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업체의‘靑 빼기’전략

 패션계는 2009년 ‘스키니진’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지 않았다. 스키니진의 인기는 ‘컬러진’으로 이어졌다. 빨주노초파남보 색깔의 컬러진을 입은 ‘소녀시대’가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컬러진으로 타격을 입은 업체는 청바지의 대명사 ‘리바이스’였다. 제임스 딘의 청바지가 소녀시대 앞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 패션업계는 정통 캐주얼 청바지 브랜드의 고전이 컬러진과 하의실종 열풍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한다.
‘청바지는 리바이스(L=EVI’s)’라는 공식이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1990년대 10대와 20대 사이에서 열풍이 불었다. 리바이스 청바지만 있으면 부러울 게 없었다. 리바이스가 인기를 끈 이유는 간단하다. 청바지 고유의 푸른색을 최대한 살린 정통 청바지라는 이미지를 강조해서다. 150년이 넘는 브랜드 역사와 오랫동안 축적한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매출은 상승곡선을 그렸고, 2006년엔 매출 1000억원 시대를 열었다. 청바지의 대명사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청바지 시장을 주도한 건 리바이스만이 아니었다. 캐주얼 청바지를 표방한 캘빈클라인진ㆍ잠뱅이ㆍ빈폴진ㆍ폴로진은 젊은 여성소비자를 공략하며 시장에 안착했다. 푸른색 청바지를 입어도 엉덩이 볼륨이 드러나도록 ‘워싱’(청바지 색을 빼는 기법)을 처리한 덕분이었다. 정통 청바지를 표방하면서도 패션을 강조한 것이다. 청바지는 오랫동안 불티나게 팔렸다. 업계 1위 리바이스와 2위 캘빈클라인진의 아성을 깰 브랜드는 없어보였다.

그랬던 청바지 시장 판도가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다.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정통 캐주얼 청바지 브랜드가 부진의 늪에 빠졌다. 리바이스는 2009년 이후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영업이익은 3억원에 그쳤다. 매출은 845억원에 불과했다. 전년에 비해 150억원 넘게 줄었다. 청바지 시장을 주름잡았던 브랜드 치고는 초라한 실적이다.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2009년 롯데ㆍ현대ㆍ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청바지 매출 순위에서 2위로 하락한 것이다. 해마다 순위가 내려가더니 2011년 10월엔 4위로 추락했다.

하의실종레깅스컬러진 열풍

▲ 하의실종 패션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레깅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급기야 리바이스는 지난해 3월 후속브랜드로 전개한 데니즌 프롬 리바이스 판매를 중단했다. 2008년 10월 론칭한 이후 1년6개월 동안 성과가 미진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2위를 굳건히 지켜왔던 캘빈클라인진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롯데백화점이 청바지 브랜드 매출을 분석한 결과 2010년에는 전년 대비 0.7% 신장했고, 2011년엔 되레 3.6% 감소했다. 그해 현대백화점에서도 캘빈클라인진의 매출 증가율은 2.0%에 그쳤다.

캐주얼 청바지 브랜드의 부진은 국내 패션 트렌드가 급변한 데서 기인했다. 2009년부터 하의실종 패션의 열풍이 불었는데, 이게 청바지 실적에 악영향을 끼쳤다. 여름에만 입었던 짧은 바지나 치마가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일상복이 된 것이다.

레깅스의 인기도 청바지에겐 악재였다. 맨다리를 드러내는 게 부담스러워 입었던 레깅스는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잡았다. 투박하고 불편한 청바지를 신축성이 좋은 레깅스가 대신한 것이다. 청바지와 레깅스를 결합한 제깅스가 유행 대열에 합류했다.

실제로 청바지 매출이 감소하는 동안 레깅스의 판매량은 급증했다. 온라인쇼핑몰 옥션의 2009년 레깅스 판매 증가율은 15%에 달했다. 온라인쇼핑몰 인터파크에서도 레깅스 구입률이 21%(2010)로 껑충 뛰어올랐다. 2009년엔 12%였다.

반면 청바지 구매율은 곤두박질 쳤다. 옥션의 2009년 청바지 판매율은 10%나 하락했다. G마켓도 그해 5% 감소했다. 인터파크 역시 2010년 청바지 매출률이 6% 줄면서 시들해진 청바지의 인기를 증명했다.

정통 캐주얼 청바지 브랜드가 침체한 이유는 또 있다. 형형색색의 스키니 컬러청바지(컬러진) 유행이다. 2009년 1월 가수 소녀시대가 입고 나온 화려한 컬러진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컬러진의 돌풍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침체된 분위기를 튀는 색으로 기분전환하려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었다. 과거 패션을 다시 찾아 입는 레트로 패션(Retro fashion)은 컬러진이 인기를 얻는 데 한몫했다. 최근 국내 패션계에 복고풍이 분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통 캐주얼 청바지 브랜드는 푸른색 청바지를 고수했다. 자칫 브랜드의 정체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개성 강한 디자인과 색상을 선호하는 젊은층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최근 정통 캐주얼 청바지 브랜드의 상황은 더 안 좋다. 후발주자 청바지 브랜드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고 있어서다. 5만원 미만의 SPA 브랜드 청바지와 10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양분되면서 중가대의 시장을 형성해왔던 리바이스ㆍ캘빈클라인진ㆍ빈폴진 등의 성장세가 꺾였다.

실제로 씨위ㆍ트루릴리전ㆍ제임스진ㆍ누디진 등 한벌에 40만원에서 100만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진이 강남 편집매장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유니클로에서 지난해 9월 출시한 울트라 스트레치 청바지도 출시 3개월 만에 초기 목표치의 140%를 달성했다. 청바지와 레깅스를 결합한 제깅스였다. 몸에 꼭 붙어 피로감을 주는 스키니 청바지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몸매를 드러낸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정통 캐주얼 청바지 브랜드는 체질개선에 나섰다. 시장에서 더 이상 밀려서는 안 된다는 우려감의 발로였다. 먼저 디자인과 소재의 리뉴얼을 시도했다. 2010년 버커루는 얼룩덜룩한 곰팡이(워싱의 흔적) 유형의 청바지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리바이스는 지난해 컬러 앵클 스키니 청바지를 끌었다. 청바지 색깔만은 양보하지 않았던 리바이스가 패션 흐름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여름엔 여름용 청바지 쿨맥스 기법을 활용한 쿨진(Cool Jean)을 6가지 색깔로 내놨다.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 매출을 유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의실종 패션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청바지 판매량이 가파르게 줄어든 것을 새 아이템으로 보완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더위가 길어지는 추세에 발맞춰 얇고 가벼운 청 소재의 상의류를 집중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봄에는 청 소재를 활용한 조끼ㆍ야상점퍼, 여름엔 핫팬츠ㆍ스커트ㆍ청남방 등을 주력 제품으로 내놓는 것이다.

 

돌파구 찾는 정통 청바지 업체들

실제로 매출 상위권을 유지한 브랜드는 청바지 이외의 아이템으로 효과를 봤다. 최근 4년간 캐주얼 청바지 브랜드 중에서 유일하게 매출이 신장한 게스진(GUESS Jean)이 대표적이다. 게스진은 지난해 16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파란색 티셔츠ㆍ니트류ㆍ스커트ㆍ블라우스를 활용한 제품 판매율이 크게 증가해서다. 특히 면 99%ㆍ스판 1%로 만든 컬러 청바지와 스와로브스키 금속 삼각 장식으로 포인트를 준 핫팬츠가 인기를 끌었다.

청바지 업체가 부진에 빠진 것은 글로벌 불황 때문만은 아니다. 소비자의 니즈가 정통 청바지가 아닌 톡톡 튀는 바지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통 청바지를 고집하던 리바이스가 소비자의 니즈를 받아들이면서 위기를 탈출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청바지 업체는 이제 ‘마이너스 전략’을 펴야 한다. 청바지에서 ‘청’을 빼야 한다는 얘기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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