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스포츠 40년 혁신 DNA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가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불혹不惑, 사물의 이치를 깨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다. 코오롱스포츠가 그렇다. 변화무쌍한 등산•아웃도어 시장에서 늘 푸른 상록수처럼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코오롱스포츠의 DNA를 살펴봤다.

▲ 코오롱스포츠가 올해 브랜드 론칭 40주년을 맞았다.
“내년에 영화로 마케팅을 하겠다.” 코오롱스포츠 40주년 마케팅 기획안을 검토한 프랑스 디자이너 장 콜로나가 두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2011년 코오롱스포츠는 장 콜로나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 그는 영입과 동시에 아웃도어 ‘트래블 라인’을 론칭한 인물이다.

직원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장 콜로나가 빙긋이 웃음을 지으면서 계획을 설명했다. “우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에게 단편영화를 한편씩 제작해 달라고 요청하자. 코오롱스포츠의 브랜드 ‘Way to Nature’를 주제로 감독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단편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1년 동안 영화 마케팅으로 광고를 한다.”

영화산업에 투자하자는 얘기가 아니었다. 스타 마케팅을 버리고 영화 마케팅을 전개하자는 거였다. 코오롱스포츠 수뇌부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영화를 통해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각인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브랜드 론칭 4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소비자에게 새롭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발상의 전환으로 승부

코오롱스포츠가 영화 마케팅을 전개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패션업계 안팎에서 ‘과연 효과가 있겠느냐’ ‘제작비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 말이 나왔다. ‘40주년을 맞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꼬집는 이들도 많았다.

코오롱스포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계획대로 추진했다. 한국영화의 열혈팬인 장 콜로나는 한국 유명 감독에게 단편영화를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박찬욱•박찬경 형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놀랄 만한 일은 계속 이어졌다. 배우 송강호가 주연을 맡은 것이다. 갑작스럽게 진행했거나 기획이 부실했다면 이 정도의 감독과 배우가 총출동할 리가 없다.

하지만 비관적 전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스타급 감독과 배우가 참여하자 “영화만 남고 제품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도 코오롱스포츠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소비자가 완성도 높은 영화로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한 마케팅 아닌가.”

▲ 코오롱스포츠는 교련복과 군복을 입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고 등산복을 개발했다.

코오롱스포츠는 지난해 12월 27일 3편의 단편영화 중 첫번째 작품인 ‘청출어람’을 공개했다. 득음 연습을 위해 산행에 나선 스승과 철부지 소녀 제자의 특별한 하루를 그린 20분짜리 단편영화다. 코오롱스포츠가 내세우고 있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자연에 다가가는 방법•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콘셉트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영화가 공개되자 끊임없이 제기됐던 우려가 사라지고, 폭발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벌써 50만명이 감상했다.

영화 마케팅 효과도 쏠쏠하다. 영화를 본 한 누리꾼이 남긴 평이다. “자연은 인간이 되고, 인간은 자연이 된다는 메시지가 남산의 경치가 묘하게 어우러진다. 코오롱스포츠 40주년 기념 단편영화인데도 제품 홍보용이라고 하기엔 아깝다.”

코오롱스포츠의 영화 마케팅 전략은 사실 파격적이다. 다른 업체였다면 꿈도 못 꿀 전략이다. 하지만 코오롱스포츠는 파격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콘셉트로 아웃도어 시장에서 살아남은 코오롱스포츠의 DNA가 읽힌다.

실제로 코오롱스포츠가 세상에 나온 것도 어쩌면 발상의 전환 덕이었다.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등산 애호가다. 산악등반원정대를 후원할 정도로 등산에 관심이 많다. 코오롱스포츠가 세상에 나오기 전인 1973년 어느날, 이동찬 명예회장은 평소처럼 산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문득 등산객의 옷차람이 눈에 들어왔다. 등산이라는 개념조차 모호하던 시절, 사람들은 교련복과 군복바지를 입고 산에 올랐다. 산에 갈 때 입는 옷이 따로 있을 리 만무했다.

순간 그의 뇌리에 아이디어가 스쳤다. “산에 갈 때 입는 옷이 없다면 만들어야지. 등산복이야말로 새로 만들어야 할 제품이다.”

코오롱그룹은 등산의류사업에 뛰어들었고, 등산복을 만드는 코오롱스포츠가 탄생했다. 그때까지도 등산복이 없었으니 당연히 국내 최초다.

사례는 더 있다. 코오롱스포츠 등산복의 특징은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이다. 패션성을 강조하기 위해 모던한 디자인을 추구한 게 아니다. 아웃도어 제품의 기본인 ‘기능’을 담보하기 위해서였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첫째 기능은 몸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오롱스포츠의 초창기 등산복은 박음질 사이로 땀이 차는 바람에 온도가 잘 조절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코오롱스포츠 개발팀이 모였다.

 

협업으로 참신한 발상 얻어

그때 개발팀의 눈에 속옷이 들어왔다. 봉제선이 없었다. 몸에 가장 밀접하게 닿는 속옷은 특성상 심리스(seamless) 기법으로 만들어진다. 아웃도어에 심리스 기법으로 제봉하면 바늘땀 사이로 땀이 찰 일이 없을 듯했다. 코오롱스포츠는 2007년 아웃도어에 심리스 기법을 적용한 ‘트랜지션 라인’을 출시했다.

제품뿐만이 아니다. 매장시스템도 ‘발상의 전환’으로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코오롱스포츠는 2004년 청계산 입구와 2005년 북한산 우이동에 아웃도어 문화공간 ‘코프’를 오픈했다. 단순히 제품만 파는 매장이 아니었다. 코프는 등산객에게 산행 전 안전준비와 휴식 등 정보를 안내하는 요충지다. 일종의 베이스캠프인 셈이다. 코오롱스포츠가 매장 곳곳에 등산문화를 도입한 결과물이다.

코프가 아웃도어 문화공간을 표방했다면 라이스타일 숍은 더 진화된 매장이다. 2007년 개점한 대구 수성구 라이프스타일 숍은 말 그대로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로 만들었다. 매장 전체를 제품만 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등산객의 ‘만남의 광장’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참신한 발상을 쏟아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답은 코오롱의 조직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코오롱스포츠는 협업을 중시한다.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는다. 2006년 영국 패션스쿨 학생과 진행한 콜라보레이션은 대표적 사례다.

코오롱스포츠는 영국 세인트마틴 패션스쿨 디자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개최했다. 미션은 이랬다. ‘조난을 당했을 때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아웃도어를 개발하라.’

공모전에 참가한 한 남학생이 제품을 출시했다. 비상용품이 들어있는 아웃도어였다. 상처 소독용 알코올이나 지혈패드•방수밴드를 넣을 수 있는 ‘서바이벌 키트’를 아웃도어에 단 것이었다. 코오롱스포츠는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생명을 지켜주는 콘셉트의 ‘라이프 세이브 재킷’을 출시했다.

 

아웃도어 업계의 사관학교

코오롱스포츠가 발상의 전환만으로 아웃도어 시장에서 정상의 자리를 지킨 건 아니다. 탄탄한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코오롱스포츠가 자랑하는 익스트림 라인은 근육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기술력 ‘모션테크(Motion Tech)’로 만들었다. 앞서 언급했던 심리스 기법을 적용한 ‘트랜지션 라인’도 이를 구현할 만한 기술력이 없었다면 론칭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탄탄한 인력 인프라도 경쟁력이다. 코오롱스포츠는 ‘아웃도어 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린다. 그만큼 한번 뽑은 인력은 전문가로 육성하는 데 능하다. 흥미로운 교육과정도 있다. 코오롱등산학교로, 코오롱스포츠의 힘이자 지금의 브랜드 파워를 만든 일등공신이다. 전직원이 입교해야 하는 코오롱등산학교는 1985년 설립됐다.

그렇다고 코오롱스포츠가 승승장구를 거듭한 것만은 아니다. 국내 토종 브랜드는 2011년 시련의 시절을 맞았다. 고가 아웃어도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중고등학생이 자주 입는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오랫동안 아웃도어 시장을 주도해온 코오롱스포츠도 역풍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코오롱스포츠는 이런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고가 논란을 제기한 소비자를 멀리하지 않고 되레 ‘소통’을 꾀하려 했다. 그 결과물이 소비자의 구매유형과 라이프사이클을 분석하는 ‘빅데이터’의 도입이다. 코오롱은 올해 도입한 빅데이터 시스템을 통해 고객의 입맛에 맞춘 상품을 시즌마다 빠르고 다양하게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노력은 가파른 매출성장률로 이어졌다. 지난해 업계 1위인 노스페이스의 매출성장률이 4.9%에 그친 반면 코오롱스포츠는 15.1%를 기록한 것이다. 매출도 6450억원을 기록해 노스페이스(6450억원)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지난해 하반기엔 전국 69개 백화점 아웃도어 부문에서 노스페이스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혁신적 발상•도전정신이 내성 키워

 
코오롱스포츠는 올해 ‘아웃도어의 본토’라는 미국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2006년 중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경험을 살려 미국 현지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체형, 선호하는 패션을 낱낱이 조사하고 있다. 미국시장에서 통할 만한 의류 70점과 등산화•배낭 30점도 기획•생산해 놨다. 국내 1세대 브랜드가 ‘아웃도어 본토’에서 통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코오롱스포트는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혁신적 발상으로 도전하면 길이 보인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혁신•도전정신이 코오롱스포츠의 내성耐性을 키운 것이다. 코오롱스포츠의 DNA는 그들의 심벌 ‘푸른 상록수’를 쏙 빼닮았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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