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조선에는 학식이 뛰어난 군주가 여럿 있다. 학문군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손시절부터 공부에 남다른 소질을 보인 인물은 정조(22대)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그는 일부로 한두 자 틀리게 암송하고 신하들이 지적하지 못하면 나무랐다. 신하의 학문을 시험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정조시대, 조선 팔도에서 학문으로 첫손가락에 꼽힌 이는 홍대용이다.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음에도 그를 추천하는 목소리가 조정에서 울려 퍼졌을 정도다. 그는 학문을 위해 학문을 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학문을 추구했다. ‘실용실행實用實行’을 중시한 셈이다. 학계가 홍대용을 실학자의 대가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실제로 홍대용은 과학자이자 수학자였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당대 손꼽히는 거문고 연주자이기도 했다.

1774년 12월, 두 공부벌레 정조와 홍대용이 만났다. 만남은 300여일간 이어졌다. 조선 최고의 ‘지성’이 만나 학문을 논할 때면 궁궐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정조가 홍대용에게 「중용」의 한 구절을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할 법도 한데 홍대용은 태연했다. 문장을 외우는 것보다 큰 뜻을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뜻을 알아차린 정조는 홍대용을 두고 ‘큰 인물’이라며 높게 평가했다.

군신 간의 예의를 차리면서도 때론 긴장감 넘치는 공방을 벌인 정조와 홍대용. 두 사람의 토론이 의미 있는 것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조선의 위기와 혼란을 극복할 지혜를 찾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RECIMMENDATION

「불의 꽃」
김별아 저 | 해냄

 
조선시대 여성의 삶을 깊이있게 들여다보는 김별아 작가의 새 역사소설. 유교적 윤리와 제도에 희생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도와 도덕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 여성의 이야기가 잔잔한 문학적 감수성을 더한다. 조선 최초 간통사건에서 목숨 걸고 사랑했던 오랜 연인의 비극적 순애보를 끌어낸 작가의 필력이 눈에 띈다.

 

「오리의 일기」
엄정희 저 | 서로가꿈

 
슬픔을 극복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은 사랑이다. 그렇다고 사랑이 쉽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픔을 치료하는 과정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다. 엄정희 서울사이버대 교수가 이 시대의 부부들에게 보내는 힐링 에세이를 펴냈다. 어린 자녀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과 48년 동안 부부가 행복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랑의 기술을 조목조목 담았다.

 

「침몰하는 자본주의-회생의 길은 있는가」
황병태 저 | ILB

 
불황의 터널이 길다. 나라의 곳간이 텅텅 비면서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가 빠르게 침몰하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현주소인 셈이다. 저자는 인문사회적 경제학을 복원하고 전통적인 산업자본주의를 되살려야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에서도 위기극복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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