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롯데쇼핑몰의 이상한 상생

롯데가 동대문 상권에 진출한다. 올 5월 오픈하는 롯데패션몰(가칭)이 전진기지다. 롯데는 동대문 브랜드를 입점시키겠다고 밝혔다. 동대문 상인과 ‘상생’을 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임대 매장 규모가 33~39.6㎡(10~12평) 안팎이다. 3.3㎡(1평) 매장의 독립 브랜드가 입점하기엔 지나치게 크다. 롯데는 상생의지가 있을까.

▲ 롯데가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내세운 롯데쇼핑몰을 5월에 오픈한다.
동대문시장 안팎에 묘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내세운 쇼핑몰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계열사 롯데자산개발은 동대문 패션TV를 리뉴얼한 ‘롯데패션몰’(가칭)을 선보인다. 오픈 예정일은 5월 31일이다. [※ 패션TV 장기임차에 동의하지 않은 매장소유자 22명 중 12명이 지난해 12월 제기한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은 최근 기각됐다. 3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롯데자산개발과 패션TV 측에 “공사를 계속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렸다.]

롯데는 롯데쇼핑몰의 콘셉트를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로 잡았다. 롯데쇼핑몰의 메인 브랜드로 삼겠다는 의도다. 기존 동대문 소매시장 쇼핑몰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서다. 유명 한국 패션 디자이너와 백화점에 없는 톡톡 튀는 스트리트패션 브랜드도 배치한다. 동대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명품관도 조성할 예정이다.

롯데의 꿈은 크다. 롯데의 유통노하우와 동대문 상권의 아이템을 결합해 롯데패션몰을 패션1번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롯데자산개발은 일찌감치 동대문 상권 활성화는 물론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적극 양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롯데가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판로와 유통이 약한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롯데쇼핑몰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다. 실제로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성장이 한계에 달했다고 판단한 유통업계는 쇼핑몰을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관건은 아이템이다. 유통사마다 자체 브랜드나 새로운 아이템이 없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롯데자산개발 관계자는 “롯데ㆍ신세계ㆍ현대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브랜드 90%가 중복돼 차별화를 줄 수 있는 브랜드가 필요하다”며 “롯데쇼핑몰은 동대문에 있는 우수한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롯데의 유통망에 공급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가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유치하겠다고 나선 배경이다.

주목할 점은 롯데가 출사표를 던진 동대문 상권이 ‘시장’이란 사실이다. 동대문이 국내 대표 패션타운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시장이다. 아무리 유통공룡 롯데라도 동대문시장의 구조와 특징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쇼핑몰 사업은 키포인트를 찾고 맥을 짚어내는 게 중요하다. 그 역할을 명동 레벨파이브 MD팀이 맡았다.

레벨파이브는 2009년 동대문 디자이너 브랜드를 편집숍 형태로 론칭해 주목을 받았다. 그때까지 동대문 브랜드를 외부로 끌어와 유치한 사례는 없었다. 롯데가 레벨파이브 MD팀과 손을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 내세운 이유는

그런데 롯데의 동대문 상권 진출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롯데는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적극 유치하겠다면서 33~39.6㎡(10~12평) 내외의 매장을 주로 내놨다. 가장 작은 규모는 16.5㎡(약 5평) 안팎이다. 하지만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파는 매장은 1.9~5.6㎡, 다시 말해 1평 안팎이다. 인력과 자본력이 약한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는 현실적으로 33~39.6㎡ 규모의 매장에 들어갈 여력이 없다.

물론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가 작은 매장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33㎡(약 10평) 규모의 매장을 운영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동대문 디자이너 브랜드에게 33㎡는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이 많다. 다시 말해 동대문 브랜드를 유치하겠다는 롯데쇼핑몰은 규모가 갖춰진 디자이너 브랜드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동대문시장 독립 브랜드 디자이너는 “동대문 상권에서 33㎡ 규모의 매장에 들어갈 수 있는 브랜드가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레벨파이브 MD팀과 손을 잡은 롯데가 매장 평수를 33㎡로 내놨다는 건 애초에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유치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고 말했다.

롯데도 할 말이 있다. 롯데자산개발 관계자의 말이다. “동대문 상권과 상생한다고 했고, 실제로 손을 잡으려고 가장 작은(16.5㎡ㆍ5평) 매장도 준비했다. 하지만 자본력이 약한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는 이마저도 버거워한다. 이런 경우는 우리와 손을 잡을 수가 없다. 만약 사입을 병행하면서 디자이너 브랜드를 내놓는다면 가능하다. 디자이너 브랜드라고 해도 사입은 피할 수 없다.”

사입은 도매상권에서 상품을 사다가 판매하는 걸 말한다. 비록 사입을 하더라도 기존 상품과 차별화를 줄 수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라면 입점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입을 병행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순수하게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로 볼 수 있는 지는 애매하다. 그런데 사입으로 제품의 구색을 맞추는 디자이너 브랜드도 롯데쇼핑몰 입점이 쉽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중으로 내야 하는 수수료 때문이다. 이들은 사입 수수료와 롯데쇼핑몰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롯데쇼핑몰 수수료는 대략 25%다.

롯데자산개발 관계자는 “3월까지 브랜드 계약을 50% 체결하는 게 목표인데, 디자이너 브랜드의 비율이 높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로 100% 전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빈 공간을 롯데가 가지고 있는 편집숍 브랜드를 넣는 게 낫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오긴 한다”고 말했다. 당초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양성하겠다고 선언한 롯데의 명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롯데는 지난해 10월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영플라자는 전면적으로 리뉴얼했다. 과감하게 스트리트패션과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를 중심으로 편집숍을 선보였는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월 매출 1억~2억원이 나올 정도로 브랜드마다 수익이 괜찮다. 이미 영플라자에서 시장 가능성을 확인한 롯데가 편집숍 브랜드를 동대문에 끌어올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동대문 상권 상생 외쳤지만…

▲ 김창권 롯데자산개발 대표이사(왼쪽)는 지난해 1월 동대문 패션TV 일괄입점 본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롯데는 롯데쇼핑몰의 메인은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라고 강조하고 있다. 롯데자산개발 측은 “수가 적다고 해도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를 중심으로 MD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짜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한창 논란이 일었던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관점에서 보면 롯데의 동대문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 유치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롯데는 대기업이다. 소상공인이 대부분인 동대문상권에 진출하면서 자칫 골목상권을 잠식한다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시장이라는 특성 때문에 재래시장 소상인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불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롯데는 동대문 상권 진출을 선언하면서 ‘상생’을 외쳤다. 상생을 통한 동대문 상권 진출로 대기업의 반감을 무마한 것이다. 동시에 홍보효과를 얻었다. 돈을 무기로 전방위 공세를 펼치는 대기업의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동대문 소상인과의 상생을 내세우는 롯데를 보면 볼수록 불편한 이유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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