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Exhibition | 장 미셸 바스키아

▲ Untitled-Hand Anatomy(152.4×152.4cm 1982)

흑인 영웅·만화책·해부학·낙서·인종주의·죽음….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낙서그림의 거장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가 짧은 생애 동안 작품에서 다룬 주제다. 만화가와 시인을 꿈꾸던 바스키아는 15세에 집을 나와 17세가 되던 해 학교를 그만두고 친구 알 디아즈와 ‘세이모(SAMO)’를 결성, 그라피티에 빠진다.
 
스프레이 마커나 오일 크레용을 사용해 뉴욕 소호 거리의 외벽에 저항 이미지와 메시지를 남겼다. 이후 그들의 기지 넘치는 철학적 시들로 이뤄진 문구들은 뉴욕 도시 곳곳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0년 ‘타임스 스퀘어쇼’를 통해 이름을 알린 그는 1981년 이탈리아 갤러리아 아르테 에밀리오 마졸리에서 ‘세이모아’란 이름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바스키아의 이런 행위는 그라피티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스키아는 미술 외에도 다방면에 걸쳐 많은 재능을 보였다. 디자이너로서 작품이미지를 티셔츠에 도안해 판매했고 버려진 재료로 주얼리를 제작했다. 또 음악과 퍼포먼스를 하는 밴드 멤버로 1980년대 아티스트의 거점이 된 머드클럽 ‘클럽 57’에서 활약했다.

▲ DESMOND'(218.4x172.7cm 1984)


1980년대 뉴욕 미술계의 스타덤에 오른 바스키아는 피카소·장 뒤뷔페·사이 톰블리·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현대 회화의 대가와 함께 거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8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뉴욕 자택에서 코카인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2월 14일부터 장 미셸 바스키아 전을 열고 있다. 그만의 시적이고 상징적인 문구를 담은 작품은 3월 31일까지 볼 수 있다.
정리 |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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