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록 TNT투어 대표

위기는 누구에게든 찾아온다. 하지만 어떤 이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도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폭풍으로 졸지에 빈털터리로 전락했다가 화려하게 재기한 김영록 TNT투어 대표가 그런 이다. 그는 다 죽은 시장에 사과나무를 심어 알찬 열매를 맺는 데 성공했다. 그의 재기 스토리다.

▲ 김영록 TNT투어 대표는 요즘 기분이 좋다. 밖에 나가면 TNT투어에 대한 칭찬으로 자자하다. 그의 성공 노하우를 묻는 이들도 많다. 김 대표는 항상 직원들 덕분이라고 고개 숙여 말한다.
2011년 3월 11일. 믿을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宮城縣 센다이시仙臺市 앞바다에서 9.0 강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쓰나미가 몰려왔고,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터졌다.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일본 열도를 덮쳤다. 많은 사망자와 실종자가 속출한 대규모 참사였다. 이 참사로 국내 여행업계도 타격을 입었다. 일본 관광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김영록(35) TNT투어 대표는 “그때만 떠올리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당시는 김 대표가 일본 전문여행사 TNT투어를 오픈한 지 4개월 쯤 됐을 때다. 이제 막 기지개를 펴려는 그의 발목을 ‘대참사’가 잡은 셈이었다.

사고 후 ‘일본=방사능’이라는 인식이 생겼고 그의 사무실에는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다. 예약전화로 분주해야 하는 사무실에는 전화 한통 울리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다. 투자금 1억원을 모두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빈털터리가 된 김 대표는 ‘소주’로 밤을 지새웠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한달 여가 흘렀을까. 김 대표는 대마도행 좌석(배표)이 남아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에 속하는 대마도는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곳이다. 부산에서 배편으로 1시간 반에서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볼거리도 많다. 게다가 원전이 터진 후쿠시마와도 거리가 멀었다. 사고 이후 일본 여행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국내 여행 업체들도 대마도 지역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는 ‘이거다’ 싶었다.

김 대표는 남아도는 대마도행 배표를 헐값에 대량 구매했다. 그리고 부산~대마도 뱃삯(왕복기준)을 2만90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기 전만 해도 대마도로 가는 뱃삯(왕복 기준)은 8만~9만원이었다. 입소문이 났고, 수많은 언론사가 취재를 했다. 공중파 방송에선 대마도 여행 상품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대마도 여행 상품은 부산 지역 아줌마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거제도 여행을 가듯 당일치기 여행으로 대마도를 찾았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면세점 쇼핑이 가능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당시 2만9000원짜리 대마도 여행 상품을 팔아 남는 김 대표가 가져가는 수익은 5000원 남짓이었다.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대량 판매로 회사에는 현금이 돌기 시작했다. TNT투어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김 대표를 찾는 이들도 늘어났다. 다른 선박 회사에서도 자기 회사의 상품을 팔아 달라며 김 대표를 찾아왔다. 김 대표는 부산에서 배로 출발하는 일본 저가 여행 상품을 속속 내놓기 시작했다.

10만원 미만에 가는 2박 3일 오사카大阪 자유여행, 부산에서 규슈九州로 가는 5만9000원짜리(일요일 출발) 상품 등을 내놨다. 일본 원전사태에서 출발한 위기를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돌파한 셈이다.

2만원대 대마도 상품으로 기사회생

 
그의 아이디어가 알찬 열매로 이어진 예는 또 있다. 일본 저가상품이 인기몰이를 시작하던 2011년 여름, 저가항공사 에어부산이 부산~홍콩 노선 취항을 시작했다. 김 대표의 머릿속에 다시 ‘이거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 서울에는 홍콩으로 가는 항공편이 많았지만 부산은 그렇지 않았다. 김 대표는 부산을 ‘홍콩으로 가는 제2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홍콩여행 전문 웹사이트 ‘빨간콩’을 만들었다. [※ 참고: 홍콩의 ‘홍’을 붉을 홍紅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에어부산이 내놓은 ‘부산~홍콩’ 노선과 연계해 ‘빨간콩 여행상품’을 출시했다. 판매 첫달에는 150명, 다음달에는 200명, 그다음 달에는 300명이 빨간콩을 통해 홍콩으로 떠났다. ‘홍콩=빨간콩’이라는 인식은 자연스레 생겼다.

저가 일본 여행상품과 달리 40만~50만원 하는 홍콩 여행 상품은 마진도 좋았다. 당연히 현금 유동성도 좋아졌다. 빨간콩에 투자하겠다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김 대표 내친김에 서울 사무소 오픈을 서둘렀다. 투자를 받으면 승산이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갑자기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결국 투자는 무산됐지만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고 서울사무소 오픈했다. 처음 8개월 동안은 부산 사무소에서 벌어들인 돈을 서울사무소에 투자했다. 또한 여행개발 상품수를 늘리고 고객서비스를 강화해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서울사무소를 오픈한 지 8개월쯤 지나자 흑자 궤도에 올랐고 서울 사무소 오픈 전보다 매출이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겨울에는 서울사무소 사무실도 넓혔다. 김 대표는 “안 되는 일은 없다”며 “하고 싶고 될 것 같으면 공격적으로 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영록 대표는 회사가 작다고 직원들 복리후생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TNT투어 직원들 연봉은 동종업계 비슷한 규모의 여행사보다 최소 100만~200만원 높다.
실제로 그는 ‘공격경영’으로 위기를 돌파했고, 고속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다. 아무도 일본을 찾지 않을 때 대마도 여행상품을 기획·판매했다. 한번도 가보지도 않은 홍콩여행상품은 말 그대로 ‘가능성만 보고’ 만들었다. 서울사무소 역시 많은 이들의 반대를 뚫고 성공했다. 직원들한테 대할 때도 다르지 않다. 가능성이 적은 안건이나 의견을 내는 직원들에게 “안 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할 수 있는가” “책임 질 수 있나”라는 말로 대신한다. 적자가 나오면 다른 것을 잘해서 메우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TNT투어의 지난해 매출은 80억원에 달한다. 업력이 2년 조금 넘은 중소규모 여행사가 벌어들인 금액치고는 상당한 수준이다. 그가 처음 TNT투어를 오픈했을 때 직원수는 3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서울 지사와 부산지사 직원수를 모두 합치면 30명에 달한다. 직원수만 보면 2년 만에 10배나 성장한 셈이다. 주변에서는 김 대표를 두고 “돈을 많이 벌었으니 술 좀 사라” “밥좀 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호주머니는 늘 비어 있다. 김 대표 스스로 회사 돈 1000원만 쓰더라도 경리 직원이 알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해 놨기 때문이다. 그는 “배가 더 고파야 더 열심히 뛴다”며 너스레를 떤다. 자신에겐 인색하지만 직원들에겐 다르다. TNT투어 직원의 연봉은 중소규모 여행사와 비교했을 때 100만~200만원 정도 많다. 지난해 인센티브로만 1000만원 가까이 받은 직원도 있다. 그는 연봉을 많이 주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창업 2년 만에 연매출 80억원

 
“오너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직원들이 흥을 느끼고 일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회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연봉이 모든 걸 보장해 주진 않지만 ‘우리 회사가 어디에도 밀리지 않는다’는 자부심 정도는 줄 수 있죠. ‘흥’은 돈이 아니라 ‘감정’으로 만드는 겁니다.”

김 대표는 홍콩여행 전문 사이트인 빨간콩과 마찬가지로 각각 국가의 색깔을 담은 전문 여행사이트를 만드는 게 목표다. 다양한 국가의 패키지 상품을 모아 파는 다른 여행사의 전략과 180도 다르다. 김 대표는 “국가별로 다른 색과 향을 갖고 있다”며 “이를 오롯이 담아 각각의 전문 웹사이트를 만들면 좋은 여행상품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 성공여부는 알 수 없다. 아직까지 이런 유형의 여행상품을 출시한 사람도, 업체도 없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일단 지르고 볼 생각이다. 이미 된다는 희망은 품었다. 이제는 되게 할 일만 남았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