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이코노무비
파고(Fargo)❶
정치인 거짓말에 화나는 건
그들의 거짓말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그들 말 안 듣고
정치에 무관심해지기 때문

1997년 재기발랄한 형제감독 조엘 코언(Joel Coen)과 이단 코언(Ethan Coen)이 각본을 쓰고 감독해 제작한 ‘파고(Fargo)’는 범죄물이지만 재기발랄한 감독들이 즐겨하듯 범죄물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다. 우리가 진지하고 심각하게만 받아들이는 현실의 허무맹랑함과 어이없음을 마음껏 조롱한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용서받지 못할 행위 중 하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치인의 거짓말은 용서받지 못할 행위 중 하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의 시작에 앞서 검은 바탕에 흰 글씨의 ‘안내문’이 화면 가득 뜬다. “이 이야기는 실화(true story)다. 영화에 그려진 사건들은 실제로 1987년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생존자들의 요청으로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바꿨다. 희생자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그 나머지 부분들은 정확하게 사실과 부합하게 그렸다.” 간단히 말하면 실제인물의 이름만 바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라는 안내문이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정중한 문구는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은 코언 형제감독이 이 범죄물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처럼 숙연한 분위기를 감돌게 한다. 당연히 무언가 너무나 끔찍한 살인과 범죄를 예상하고 영화를 따라간다.

그런데 끔찍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영화화’할 만큼 경악할 만한 사건은 아니다 싶게 끝난다. 조금은 싱겁다는 느낌이 들려는 찰나 영화 시작과 마찬가지로 다시 ‘안내문’이 화면에 뜬다.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닌 허구였음.”

웬만해서는 영화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을 보지 않는 우리나라 관객들은 이 영화를 ‘살인의 추억’쯤 되는 실화영화로 믿은 채 극장을 나설지도 모르겠다. 재간꾼 코언 형제감독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결국 코언 형제는 적어도 2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감쪽같이 거짓말을 한 셈이다.

관객들에게 허구를 실화라고 속이고 팔아먹은 영화 사상 초유의 ‘기법’이 작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모양인지 코언 형제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해명이 흥미롭다. “우리는 실화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실화 영화를 반드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현실에도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이야기이면 허구가 아니라 실화라는 논리다. 재간꾼다운 해명이다. 

더구나 영화에 등장하는 자동차 대리점의 사기 행각과 시체를 나무 분쇄기에 넣어 갈아버리는 장면은 과거에 실제 있었던 사건인 만큼 ‘실화 영화’가 맞다는 주장도 펼친다. 실화와 허구, 그리고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어쨌거나 코언 형제감독은 관객들에게 의도적인 거짓말을 한 셈인데, 깜빡 속았다는 것을 알아챈 관객들도 코언 감독의 거짓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거짓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느라 거짓말에 무감각해져서일지도 모르겠고, 일상 속에 넘쳐나는 온갖 거짓말에 비하면 코언 감독의 거짓말은  ‘세계 거짓말 대회(World’s Biggest Liar Championship)’의 거짓말처럼 무해무득한 ‘재치’에 불과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영국의 한 작은 술집에서는 매년 11월 주류회사 제닝스의 후원으로 ‘세계 거짓말 대회’를 연다는데, 이 대회는 한 영국 성공회 주교가 참가해서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거짓말로 그해 ‘세계 거짓말 챔피언’이 되는 등 유쾌한 거짓말의 향연이다. 

우리 사회는 정치인들의 말에 관심도 없고 감동도 받질 못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사회는 정치인들의 말에 관심도 없고 감동도 받질 못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이 거짓말 대회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할 수 있지만 정치인과 변호사만은 참가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워낙 거짓말에 서툴러서가 아니라, 아마추어 거짓말대회에 ‘프로 거짓말쟁이’가 참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국노래자랑’에 임영웅이 참가하고 초등학교 축구대회에 손흥민이 선수로 뛰면 곤란하다. 가장 정직해야 할 사람들이 거짓말의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어섰다니 슬픈 일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한동안 개고기를 양고기라고 속여 팔았다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난데없는 사자성어 하나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한 일이 떠오른다. ‘양두구육 논란’에 불을 붙인 정치인은 대선 당시 자기가 팔았던 고기는 양고기가 아니라 사실은 개고기였다고 선거가 끝나고 밝히면 떳떳할 수 있는 일일까.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팔았지만 개고기에 양고기도 조금 섞여 있기는 했다고 말했다면 그 시끄러운 논란을 조금은 피해갈 수 있었을까. 정치인들의 ‘양두구육 논란’도 코언 형제감독과 같은 기상천외한 재치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일까.

1870년대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의 뛰어난 총리이자 뛰어난 작가이기도 했던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는 거짓말을 ‘단순한 거짓말’과 ‘빌어먹을 거짓말(damn lies)’로 나눴다. 

코언 형제감독이나 ‘세계 거짓말 대회’의 거짓말은 무해무득하거나 재미있는 ‘단순한 거짓말’로 분류되겠지만, 정치인들이 끝없이 내뱉는 거짓말들은 하나같이 ‘빌어먹을 거짓말’이라고 한탄한다. ‘대통령 선거와 양두구육’ 같은 결코 유쾌하지도 않고 용서할 수도 없는 빌어먹을 거짓말들이다.

「선악의 저편(Beyond Good and Evil)」에서 니체는 “당신이 하는 거짓말 자체가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당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나를 화나게 한다”는 짧은 탄식을 남겼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우리가 정말 화나는 건 그들의 거짓말 자체라기보단 우리가 점점 정치인들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게 되고 정치에 무관심해진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거짓말에도 종류가 있는 법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거짓말에도 종류가 있는 법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30세에 미국 시카고대학의 총장에 취임했던 대단한 교육철학자 로버트 허친스(Robert Hutchins)는 점증하는 정치적 무관심을 우려한다. “민주주의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암살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과 무감동이 야기하는 영양결핍에 의해서 서서히 죽어가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묵시론적 예언을 한다. 

여기저기서 정치인들이 지금 열심히 손님을 불러 모아 팔고 있는 고기가 무슨 고기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고, 그들의 말에 관심도 없고 감동도 없는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과연 안녕한지 궁금하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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