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난관

LG전자 MC사업본부가 2012년 3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최고급 사양을 갖춘 스마트폰 ‘옵티머스G’의 선전 덕분이다. 하지만 LG전자가 극복할 과제는 아직 많다.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신뢰를 극복하는 게 우선과제다. LG전자의 문제는 이제 기술력이 아닐지 모른다. 독한 소비자를 홀리는 게 관건이다.

▲ LG전자가 옵티머스G를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신뢰도를 얻는 문제는 아직 풀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날아왔다. LG전자가 구글의 세번째 레퍼런스(기준)폰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구글 레퍼런스 제품은 HTC 넥서스원, 삼성전자 넥서스Sㆍ갤럭시 넥서스, 아수스 넥서스7 태블릿 등이다. 레퍼런스폰에는 ‘넥서스(Nexu s)’란 이름이 붙는다.

레퍼런스폰은 구글의 새로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버전을 최초로 탑재해 다른 태블릿PC나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의 기준으로 삼는다. 실제로 LG전자와 구글이 만든 넥서스4 OS는 레퍼런스폰답게 안드로이드 4.2가 최초로 탑재됐다. 특징은 또 있다. 이동통신사가 OS 일부분을 바꾸거나 앱을 추가할 수 없다.

 
옵티머스G로 CM사업본부 부활

LG전자는 그동안 넥서스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구글의 조건이 워낙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랬던 LG전자가 레퍼런스폰을 개발한 건 스마트폰 기술력뿐만 아니라 신뢰성까지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넥서스4 개발로 LG전자는 스마트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한 상황에서 LG전자가 돌풍을 일으킬 만한 동력을 확보해서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맥을 추지 못하던 LG전자로선 괄목할 만한 성과다.

사실 LG전자는 ‘피처폰 왕국’으로 불렸다. LG전자 휴대전화 브랜드 싸이언(CYON)은 삼성전자 애니콜(Anycall)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잘나갔다. 특히 초콜릿폰(2005)과 프라다폰(2006)으로 대표되는 블랙라벨 시리즈는 LG전자 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끌어올렸다. LG전자 휴대전화를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로 각인시킨 것이다. 2009년 배우 김태희가 선전한 쿠키폰, 아이돌 가수그룹 빅뱅이 모델로 나선 롤리팝폰은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LG전자의 활약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7년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이 휴대전화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LG전자는 스마트폰 개발을 서두르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재빨리 ‘옴니아’라는 초보적인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캐치업을 꾀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스마트폰의 부재는 LG전자 MC사업부를 벼랑에 몰았다. MC사업부의 실적은 2010년 708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9년 1조334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MC사업부는 충격에 빠졌다. 2010년 5월 부랴부랴 스마트폰 옵티머스 시리즈를 론칭했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2011년 8월 출시된 옵티머스 ‘솔’은 누리꾼 사이에서 “담배 브랜드 같다”는 핀잔까지 들었다. LG전자는 절치부심했다. LG전자와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 계열사가 꼬박 1년을 투자해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출시한 옵티머스G가 그 결과물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특명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구본무폰’ ‘회장님폰’이라고 불린다.

▲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독한 경영'을 내세워 MC사업본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옵티머스가 싸이언과 같은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옵티머스G의 사양은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1300만 화소 카메라에 세련된 디자인, 퀄컴사의 스냅드래곤 S4 프로를 세계 최초로 탑재해 세계 이목을 끌었다. 그래픽 처리 속도가 이전보다 3배가량 빨라졌다.

하지만 옵티머스G의 무기는 이런 스펙이 아니었다. 지난해 8월 LG전자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옵티머스G 배터리 첨단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LG화학은 배터리에 고전압ㆍ고밀도 기술을 적용해 스마트폰 배터리 전력량을 5~6% 끌어올렸다. 옵티머스G 배터리가 기존보다 얇고 가볍게 제작됐지만 용량과 사용시간이 증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옵티머스G에 탑재된 True HD IPS+ 디스플레이는 색상에 따른 소비전력 변화가 없다. 경쟁사의 아몰레드 디스플레이보다 최대 70% 전력 절감 효과가 있다.

첨단 기술력 덕분에 옵티머스G는 상도 많이 받았다. 세계 최초로 선보인 ‘커버 유리 완전 일체형 터치 기술’을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전자정보통신산업대전에서 KES 혁신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2월 독일에서 열린 ‘2013 iF디자인 어워드(2012 International Forum Design Award)’에서 제품 디자인 본상을 수상했다.

LG전자는 옵티머스G를 발판 삼아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2위로 치고 올라갔다. 지난해 4분기 국내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LG전자가 16%로 팬택(11%)보다 5%포인트가량 높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옵티머스G로 4분기에만 100만대 이상 팔아치운 덕분이다. 이전까지 LG전자는 팬택보다 시장점유율이 낮았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선전했다.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 북미ㆍ서유럽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각각 5.6%, 4.9%로 중국기업을 제쳤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4.9%로 3위다.

변방에 밀려 있던 LG전자가 스마트폰의 부활에 성공한 건 옵티머스G를 중심으로 스마트폰의 사업구조를 재편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이끌었다. 구본준 부회장은 2010년 10월 LG상사에서 LG전자로 자리를 옮기면서 곧바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스마트폰 사업부ㆍ피처폰 사업부 등 기존 사업부 체제를 없앤 것이다. 대신 제품개발 담당과 해외 특화폰을 개발하는 해외연구개발(R&D) 담당을 신설했다.

그런 그를 뒤에서 응원해준 이가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다. 그는 지난해 초부터 구본준 부회장의 ‘독한 경영’에 힘을 실어줬다. 구본무 회장은 올 초 공식석상에서 “독하게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을 만들어라”며 “계열사의 특출난 역량을 결집해 최고의 신상품을 내놔라”고 임원진을 다그쳤다. ‘독한 경영’을 통해 옵티머스는 다행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LG전자가 가야 할 길은 멀다. 옵티머스만 놓고 보면 과거 싸이언의 명성을 이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제품과는 별개로 브랜드 신뢰도는 LG전자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는 구본준 부회장이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다.

실제로 스마트폰 판매시장에선 옵티머스에 대한 평가가 시원치 않았다. 용산전자상가 매장 5곳에선 일제히 “옵티머스G보다 베가 아이언이 낫다”고 권했다. A매장 판매자는 “옵티머스G와 옵티머스 LTE2가 꽤 팔린 것은 맞지만 일부 언론이 말하는 갤럭시를 능가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싸이언 시절 브랜드 신뢰도 되찾아야

매장에서 소비자가 옵티머스를 구입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신뢰할 수 없어서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대리점주도 있었다. “사양이 비슷한 갤럭시와 옵티머스를 권하면 오류가 나는 건 똑같은데 소비자의 반응이 크게 다르다. 갤럭시가 고장 나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옵티머스가 고장 나면 ‘LG전자가 만들어서 이렇다’고 생각한다. 한번 굳어진 이미지는 어쩔 수 없다.”

LG전자의 가장 큰 과제는 싸이언 시절의 브랜드 신뢰성을 되찾는 것이다.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거다. 그렇다면 지금 급한 건 기술력이 아니다. LG전자에게 정작 필요한 건 다른 통신사의 슬로건인 ‘사람을 향합니다’ 일지 모른다. 구본준 부회장이 강조하는 ‘화질 LG’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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