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1] 저성장 국면 탈출 해법

▲ 박근혜 대통령은 저성장 국면을 탈출할 수 있는 대안으로 창조경제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7분기 연속 0%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칠흑 같은 터널 속에 갇혀 있다. 해법은 간단하다.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경제구조를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장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장기플랜을 세워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두고 비판이 많다. 야당과 진보진영에선 현 정부가 창조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혹은 어떤 의미로 쓰고 있는지 되묻는다.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조차 창조경제가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물론 창조경제에 대한 공감대는 있다. 정부는 국정목표로 발표했던 자료에서 창조경제를 ‘과학기술과 사람중심의 선도형 창조경제’ ‘성장 잠재력 제고와 좋은 일자리 창출이 선순환되는 지속가능한 경제시스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령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전 산업영역에서 튀어나오고, 이를 반영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잘 팔리고, 그 결과 고용과 투자•소비가 늘어나는 경제구조다. 이런 경제구조를 갖춰야 수출 중심의 구조를 개선할 수 있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키울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창조경제가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야당과 진보진영은 정부의 진정성을, 여당은 구체적인 내용이 뭐냐고 묻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말로는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 정책은 그렇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정부가 4월 1일 내놓은 부동산대책을 보자.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은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진화를 토대로 하는 창조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건실한 경제구조’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전문가들은 총부채상환비율(DTI) 자율화와 금리•세금인하를 통한 부동산매매 활성화는 부동산시장 거품과 가계부채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대출요건을 생애 첫 구입에 한정했지만 기본적으로 돈을 더 빌릴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에 가계부채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 건물을 지으려면 기존의 건물을 허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존 경제구조를 허물지 않으면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창조경제로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 내겠다고 했으니 새로운 정책을 통해 구현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부동산대책처럼 또 다시 낡은 정책을 꺼내들었다. 저성장 국면을 극복하겠다며 내놓은 대책도 창조적이지 않다. 국채를 발행해 만든 돈으로 경기부양을 꾀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돌입한 건 최근 일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한국경제는 ‘저성장’에 시달렸다. 대외변수에 민감한 한국으로선 세계경기침체를 감당할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에 봄바람이 불지 않는 한 한국경제는 돈 몇 푼 풀어서 저성장 국면을 탈출하기 어렵다. 국채발행을 통한 경기부양으로 저성장 국면을 돌파해도 문제가 남는다. 세계경기가 냉각되면 한국경제는 또다시 저성장에 빠질 수밖에 없어서다.

한국경제가 저성장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장기플랜이 필요하다. 저성장은 일시적으로 돈을 풀어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체력을 키우는 거다. 경제에서 기초체력은 성장잠재력이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불황은 종이에라도 불을 지펴서 해결하면 되는 문제지만 성장은 장작에 불을 지피는 문제”라며 “호황과 불황이라는 경기변동에 휘둘리지 않는 경제구조를 만들려면 성장잠재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장잠재력은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 생산성에 따라 결정된다. 자본과 노동 투입량이 많고, 생산성이 높으면 성장잠재력도 올라간다. 전성인 교수는 “노동 투입량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자본 투입량을 늘리려면 설비투자가 필요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연구개발(R&D)을 해야 한다. 이제껏 정부가 계속 해왔던 것들이다. 그래서 효과를 봤나. 못 봤다. 일례로 중소기업의 R&D가 잘 돼야 투자와 생산성이 좋아지는데, 성과공유제라는 명목으로 대기업이 성과를 뺏어가는 구조다. 최근 상장기업 순이익 통계를 보면 삼성을 비롯한 4대 기업의 성과를 빼면 성과랄 게 없다. 이런 걸 개선해야 하면서 노동 투입량을 늘려야 한다.”

기초체력 키우는 게 곧 창조경제

전 교수는 노동 투입량을 늘리는 방법의 일환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강조했다. 정부가 산후•산전 휴가나 남성의 산후휴가를 제대로 보장해주는 등 여성친화적 고용환경만 마련해줘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일 수 있다는 거다.

신관호 고려대(경제학) 교수는 직접적으로 일자리 문제 해결이 시급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일자리가 있다고 해도 고용의 질이 높지 않고 청년실업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저성장 국면은 꾸준히 지속될 것이다.”

생산성이 높은 산업을 하루빨리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동 투입량을 늘리는 것만으로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긴 역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우석진 명지대(경제학) 교수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만연한 상태에서 인적자원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디자인이나 애니메이션, 법률 등 생산성이 높은 서비스 산업을 제조업과 융합하는 산업 고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편적인 방법으로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비관론도 있다.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요소를 총체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은 “무엇이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불안•비정규직•가계부채• 양극화•경제민주화•저출산•고령화•기업투자부진 등 모든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다는 것이다. 동시다발적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사실 앞선 주장과 다르지 않다. 고용불안•저출산•고령화 문제는 노동투입량과 직결된다. 기업의 투자부진은 자본투입량에 영향을 미친다. 저성장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선 성장잠재력을 저해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정부가 저성장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의 육아부담•경력단절 완화’ ‘고급직군에서의 여성고용 확대’를 약속했다. 여성의 사회참여기회를 넓혀 노동투입량을 늘리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국가무상교육•무상유아교육은 출산율을 높여 노동투입량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 투입량을 늘리는 정책은 더 있다. ‘60세까지 정년 연장’ ‘어르신 일자리 확대’ ‘해고요건 강화’ ‘하도급 근로자 보호’‘기업의 일방적 구조조정’ ‘정리해고 방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유도’ 등이다. 

공약 잘 이용하면 창조경제 절반 달성

자본투입량을 늘리고 생산성을 강화하는 정책은 ‘대•중소기업의 상생’ ‘중소기업 R&D 지원’ ‘중소기업 지원’ ‘중소기업 패자부활 기회 확대’‘서비스 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골목상권 살리기’ 등이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공약에는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릴 만한 것들이 많다. 좋은 공약을 잘 다듬어 실천하면 성장잠재력이 생기고, 창조경제의 밑바탕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선대인 소장은 “좋은 공약을 제대로 실천만 해도 창조경제의 절반은 성공하는 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제아무리 방안이 좋아도 성장잠재력은 쉽게 끌어올리기 어렵다. 창조경제의 밑바탕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으로선 성장잠재력이 흔들리지 않게 터를 닦는 게 중요하다. 이것만 잘해도 박 대통령은 퇴임 후 박수갈채를 받을 것이다. 저성장 국면, 하루아침에 돌파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장기플랜, 이게 필요하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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