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여는 窓

▲ 현장실습 제도는 근본적으로 교육적 시각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노동과 인권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취업률에 발목이 잡힌 학교는 학생을 기업으로 내쫓다시피 한다. 기업은 제대로 된 실무교육은커녕 저임금 노동자 다루듯 학생을 취급한다. 정부ㆍ학교ㆍ기업이 외면한 현실 속에서 학생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12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김민재 학생이 쓰러졌다. 병명은 뇌출혈. 하루 10시간ㆍ주당 52시간 넘는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다 뇌출혈이 터진 것이다. 김민재 학생은 지금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학생이 근무하는 곳의 환경은 열악했다. 자동차에 페인트를 분사하는 도장실은 온갖 유기용제 가스로 가득했다. 업무도 고단했다.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하게 실습생도 주ㆍ야로 맞교대 근무를 서야 했다. 잔업ㆍ특별근무에도 투입됐다. 고교생이 일주일간 58~70시간 근무를 한 셈이다. 가혹한 일이었다.

여론이 들불같이 들고 일어났다. 교육부가 서둘러 움직였다. 지난해 4월 김민재 학생과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대책’이 발표됐다. 대책은 간단명료했다. 교육부는 현장실습에 투입된 학생을 대상으로 주당 40시간 초과하지 못 하도록 제한했다. 휴일ㆍ연장실습도 금지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개선됐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사고는 여전하다. 지난해 12월 울산신항만 공사현장에서 작업선 전복사고로 홍성대 학생이 사망했다. 4명의 학생은 부상을 당했다. 휴일ㆍ연장실습 등도 사라지지 않았다. 필자가 올 2월 현장실습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50.4%의 학생들이 주당 40시간 초과실습을 하고 있었다. 휴일실습을 한 학생도 53.3%이나 됐다. 교육부의 개선대책이 현장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현장실습 제도의 목적은 분명하다. 특성화고교생에 대한 현장 적응력을 키우고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는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목적을 상실한 현장실습은 특성화고 학생들의 실무능력을 신장하지 못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학교의 보호와 기업 내 노조의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탓에 실습 나온 학생들은 ‘근무기간이 안정적인 저임금 단순노동자’ 취급을 받고 있다. 개탄할 일이다.

현장실습 문제는 노동과 인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교육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교육부는 현장실습에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현장실습을 특성화고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다.

실제로 교육부는 2013년 특성화고 졸업생의 취업률 목표를 60%로 설정했다. 박근혜 정부가 고졸 취업중심 교육체제 강화 기조를 따른 것이다. 문제는 현장실습확대를 취업률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일선 학교에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전공ㆍ의사를 묻지 않고 학생을 기업에 보냈다.

필자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3.7%의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과 현장실습의 업무가 불일치했다’고 답했다. 기업으로 내몰린 학생들의 현장실습은 처참했다. 서울의 A택시회사에 실습을 나간 B학생은 하루 9시간을 차량정비소에서 청소를 했고, 한달 중 일주일은 밤 10시까지 근무했다. 수준 있는 정비기술은 고사하고 전구와 윤활유를 갈면서 커피 심부름과 청소로 반년 가까이를 보냈다.

종합하건대 취업률에 발목이 잡힌 학교는 학생을 기업으로 내쫓다시피 한다. 기업은 제대로 된 실무교육은커녕 저임금노동자 다루듯 학생을 취급한다. 정부ㆍ학교ㆍ기업이 외면한 현실 속에서 학생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실습이 실시된 지 50년이 흘렀다. 초라한 50년이다. 현장실습은 명패만 남은 채 목적도, 의미도 사라진지 오래다. 현장실습제도는 교육적 시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과 인권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그 출발은 현장실습의 근거 법률인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이다. 지금이라도 제2의 김민재ㆍ홍성대 학생이 나오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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