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섭 네파 사장이 울린‘경종’

최대주주인 CEO가 자신의 지분을 사모펀드에 넘겼다. 대신 투자금을 받았다. 회사가 팔린다는 소문이 났다. 그게 아니었다.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이었다. 그 CEO가 입을 열었다. “회사를 키우기 위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 시장이 깜짝 놀랐다.

▲ 김형섭 네파 사장(오른쪽)은 "회사가 성장하려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산악회 회원이었던 김형섭 네파 사장은 등반을 즐겼다. 자연히 아웃도어에 관심이 생겼다. 김 사장은 2006년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를 론칭했다. 10대와 20대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7년 만에 아웃도어 업계 5위로 자리 잡았다.

새해부터 패션업계가 시끄럽다. 네파가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팔린다는 소문이 돌아서다. 매각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다 실적까지 좋은데 네파를 팔 이유가 없어서였다.

실제로 네파의 실적은 글로벌 금융위기 후에도 고공행진을 벌였다. 2012년 매출은 약 46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 네파는 2011년 3035억원, 2010년 1530억원의 매출(이상 대리점에서 판매된 소매가 기준)을 올렸다. 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아웃도어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셈이다.

경영시스템도 안정적이다. 네파는 섬유ㆍ패션업체 평안엘엔씨의 관계사다. 김 사장은 가족기업 평안엘엔씨의 3대代 경영자다. 평안엘엔씨는 네파가 인기를 끌면서 최근 사세를 확장했다. 네파가 지난해 평안엘엔씨에서 독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파가 팔린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김 사장이 진화에 나섰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1월 22일 열린 ‘네파 히스토리 쇼&2013 이젠벅 론칭 패션쇼’에 참석한 김 사장은 공개석상에서 입을 열었다.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김 사장이 MBK파트너스의 투자를 받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네파는 오래전부터 세계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사모펀드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이유는 해외공략 자금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김 사장은 “MBK파트너스의 막강한 자금력과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 그리고 경영경험이 네파의 성공적인 글로벌 사업 추진에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앞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미국•유럽시장에서 현지기업을 인수해 품격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네파는 2014년 중국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6월 11일 네파에 투자한 미국 사모펀드 유니타스캐피탈과 6개월 넘게 중국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MBK파트너스는 이번 투자로 최대주주에 올랐다. ‘대를 이어온’ 네파의 경영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 최대주주가 반대하면 4대 경영권 상속은 어려울 게 분명해서다. 김 사장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4대로 회사를 물려주는 상속이 아니라 경영을 택했다. 대신 경영권 유지와 직원 고용승계는 보장받았다.

김 사장은 “개인적으로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이 없다”며 “기업은 영속성을 가지고 지속성장을 해야 하는데 기업이 개인 소유가 되면 영속성이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려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야 한다는 얘기다.

중견 패션업체의 네파 지분 매각은 업계에 경종을 울릴 만한 일이다. 각종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려는 재벌기업 총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흔히 “형만 한 아우 없다”고 말한다. 경험을 많이 쌓은 형이 아우보다 낫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때론 아우가 더 낫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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