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총론] 北 리스크 해소 전략 ‘대화 > 맞불’

남북 대치 상황이 살얼음판이다. 누구든 발을 잘못 놀리면 대형사고가 터질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이 한발의 총성에서 시작됐듯 말이다. 문제는 남북간 대화의 창이 막혀 있다는 거다. 4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화의 창은 열려 있다”며 입장을 선회하긴 했지만 갈길은 아직 멀다.

▲ 북한이 연일 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북한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조장하던 올 3월 28일. 미국의 스텔스 폭격기 2대가 한반도 상공에 떴다. 최고 성능의 전폭기로 불리는 ‘B-2’였다. 한반도에 도착한 B-2는 훈련 후 곧바로 귀환하는 장거리 왕복 임무를 수행했다.

스텔스기는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는다. 1만5000m 상공에서 날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해선 요격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히로시마 원폭 위력의 50배가 넘는 핵폭탄을 16발까지 장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텔스 B-2가 북한 영공에 침입해 핵폭탄을 투여하면 북한으로선 막아낼 재간이 없다.

당연히 북한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B-2 출격 다음날인 3월 29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미사일 사격대기’를 지시했다. 미그21 전투기를 북방한계선(NLL) 북단 인근까지 내려 보내며 무력시위를 하기도 했다. 미국도 가만있지 않았다. 4월 1일 또 다른 스텔스 기종인 ‘F-22’를 오산기지에 투입했다.

미국은 왜 한반도에 스텔스기를 띄웠을까. 대다수 언론은 대북 압박용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출격시기가 다소 늦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런 시각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이에 대해 한 해외 소식통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그는 사견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스텔스기의 출격은 ‘북한 압박용’이라기보다는 박근혜 정부를 안심시키기 위한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우리가 맡을 테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라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물론 여러 분석 중 하나일 뿐이지만 곱씹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3차 북핵위기가 터진 이후부터 남과 북은 강경발언을 쏟아내면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창구를 마련하는 건 여간 어렵지 않아 보인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북한의 막무가내식 행동에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약한 인내심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맞불 전략’을 펼쳤다는 이야기다.

스텔스기가 출격한 진짜 이유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주장해 왔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란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남북간 믿음이 쌓이고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경제협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비해 융통성 있는 남북관계를 지향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이 전략은 애초부터 실현가능성이 낮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적으로 고립 상태에 있는 북한이 ‘비핵화’를 꾀할 공산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비핵화를 전제로 내세운 박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가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는 4월 3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북한은 동등하고 동시적인 조건이 아니고서는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수차례 밝혀왔다”며 “그럼에도 ‘북핵 불용’이라는 미명하에 대화를 사실상 무산시키고 있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대결적인 대북정책”이라고 쏘아붙였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명박 정부 당시의 ‘선先핵폐기 고수정책’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민권연대의 주장이다.

박근혜 정부의 인내력이 약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또 있다. 박근혜 정부의 안보 담당 책임자 대부분은 대북 강경론자다.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관진 국방부장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사전타격’ ‘강력응징’을 주장하는 인사들이다. 이들에게 대북 리스크는 대화로 풀 만한 문제가 아닐 게 불 보듯 뻔하다.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감돌고 있음에도 대북특사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 역시 충동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후계자로서 인수인계 기간이 짧은데다 나이가 어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 비해 국가장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고지도자로서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출구전략을 감안하지 않은 채 강경일변도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국제사회의 압박에 대처할 카드의 미흡함 등은 김 위원장을 출구가 없는 벼랑으로 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한 외교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르고 달래는 게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몰아붙일 때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놔야 상대방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도, 김정은 위원장도 이게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해외 소식통의 입에서 ‘남측 정부는 인내력이 없고, 김 위원장은 성격이 급하다’는 말이 나올까.”

실제로 이번처럼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감돈 적은 없다. 중국 공산당 간부 양성 기관인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의 북한 문제 전문가 장롄구이 교수는 홍콩 원후이바오文匯報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70~80%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대북 리스크가 계속 이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아시아섹션 ‘리얼타임 코리아’에 기고한 ‘제2의 한국전쟁: 호랑이 꼬리와 검은 백조’라는 기고문은 의미심장하다. WSJ는 기고문을 통해 “김정은이 강경한 군부의 벼랑끝 전술을 따라가려고 애쓰고 있다”고 분석한 뒤 “우발적인 작은 도발에 대응하면 확전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근혜 정부의 맞대응론은 ‘한반도 전쟁은 없다’는 게 전제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켜도 승산이 없고, 그렇다면 정권이 끝나기 때문에 자멸을 선택하진 않을 거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근거일 뿐이다. 비이성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얼마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한발의 총성이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듯 말이다. WSJ는 “비무장지대 남북의 군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영원히 이성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믿음은 여전히 지지를 받는 것일까”라며 의문을 표했다.

남북의 극단적인 대치로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다. 개성공단은 사실상 폐쇄돼 입주업체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3월 20일 있었던 북한의 사이버테러로 인해 주요방송국과 시중은행의 전산망이 마비되기도 했다. 2000포인트를 넘나들던 코스피 지수는 위기상황이 지속되면서 1920포인트대로 주저앉았다. 불안감에 외국인 투자도 지지부진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도 늘고 있다. 전남의 한 초등학교에 파견된 미국인 교사는 “전쟁 때문에 두렵다”는 편지만 한통 남기고 난데없이 출국해 관계자들을 난감하게 했다.

보다 못한 재야 정치인들이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4월 9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북의 의도를 분석중이라는 통일부는 분석하지 말고 대화를 하라. 무슨 바이러스 박테리아 분석하나. (같은 민족이라)대화하는 데 통역도 필요 없지 않은가.”

분석보다는 대화해야

다행스러운 점은 박근혜 정부가 입장을 조금 선회했다는 것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4월 11일 성명을 내고 북한에게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공식적인 대화 제의인지 단순한 입장표명인지에 대해 혼란이 있었으나 몇 시간 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국방위, 외교통상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북한과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고 말하며 대화의지를 공식화 했다.

정부의 입장선회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융통성 있는 자세로 바꾼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야당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의 대화제의를 높이 평가한다”며 “북한도 진솔하게 응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정미 진보정의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의지를 직접 밝힌 것은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로 받아들이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물론 북한이 박근혜 정부의 대화제안을 거절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한쪽에서 대화를 요구하면 다른 한쪽은 강경일변도 전략을 고수하기 어렵다. 지금은 맞불이 아니라 대화가 필요한 때다. 그래야 박 대통령이 주장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가동된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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