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주말골퍼•화이트칼라들이 골프가 안 되는 이유는 정신적인 요인이 압도적이다. 다음이 운동부족•육체적 노화현상 등이다. 잘못된 스윙은 그다음쯤 될 것이다. 스윙을 섣불리 바꾸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레슨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 골퍼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레슨천국이다. 골프업계는 전국연습장(인도어•스크린골프장 포함)이 지난해 현재 900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연습장당 1명에서 많게는 50명 이상씩 레슨프로를 두고 운영한다. 골프인구 당 골프장은 골프선진국에 비해 크게 부족하지만, 레슨환경만 따진다면 단연 세계 최고수준이다.

1995년 한 언론사에 ‘골프전문 레슨프로는 국내에 한 명도 없다’ 는 내용으로 기고한 적이 있었다. 레슨프로가 골프 최고수준의 이론과 지식을 갖춘 고급직종으로 추앙받는 ‘골프선진국’ 미국의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 역사상 최고의 레슨프로 하비 페닉은 폼이 아니라 정확성을 강조했다.
요즘 PGA투어에서 한창 잘나가는 짐 퓨릭(43•미국)이란 프로가 있다. 1990년대 초 미국 TV 중계방송을 보다가 “무슨 저런 골퍼가 다 있나?”고 의아해했다. 몇 년 뒤 TV 해설을 맡아 PGA 투어 중계를 하는데 공교롭게도 퓨릭이 우승권에 진입했다. 화면에 한참 비치고 있는데 코멘트를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했던 기억이 새롭다. 퓨릭이 세계적 골프명문 아리조나대 골프부원이 됐을 때 코치가 그의 스윙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려 했으나, 본인은 물론 어릴 때 그를 가르쳤던 아버지가 반대해 “앞으로 백스윙만은 절대 교정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역사상 최고의 레슨프로라면 하비 페닉(1905~92)을 꼽는다. 텍사스 오스틴CC에서 82년간 재직하면서 골프장 경영이나 프로투어를 마다하고 레슨프로만 고집했다. 그에게 레슨을 받은 이른바 ‘오스틴 학파’ 문하생 가운데는 84년 마스터스 챔피언 벤 크렌쇼, ‘아이언샷 귀재’ 톰 카이트, 세계골프 장타시대를 연 데이비스 러브3세 등 당대 세계 최강들이 즐비하다.

주말골퍼에게 ‘교과서 스윙’은 무리

특이한 점은 장기간 페닉에게 골프지도를 받았는데도 그들의 스윙형태는 제각각이었다. 페닉 레슨에서 강조된 것은 폼이 아니라 정확성이다. 박세리가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서 한국골프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을 때 해외 골프전문가들이 놀란 것은 한국선수들의 스윙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선수가 ‘스윙의 교과서’인 보비 존스의 동작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의 골프는 어릴 때 동네에서 썰매나 제기차기처럼 생활속에서 함께 성장한 놀이가 아니라 목적에 의해 도구를 갖춘 다음 새롭게 시작하는 낯선 스포츠다. 대한민국의 모든 골퍼들이 골프채를 잡는 순간 존스의 스윙과 똑같이 되기 위한 방법과 요령부터 배우는 이유다. 반면 퓨릭이나 크렌쇼•카이트 등은 수백만명의 미국 어린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골프놀이를 하면서 자연히 스윙근육이 굳어져 버린다. 스윙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의 한 케이블TV 골프채널 프로그램에서 한 레슨프로가 일반인들을 무작위로 선정해 레슨하는 장면이 있었다. 50대의 한 주말골퍼가 모델이 됐는데 “어깨를 더 돌려야 한다” “왼발의 버팀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 중년은 화이트칼라로 보였다.

배불뚝이에 허리나 하체, 어깨 근육도 시원찮은 사람에게 꽈배기 꼬듯 허리를 뒤틀고, 어깨를 더 돌려 스윙아크를 크게 하라는 주문은 무리다. 또 임팩트보다 폼에 집중하는 레슨의 전개도 아쉬웠다.

 
주말골퍼•화이트칼라들이 골프가 안 되는 이유는 정신적인 요인이 압도적이다. 다음이 운동부족•육체적 노화현상 등이다. 잘못된 스윙은 그다음쯤 되지 않을까. 레슨을 받기 전에 정신적•육체적으로 무엇이 부족한가를 파악하는 게 ‘생각하는 골프’다. 레슨이랍시고 한번 보고 스윙을 바꾸라는 조언은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존스나 우즈의 스윙을 상기하면서 ‘스윙 교과서’대로 하려다 골프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면 손해배상도, 보험도 청구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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