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임대부 주택 막는 장애물

# 20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여야 후보들은 한결같이 ‘토지임대부’ 주택을 입에 담았다. 토지를 팔지 않고 임대(렌트)하는 방식으로 주택의 분양가격을 낮추겠다는 게 취지였다. 당시 가격 급등을 막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화두에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토지임대부’ 주택은 여야 후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해결책이었다. 

# 치열했던 대선이 끝난 지 7개월이 흐른 지금, 공언했던 ‘토지임대부’ 주택 관련 정책은 탄력을 받고 있을까. 진영에 관계없이 모든 후보들이 동의한 정책이라면 당장 시행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대선이 끝난 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지난 8월 국토부가 ‘토지임대부’ 주택의 밑그림을 발표하긴 했지만, 아직 방향성이 뚜렷하게 보이진 않는다. 

# 더스쿠프가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토지임대부 주택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부동산 가격 급등기 해결책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사진=뉴시스]
토지임대부 주택은 부동산 가격 급등기 해결책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사진=뉴시스]

아파트 가격을 세 요소로 나눠보자. 일단 땅을 구입해야 한다. 땅값을 지불한 후 건물을 짓고 싶다면 건설비가 필요하다. 여기엔 시행사나 건설사가 가져갈 이윤이 붙는다. 아파트 가격은 이렇게 땅값, 건물값, 사업자의 이익으로 구성돼 있다. 이 때문에 아파트 분양가를 낮추고 싶다면 이 세 요소를 건드려야 하는데, 생각해 볼 게 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스스로 이익을 줄일 사업자는 없다. 건물값은 인건비와 자재비 등의 합산이어서 줄이는 게 쉽지 않다. 이제 남는 건 땅값이다. 땅값을 (분양가에) 얹지 않는다면 분양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문제는 누가 분양가에서 ‘땅값’을 빼겠느냐는 점이다. 바로 이게 정부가 짓는 ‘토지임대부 주택’의 근거다. 땅값을 분양가에 얹지 말고, ‘렌트(임대)’해 주자는 거다. 쉽게 말해, 분양가를 떨어뜨리는 대신 ‘임대료’를 받자는 취지다. 

교과서에만 있는 발상은 아니다. 2009년 정부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 촉진을 위한 특별조치법(토지임대부 주택특별조치법)’을 제정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도로 2014년까지 토지임대부 아파트 3개 단지를 준공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후인 2016년 주택특별조치법이 폐지되면서 토지임대부 주택의 확실한 근거 조항이 사라졌다(주택법에 흡수). ▲저렴한 택지를 확보하는 게 불가능하다 ▲사업자의 재무 부담이 가중된다 ▲주택 수요자가 선호하지 않는다 등의 이유였다.

그렇게 법적 근거를 잃은 ‘토지임대부’ 주택이 다시 등장한 건 20대 대통령 선거 때였다. 가격 급등을 막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화두에 오른 당시, 여야 후보들은 너나 없이 ‘반값 아파트’를 약속했고, 그 중심에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기간 ‘반값 아파트’ 20만호를 공급하고 ‘원가주택’ 30만호를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청년층의 내집 마련이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국공유지를 활용해 건설 원가로만 아파트를 분양하거나 토지임대부 방식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대선후보)도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고 감정평가 기준을 바꾸면 ‘반값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서민부터 중산층까지 모두 거주할 수 있는 ‘기본주택’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그중 분양형은 토지임대부 방식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당시 대선후보) 역시 ‘공공자가주택’이란 개념을 역설했다. 공공택지에 만들어지는 모든 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이나 토지임대부 방식의 공공자가주택으로 공급하겠다는 얘기였다.

민심을 얻기 위해서였는지, 여야 정당의 국회의원들도 토지임대부 주택에 초점을 맞춘 법안을 줄줄이 내놨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토지분리형 분양주택 공급촉진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같은당 박상혁 의원과 이규민 의원은 각각 ‘토지임대부 기본주택 공급촉진을 위한 특별법안’ ‘공공주택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로 내놨다.

그해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한 모든 법안은 주택법으로 흡수된 토지임대부 주택의 기본 개념부터 다시 잡자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정의당도 같은 목적의 법안을 여러개 발의했다. 심상정 의원은 2021년 7월 6일 ‘공공자가주택 공급을 위한 특별법안’ ‘공공주택특별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동시 발의했는데, 토지임대부 주택을 위한 기본 개념을 마련한다는 취지는 민주당 발의안과 같았다. 

대선 후 희미해진 약속

어쨌거나 치열했던 대선은 막을 내렸고,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도 5개월이 흘렀다. 토지임대부 주택을 입에 담았던 후보 중 한명은 대통령이 됐고, 그렇지 않은 후보들도 새롭게 국회의원이 됐거나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국회에서 토지임대부 관련 법안을 추진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토지임대부 주택은 대선이 끝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대통령도, 대선에 나섰던 사람들도 그때 그 약속을 지키는 데 힘을 쏟지 않는 듯하다. 국회의원이 의욕적으로 발의했던 대부분의 법안도 상임위에 계류된 채 낮잠을 자고 있다. 

대체 왜일까. 토지임대부 주택을 가로막는 건 뭘까. 첫번째 장애물은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이익이다. 토지를 분양하지 않고 40~50년에 걸쳐 임대하면 사업시행자는 토지 비용을 한번에 청산하지 못한 채 부채로 남겨둬야 한다. 그러면 LH의 부채 비중이 높아져 토지임대부 아파트 분양을 꺼릴 수밖에 없다.

두번째 장애물은 수요자의 외면이다. 토지임대부 주택을 분양해도 수요가 없어 공급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입법 절차가 미뤄지는 이유다. 이는 2016년 토지임대부 주택특별조치법이 폐지된 원인이기도 했다. 

세번째 장애물은 토지임대부 주택 소유주의 시세 차익이다. 토지임대부로 주택을 저렴하게 사들였던 세대주가 전매 제한이 풀린 후 주택을 팔 때 경우에 따라(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을 경우) 높은 시세 차익을 올릴 수 있다는 거다. 공공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토지임대부 주택이 되레 특정인에게 차익을 몰아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럼 이런 장애물들은 해결책이 없을까. 일단 세번째 장애물은 2020년 주택법을 개정해 넘어섰다. 토지임대부 주택을 분양받았던 이가 주택을 팔아야 할 때 시장이 아니라 LH에 매각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약했던 윤석열 정부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제 남은 장애물을 해결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건 아니지만, 효율적인 방안이 나온 것도 아니다. 

먼저 사업시행자의 부채 문제를 살펴보자. 지난 8월 16일 국토교통부는 자신들이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에 토지임대부 주택 관련 내용을 넣었다. 골자는 입지별로 토지임대료를 다르게 책정해 LH 등 사업주체의 부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거다. 다만, 토지임대료는 이미 감정평가금액을 근거로 책정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할지는 알 수 없다. 

두번째 장애물인 수요자의 외면 문제는 좀 더 많은 수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풀겠다는 게 국토부의 계획이다. 현재 LH가 규정한 토지임대부 주택의 재매입 가격 기준은 입주금과 그 입주금에 1년치 정기예금금리(이자)를 곱한 값을 더한 것이다. 토지임대부 주택 분양자가 주택을 팔기 위해 LH에 재매입을 요청한다면 그 값을 제시받는다.

국토부는 여기에 좀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해 수요를 늘리겠다는 거다. 하지만 이는 주택법 개정으로 생긴 환매 의무와 충돌할 여지가 있다. ‘시세 차익’을 막기 위해 시장이 아닌 LH에 팔도록 했는데, 이를 ‘수익 확보’ 조건이 무너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아직은 상임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지만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수없이 많다. 정부도 2022년 하반기 주택법 개정을 통해 토지임대부 주택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런 동력은 토지임대부 주택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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