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주식백지신탁제도 허와 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가 중소기업청장으로 내정된 지 사흘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공직에 오르려면 그가 창업한 회사의 지분을 전량 팔아야 하는 법 때문이다. 반면 같은 법에 적용되는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은 여전히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말 그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가 3월 18일 경기 광주 주성엔지니어링 본사 회의실에서 중소기업청장 사퇴 표명 기자회견을 가졌다.
중소기업 CEO로는 처음으로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돼 기대를 모았던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가 3월 18일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내정된 지 사흘 만이다. 공직에 오르기 위해선 황철주 대표가 경영하는 반도체장비 제조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의 보유주식을 모두 팔아야 하는 공직자윤리법 때문이다. 그는 주성엔지니어링 지분 25.4%(약 695억원)를 보유하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재산공개 대상인 1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3000만원 이상의 보유 주식을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야 한다. 신탁계약을 맺은 금융기관은 이를 60일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 공직자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황 대표는 처음에는 중소기업청장직을 승낙했다. 백지신탁을 하면 자신의 주식을 신탁기관에 맡기고 공직이 끝나면 신탁해 놓은 주식을 다시 찾아 회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변호사 자문을 통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성엔지니어링 주식 전량을 60일 이내에 매각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 후 사의를 결정했다. 황대표는 “보유 지분을 2개월 내에 시장에 매도하면 주성엔지니어링은 공중분해될 것”이라며 “이제까지 회사를 믿고 지지해준 고객•주주•직원에게 무책임한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평생 일궈온 회사와 직원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황 대표가 1995년 창업해 키워온 회사다. 그는 반도체장비분야 엔지니어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주성엔지니어링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 대표가 지분 전량을 매각하면 대주주 지위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적대적 인수•합병(M&A)에도 노출될 위험이 있다.

황 대표가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하자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정몽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현대중공업 최대주주•지분 10.15% 보유)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 의원도 공직자윤리법상 재산공개 대상이다. 정 의원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지분 평가액은 2조원대에 달한다.

하지만 정 의원은 현대중공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의원직도 유지하고 있다.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도는 직무와 관련 없는 주식은 보유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는데, 국회의원의 경우 경제 관련 상임위원회만 피하면 된다.

정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다. 과거에도 지식경제위원회•정무위원회는 피하고, 외교통상위원회•교육과학기술위원회•국방위원회 등 현대중공업과 관계가 없다고 인정되는 상임위에서만 활동했다.

반면 황 대표는 중견기업인 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청장으로 활동하는데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정 의원은 주식백지신탁제도를 피하고, 실력 있는 기업인은 족쇄를 차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현장을 잘 아는 기업인이 불합리한 법규로 공직에 참여하는 길이 원천 봉쇄되는 것은 국가경제에 큰 손실”이라며 “능력 있는 기업인이 공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현행 주식백지신탁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brave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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