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제 1편
돌고 도는 경제와 위기
돌발변수와 인플레이션
법인세 인하 효과 있나 

경제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작은 변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경제에 영향을 미쳐서다. 같은 변수가 다른 결과를 만드는 일도 숱하다. 현재 상황을 잘못 분석했다가 위기를 자초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주요국이 ‘전례前例’에서 해법을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이 현재 상황을 제대로 분석한 결괏값이냐는 거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경제는 정체돼 있지 않고 항상 움직인다. 위나 아래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돌고 도는 게 경제의 특성이다. 흔히 사용하는 ‘경기景氣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말도 이런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회복기에서 호황기를 지나 후퇴기와 침체기, 다시 회복기를 거치는 경기순환론과 몇년마다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는 ‘○○주기 위기설’이 힘을 얻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제가 일정한 흐름을 갖고 있다고 해서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호황기에 접어들었던 경제도 하나의 돌발변수 때문에 급격한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다양한 경제정책을 사용하는 것도 계속해서 움직이는 경제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함이다.

당연히 정부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경제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경제의 방향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이런 점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고물가와 경기침체도 경제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연히 시작점이 있고, 큰 영향을 미친 선택의 순간이 있다. 경제의 흐름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고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닷컴버블과 그린스펀의 선택 = 돌고 도는 경제와 위기의 시작은 2000년대였다. 2000년 초반 터진 ‘닷컴버블’로 미국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 이때 ‘구세주’로 등장한 이가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 의장이었다. 그는 침체에 빠진 시장을 살리기 위해 2000년 12월 6.5%포인트였던 기준금리를 2003년 6월 1%포인트까지 인하했다.

시장에 유동성이 풀리자 경기는 살아나기 시작했지만 부작용도 조금씩 쌓였다. 대출금리가 내려가자 너나 할 것 없이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고, 신용도와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도 주택 자금을 빌려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확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참고: 서브프라임(sub-prime)은 안정적인 프라임 대출보다 신용도가 낮은 대출을 의미한다. 신용도가 낮은 저신용층이 이용한 탓에 담보가치보다 대출액이 컸다.] 

우려는 ‘달콤한 시간’을 생각보다 일찍 종식시켰다. 경기과열을 우려한 미 정부가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면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대출자가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미국의 투자회사였다. 이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한 탓에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이는 리먼 브러더스를 비롯한 글로벌 투자회사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게 바로 2007년 터진 미 서브프라임 사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탐욕이라는 변수는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 경제의 구세주로 불렸던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내가 실수했다(I made a mistake)”는 말을 남기고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 서브프라임 사태와 버냉키의 선택 =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침체로 밀어 넣자 미국은 더 강력한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 헬리콥터를 띄워 공중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밝히며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벤 버냉키 전 미 연준 의장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기준금리를 제로(0~0.25%) 금리로 낮추고, 총 세차례의 양적완화 정책(1차 2008년 11월~2009년 3월, 2차 2010년 11월~2011년 6월, 3차 2012년 9월~2013년 12월)을 시행해 4조5000억 달러(약 5890조원)의 돈을 시장에 풀었다.[※참고: 미 연준은 금융시장에 풀린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직접 매입하는 방법도 함께 사용했다.] 

미 연준은 2015년 12월 기준금리를 0.25~0.5%포인트로 인상할 때까지 약 7년간 제로금리를 유지했다. 시장에 풀린 돈은 어마어마했다. 미 연준에 따르면 2007년 1058조1726억원이었던 본원통화량은 2014년 5221조2160억원으로 5배 가까이(4163조434억원) 증가했다.

돈의 힘은 막강했다. 이번에도 시장엔 활력이 돌았다. 2010년 9.2%를 기록했던 실업률은 2014년 6.2%로 낮아졌고, -0.4%를 기록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6%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부작용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과도한 유동성에 자산시장엔 거품이 끼기 시작했고, 물가도 꿈틀거렸다. 경기가 과열 양상을 보이자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2019년 9월 2.00~2.25%까지 인상해 시장에 풀린 돈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돈줄을 죄는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2014년 5221조2160억원이었던 미국의 본원통화량은 2019년 4622조4019억원으로 11.4% 줄어드는 데 그쳤다. 

■코로나19와 파월의 선택 = 문제는 2019년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졌다는 거다. 4년째 전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다. 갑작스러운 전염병의 창궐에 경제는 위기에 처했고, 미국은 양적완화 정책을 다시 시행했다. 현재 전세계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시작점이 여기다. 2000년부터 반복한 양적완화 정책의 영향으로 켜켜이 쌓인 유동성이 물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선택의 순간이었지만 연준은 제대로 된 대응에 실패했다. 지난해 1월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경제에 부담이 될 만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의 폭이 크지 않은 데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을 경제활동 재개에 따른 수요급증과 일시적인 공급망 이슈 탓으로 돌리며 인플레이션이 곧 완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였다. 한은은 지난해 2월 발표한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물가상승률을 1.4%로 제시했다. 이는 기존보다 0.1%포인트 낮춘 수치였다. 
  
하지만 상황은 1년 만에 급변했다.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란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터진 탓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꿈틀거리던 물가에 기름을 부었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올해 초 758달러(부셸당)였던 국제 소맥가격은 지난 5월 1277.40달러로 68.5% 상승했다. 러시아가 전세계 생산량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천연가스 가격은 올해 초 3.81달러(100만Btu당)에서 지난 6월 9.32달러로 3배 가까이 치솟았다. 

올해 2월 전년 동월 대비 1.7%를 기록했던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6월 9.1%로 치솟았다. 이는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10%대 기준금리를 유지했던 1981년 12월(8.9%) 이후 최고치다.[※참고: 폴 볼커는 1979년 터진 ‘석유파동’에서 시작한 인플레이션을 기준금리 인상으로 잡아냈다. 볼커 전 의장에게 ‘인플레이션 파이터’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치솟는 물가와 기준금리 탓에 민생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치솟는 물가와 기준금리 탓에 민생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미국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6월 6.0%를 기록하며 1998년 11월(6.8%) 이후 약 2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6월 8.6%로 치솟으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경기침체 우려에도 미국과 한국은 물론 글로벌 주요국이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과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해서라도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물가를 잡겠다는 거다. 

■인플레이션과 윤석열의 선택 = 이는 한국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외변수에 취약한 한국경제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위기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고환율·고금리·고물가라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렸다.

고환율 탓에 한국경제 최후의 보루인 무역수지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고물가에 서민의 지갑은 날이 갈수록 얇아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출이자까지 치솟고 있다. 한국경제가 또다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물가와 경기’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감세다. 정부는 기업의 경영활동을 돕겠다며 법인세 인하에 나섰다.

국민의 세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도 인하했다. 최근엔 서민을 위한 감세정책도 내놓았다. 직장인의 식비 비과세 한도를 높이고, 문화비 소득공제 항목에 영화관람료를 추가하는 방안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을 때, 정부는 시장경제를 활성화해 경기를 방어하겠다는 건데, 정부가 노리는 건 낙수효과다. 법인세를 낮춰 기업의 경영활동과 투자가 활성화하면 그 효과가 시장의 아래까지 미칠 거란 전망에서다. 물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니다. 기업이 법인세 부담 완화로 늘어난 이익을 투자나 배당, 고용, 임금인상 등에 사용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현재 경제 상황이 기업의 투자확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국면에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던 기업도 투자 중단과 연기를 선언하고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청주 공장 증설을 보류하겠다고 밝혔고, LG에너지솔루션은 1조7000억원 규모의 미국 공장 투자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 혜택을 누릴 대기업에서부터 투자 중단 소식이 나오기 시작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법인세를 낮추면 기업의 투자가 증가할 거라는 발상은 기업의 속성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말을 이었다.

“기업의 목적은 어떻게든 돈을 버는 것이다. 지금처럼 경제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하던 투자도 중단하는 게 기업의 속성이다. 게다가 삼성전자를 비롯해 몇몇 기업을 제외하면 법인세 인하로 늘어나는 이익은 수백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적지 않은 돈이 맞지만 정부가 기대하는 낙수효과를 낼 만큼의 대규모 투자로 이어지긴 힘든 규모다. 배당이라도 늘려주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불확실성을 핑계로 돈을 쌓아둘 가능성이 높다.”

■ 허구적 가설과 선택 = 법인세 인하는 실패라는 ‘전례’를 남긴 정책이기도 하다. ‘기업 프렌들리 정책’으로 경기 활성화를 노린 MB 정권이 대표적이다. 해외 사례도 있다.

2012년 미국 의회조사국은 조지 부시 행정부(2001~2009년)가 세제개혁을 통해 70% 수준의 소득세 최고세율을 28% 수준으로 낮췄지만 경제활성화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감세정책이 긍정적인 효과보단 부작용을 더 크게 양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대표는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대통령의 몫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MB 정부 시절 감세정책을 두고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컸다’는 부정적 평가가 많았던 만큼, 부작용이 나타날지 여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세법개정안은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한다”며 “이 때문에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 윤 정부의 경제정책이 허구적 가설을 따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낙수효과’는 그 유효성이 사라진 지 오래다. 게다가 물가와 경제성장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정책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추진하고 있지 않은 정책이다. 가능할 수 있지만 성공이란 ‘전례’를 남기지 못한 이론적인 가설에 불과해서다. 

많은 전문가가 지금이라도 위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대기업과 자산가가 아닌 서민과 사회 취약계층이라고 강조한다. 서민이 ‘3고高’의 파도에 무너지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서민층의 붕괴를 막지 못하면 위기가 한국경제 전체로 번질 수 있어서다. 

강병구 인하대(경제학) 교수는 “우리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세제의 정책기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경기회복에 따른 세입 증가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부자감세 기조를 유지하면서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면 조세의 재분배 기능과 안정화 기능이 약화할 것”이라며 “사회 양극화와 불평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 정부의 경제정책 전망을 우려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이미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데다 어디에서도 시도한 ‘전례’가 없는 경제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그 선택이 낳은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경제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장의 쓴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하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제’란 기사를 통해 정책의 문제점과 대안을 분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연 윤 정부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안타깝게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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