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 아타글로벌 대표

창업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기업이 있다. 배터리팩 제조업체 ‘아타글로벌’이다. 업력이 짧다고 경쟁력이 없는 건 아니다. 국내 최초로 대용량 배터리팩을 출시한 아타글로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최대용량 배터리팩’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 회사 김봉준 대표를 만나, 아타글로벌의 희로애락을 들었다.

▲ 김봉준 아타글로벌 대표는 아이에너지 시리즈로 국내에 중대형 배터리 시장을 열었다.
보조배터리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 보조배터리 생산업체가 400개에 달할 정도다. 그런데 중대형 배터리팩 제조업체는 그렇게 많지 않다. 중대형 전자제품을 충전할 만한 배터리를 출시하기 위해선 남다른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대형 배터리팩 제조업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2009년 창업한 아타글로벌이다. 이 회사의 배터리백 시리즈는 ‘아이에너지’다. 스마트폰ㆍ태플릿PCㆍPMP 같은 소형 전자기기부터 블랙박스ㆍ빔프로젝트ㆍ공장 품질기계 같은 대형 전자제품까지 모두 충전 가능하다. 지난해 출시한 아이에너지5의 경우 15인치 노트북으로 동영상을 9~11시간 볼 수 있다. 블랙박스는 80시간 이상, 미니빔 프로젝트는 4~5시간 사용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에너지 시리즈의 무게가 460g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부에 자동변압장치가 있어 5Vㆍ12Vㆍ16Vㆍ19V를 사용하는 전자기기를 모두 충전할 수 있다. 아이에너지 시리즈가 캠핑족은 물론 기업에게도 인기가 많은 이유다.

아타글로벌을 이끌고 있는 이는 김봉준(37) 대표다. 그는 사실 ‘배터리 업계’에 종사했던 경험이 없다. 그가 배터리팩 시장에 뛰어든 계기는 독특하다. 예기치 않은 빚이 그를 배터리 시장으로 이끌었다. 김봉준 대표는 국내 1위 도어락 전문업체 ‘아이레보’ 출신이다. 서울통신기술의 ‘삼성 이지온 도어락’ 개발에도 참여했다. 2007년 도어락 유통업체 ‘민성상사’를 창업한 그는 나름 큰돈을 벌었다. 오랜 노하우로 습득한 ‘스피드 경영’이 고속성장의 원동력이었다.

김 대표는 일주일 정도 걸리던 도어락 설치기간을 하루로 당겼다. 발로 뛰면서 ‘설치기간’을 줄인 덕이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대형 도어락 업체들이 만성상사를 견제하기 시작한 이유다. 곳곳에서 나쁜 소문이 돌았다. 김 대표가 도어락 설치를 ‘대충 한다’는 루머까지 나돌았다.

그는 다른 사업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같은 시장에서 ‘옥신각신’하기 싫었다. 그러던 2009년 12월 어느날 한 배터리케이스 제조업체 사장을 소개받았다.

그는 김 대표에게 애플 아이폰3 배터리케이스(충전기능을 갖춘 케이스)를 납품을 하겠다면서 “수백억원대 회사로 키워주겠다”고 제안했다. 허무맹랑한 제안이었지만 그는 탈출구로 여겼다. 도어락 시장을 떠날 수 있다는 희망도 품었다.

김 대표는 곧바로 배터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이폰3 배터리케이스 5000개 물량의 갚을 미리 치르고 납품받았다. 별일 아니었지만 이게 화근이 됐다. 배터리케이스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폰4가 출시됐기 때문이다. 아이폰3 배터리케이스가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배터리케이스 제조업체와 체결한 계약도 문제가 많았다. ‘2만개를 팔지 못하면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불리한 조건이 달려 있었다.

빚 갚으려 배터리 사업 뛰어들어

김 대표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도어락 시장으로 다시 유턴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는 다짐했다. “배터리로 입은 손실, 배터리로 만회하겠다”고 말이다. 그는 가장 먼저 소형 배터리팩(용량 5200 mAh)을 제조하겠다고 나섰다. 작은 배터리팩은 쉽게 만들었다. 그런데 팔 곳이 없었다. 소형 배터리팩을 만드는 제조업체만 80개가 넘었기 때문이다. 품질 역시 뛰어나지 않았다. 또다시 좌절. 하지만 기회는 금세 찾아왔다. ‘용량 1만3200mAh급 중대형 배터리팩을 개발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와서다. 당시만 해도 이 정도 용량을 충족할 만한 배터리팩은 없었다.

 
2011년 3월. 김 대표는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가졌다는 배터리팩 제조업체 A사에 개발을 의뢰했다. 경비 절감을 위해서였다. A사 연구진은 “4주 안에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김 대표는 A사만 믿고 제작비용 4500만원을 미리 지불했다. 하지만 이 역시 김 대표의 발목을 붙잡았다. A사가 제품개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빚은 더 불어났다. 도어락 사업으로 번 돈을 모두 날린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써야 할 지경이 됐다. 부인 이름으로 사채까지 당겨 썼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김 대표는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는 사재를 탈탈 털어 2011년 7월 중국 광둥성廣東省 선전深圳으로 건너갔다. 한국에서 미리 점찍은 배터리 제조업체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제조업체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직접 그린 설계도를 보여주면서 ‘중대형 배터리팩’ 공동개발을 제안했다. “중국말을 할 줄 몰랐고, 통역도 없었어요. 말 그대로 ‘무작정 돌진’했죠. 뜻밖에도 중국 개발업체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더라고요. 나중에 들어보니 설계도가 정교했다고 하더라고요.”

김 대표와 중국인 개발자는 불철주야로 연구를 거듭했다. 밤샘 작업의 결과는 알찼다. 발열만 줄이면 적당한 크기의 중대형 배터리팩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김 대표는 플라스틱 외관을 얇은 철로 바꾸자고 했다. 내부 부품배치도 수백차례나 바꿨다. 외관과 부품배치를 바꾸면 발열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김 대표의 생각은 옳았다. 배터리팩 외관을 철로 바꾸고, 효율적으로 부품을 배치하자 발열문제가 해결됐다. 덩달아 여러 전자제품의 동시충전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탄생한 게 아이에너지2다.

국내 최초 중대형 배터리팩 아이에너지2가 국내에 출시되자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아이에너지2는 아타글로벌의 첫 번째 배터리팩이다. 아이에너지2에서 ‘2’는 시리즈를 말하는 게 아니라 2만mAh를 뜻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아이에너지2를 발판으로 용량을 늘린 ‘아이에너지 시리즈’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기술력만은 ‘최고’라는 평가가 업계 안팎에서 쏟아졌다.

아이에너지 시리즈는 현재 8종에 달한다. 이 중엔 용량이 10만mAh인 배터리팩(아이에너지 맥스)도 있다. 국내 최고 용량이다.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은 덕분에 지난해 말부터는 LG베스트샵에도 공급되고 있다.
최근엔 현대차와 SK가 아이에너지 샘플을 가져갔다. 납품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1차 테스트용’이다.

최고 품질 중대형 배터리 개발

그럼에도 김 대표는 여전히 ‘기술개발’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세계 최고급 배터리팩을 만드는 게 꿈이다. 고객관리에도 여념이 없다. 한번 고객은 다시 놓치지 않겠다는 게 그가 세운 경영철학이다. 일례가 있다. 최근 아이에너지 시리즈로 아이패드를 충전할 수 없다는 고객의 클레임을 받았다. 그는 퀵으로 아이패드를 구매해 고객이 있는 ‘인천공항’까지 한걸음에 내달려갔다. ‘아이에너지 시리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고객은 감동을 받았는지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했다.

그만큼 그는 아이에너지 시리즈의 품질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이에너지 시리즈의 품질보증 기한만 봐도 알 수 있다. 보통 배터리 제조업체의 보증기한은 6개월이다. 하지만 아이에너지 시리즈의 품질보증기한은 1년 반이다. 바꿔 말하면 품질에 그만큼 자신있다는 얘기고, 문제가 발생한다면 무조건 ‘보상’하겠다는 뜻이다. 국내 최고 용량의 배터리팩을 개발한 그는 이제 해외시장을 노린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글로벌 배터리팩 업체와 자웅을 겨뤄보고 싶다고 말한다. 도전은 시작됐고, 발걸음은 이미 빨라지고 있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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