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자사주 매입은 Show

▲ 석유화학업계 CEO들의 자사주 매입이 별 효과를 못 내고 있다. 업황도 내실도 좋지 않아서다.
CEO들은 주가가 떨어졌을 때 자사주를 매입한다. 투자자에게 ‘CEO가 떨어질 게 뻔한 자사주를 사겠는가’라는 기대감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이제 냉정하다. CEO가 자사주를 매입했다고 꿈틀대지 않는다. 중요한 건 펀더멘털이다.

올해 석유화학업계 CEO들의 ‘자사주 매입러시’가 눈길을 끈다. 방한홍 한화케미칼 사장은 3월 자사주 1000주를 매입했고, 박진수 LG화학 사장은 4월 자사주 410주를 사들였다.

일반 투자자가 주식을 사고파는 일은 자연스럽다. CEO는 좀 다르다. CEO가 자사주를 사면 호재다. CEO가 떨어질 게 뻔히 보이는 자사주를 살 리 없으니 투자자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CEO들은 분위기 반전을 목적으로 자사주 매입카드를 꺼낸다. 주가가 바닥이라는 걸 동네방네 소문내는 거다.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CEO들은 자사주 매입 전 기자간담회, 실적발표회 등을 통해 군불을 지피는 경우가 많다.

박진수 사장은 자사주를 매입하기 두달 전인 올해 2월 4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백척간두갱진일보百尺竿頭更進一步(백척의 장대 끝에서 한 발 더 나아가다)의 각오로 고객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나은 실적을 내겠다”며 “올해 전년 대비 6.9% 오른 24조86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 밝혔다. 그는 중국 수요회복으로 업황의 개선을 기대했다. 그는 직접 나서 포부를 밝힌 후 자사주까지 매입했다. 하지만 주가는 오르지 않았다. 박 사장이 주당 24만4000원에 자사주를 매입한지 8일 후인 4월 16일 주가는 23만9500원으로 떨어졌다. 자사주 매입이 별 영향을 못 끼쳤단 거다.

 
한화케미칼도 마찬가지다. 방한홍 한화케미칼 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역풍장범逆風張帆(어려움이 있어도 예정대로 밀고 나간다)’이라는 전략을 펼쳤다. 지난해 11월 한화나노텍을 합병해 탄소나노튜브 사업을 더욱 강화했다. 지난해 8월엔 독일의 태양광업체 큐셀을 인수했다.

방 사장은 올 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태양광 산업의 업황이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며 “석유화학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3월엔 자사주를 매입했다. 하지만 역시 별 효과가 없었다. 자사주를 매입한 3월 12일 2만250원이던 한화케미칼 주가는 잠잠하다가 3월 28일부터 큰 폭으로 떨어졌다.

CEO의 자사주 매입이 효과를 못 보는 이유는 업황과 실적이 받쳐주지 않아서다. 박재철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럽의 디레버리징(부채정리)와 중국의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이라는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업황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LG화학의 주가는 1분기 실적발표 후에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한화케리칼 역시 ‘1분기 실적이 흑자전환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꿈틀대고 있다. CEO의 자사주 매입이라는 ‘쇼’ 보다는 기업의 실적이나 업황에 따라 주가가 움직인다는 걸 잘 보여준다. 황규원 동양증권 연구원은 “시장은 바보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며 “주가 회복의 단초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CEO의 자사주 매입은 의미 없는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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