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마음 여는 말의 힘
아이들, 부모의 언어 예민하게 포착
대화의 기술 익혀서 변화 보여주면
멀어졌던 아이와 가까워질 수 있어
부모의 경청·확인·이해·객관성 필요

언어는 사람의 사고, 심리, 내면세계를 나타낸다. 그런 언어가 갖는 힘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말 한마디가 한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부모들이 ‘대화의 기술’을 익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를 향하는 부모의 대화법은 몇번을 강조해도 모자랄 정도로 중요하다. 부모가 언어를 바꾸기만 해도, 영영 멀어질 것만 같았던 아이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다.

성장기 아이들은 부모의 메시지를 민감하게 인식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성장기 아이들은 부모의 메시지를 민감하게 인식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비행非行 문제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던 아이의 부모와 만남을 가졌다. 처음 필자를 찾아왔을 때 아이는 소위 ‘일진’ 무리들과 어울려 가출흡연무단결석을 일삼고 있었다.

다행히 몇차례 상담을 거치며 아이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아이를 보면서 필자는 과연 가정에선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를 어머니에게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어렸을 때 공부를 잘했던 동생과 비교를 당하면서 차별받고 자랐어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엄마가 내게 했던 행동을 나도 내 아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툭하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죠. 가끔씩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면 아이에게 손을 대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말을 통해 그런 제 모습을 알게 되면서 아이가 하는 얘기를 잘 듣게 됐어요. 평소 대화 방식과 태도도 바꾸면서 예전과는 다른 엄마로 변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변화는 상처 입은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고,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아이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아동ㆍ청소년의 경우 부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성장기 아이들은 생각보다도 더 부모의 의도를 민감하게 알아챈다.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언어적ㆍ비언어적 대화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영유아 시기와 아동기 아이들은 자신의 절대적 세계인 부모와 소통하면서 부모의 언어를 모조리 흡수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그 어떤 메시지도 놓치지 않고 예민하게 포착한다. 때론 부모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비언어적 메시지까지도 정확하게 감지한다.


아이와 더 나은 대화를 하려면 부모가 먼저 내 모습은 어떤지 점검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감정이 상해도 ‘내가 어떤 의도로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려는지’ 짚어봐야 한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와 얘기를 나누다 마음이 상하면 ‘너 뭐라고 말했어, 다시 한번 말해봐’라며 아이를 윽박지른다. 그래서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눈앞에서 되풀이하게끔 만든다. 조건을 걸어 아이의 행동을 부모가 원하는 대로 수정하거나, 아이가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기준을 제시해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행 문제가 있는 아이라도 마음을 여는 대화법을 통해 부모와 가까워질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행 문제가 있는 아이라도 마음을 여는 대화법을 통해 부모와 가까워질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디 이뿐인가. 아이에게 빈정거리고, 아이를 부모의 권위로 누르고, 또 아이를 예의 없는 아이로 만들어 수치심을 주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효과적이지 않은 화법이다. 부모가 차분하고 온정적인 말투로 얘기하더라도 아이는 그 속에 숨은 부모의 의도를 알고 있다. 

문제는 정작 부모들이 그들의 한마디로 아이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잘 모른다는 점이다. 부모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말의 힘’을 얕잡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모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대화의 기술이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단계적 기술을 몸에 익히면, 아이와 훨씬 더 깊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아이가 변할 수 있었던 이유 

그렇다면 대화의 기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단계 기술은 아이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는 것이다. 아이의 의견과 부모의 의견이 항상 일치할 수만은 없다.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기 위해서라도 아이의 말을 일단 들어야 한다.

2단계 기술은 아이의 말을 듣고 그 내용을 요약해서 아이에게 돌려주는 거다. 아이가 ‘우리 엄마ㆍ아빠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구나’ ‘내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구나’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다만 한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부모의 관점으로 아이의 말을 확대해석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므로, 혹시 틀린 부분은 없는지 아이에게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3단계 기술은 아이의 말에 비난과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부모라도 아이의 말을 듣다보면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를 비난하는 대부분의 말들은 건강하지 못한 대화법에 속한다. 설사 아이의 말이 틀리다고 해도, 버럭 화를 내기보다 그 감정을 잘 흘려보내야 한다.  

마지막 4단계 기술은 부모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거다. 이때 부모의 의견이나 생각, 관점을 ‘중립적으로’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부모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는 엄마ㆍ아빠의 태도가 부드럽게 변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가 먼저 부모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언급했던 부모 상담을 마치고 며칠 후 아이를 만났다. 아이에게 엄마의 말투가 얼마나 변했는지 물어보니, 여전히 퉁명스럽고 목소리도 크단다. 가끔씩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아이 스스로 변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아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엄마가 변하려고 하는 게 고마워서요…” 


조봄 더 봄 미술치료심리상담센터 소장
therapy5801@naver.com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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