상은 없는 것이라 하나 왕왕 산골짜기나 동굴 속에서 죽은 용의 뼈를 발견함을 볼 때에는 세상에 전혀 없었던 동물이라고 판단하기도 역시 어렵다.

 

고사를 보면, 신라 시조왕 때에 두 마리 용이 금성정金城井에 나타났다 하고, 미추왕 때에 용이 용궁지龍宮池에 나타났다 하고, 소지왕 때에 용이 추나정鄒羅井에 나타났다 하고, 고구려 시조왕 때에 황룡이 골령鶻嶺에 나타났다 하고, 백제 이루왕 때에 두 마리 용이 한강에 나타났다 하고, 문주왕 때에 흑룡이 웅진熊津에 나타났다 하고, 그 외에도 일일이 예를 다 들기 어렵다.

중국에도 예로부터 이룡기관6)이니 황룡부주7)니 하는 기사가 무궁무진하다. 용의 유무는 고사하고 용의 형상에 대하여는 몸은 뱀과 같고, 머리는 낙타와 같고, 뿔은 사슴과 같고, 눈은 귀신과 같고, 귀는 소와 같고, 비늘은 잉어와 같고, 턱밑에 역린이 있고, 발바닥은 호랑이와 같고, 발톱은 매와 같다고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자세히 말하였다. 용의 종류에도 교룡蛟龍 이룡螭龍 응룡鷹龍 규룡虯龍 등등 아홉이 있다고 한다. 본 저술자는 용이란 것은 바다와 강에 있는 큰 뱀의 종류라고 추정한다.


순신은 조수의 진퇴와 독룡의 발작으로 즉 우주간의 자연적 힘을 이용하여 사천 및 곤양의 적의 선봉을 파하고 또 많은 적선이 당포 앞바다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밤새도록 행선하여 창선도 사량도를 거쳐 당포에 이르렀다.

과연 적선이 열박하였는데 그 중에 대선이 9척이고 중선 소선이 아울러 12척이니 합 21척이었다. 그중 제일 큰 배에는 배 위에 30~40척이나 될 듯한 높은 누각이 있고 그 외면에 붉은 비단으로 만든 장막을 두르고 사면에 황黃 자를 써서 붙이고 그 속에 장수 한 사람이 있는데 앞에는 붉은색 일산을 받쳤다. 적병은 우리 함대의 진격에 대항하여 일제히 조총을 놓아 철환의 비를 내려 퍼붓는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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