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박인비의 메이저 타이틀 연속 우승으로 한국선수가 올해 세계여자프로골프 메이저 타이틀을 독식할 가능성이 커졌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한국선수들이 미국 문화에 적응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0일 끝난 미국 LPGA 메이저 타이틀 웨그먼스 챔피언십에서 박인비가 우승했다. 4월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이은 올 두 번째 메이저 타이틀까지 독식했다. 언론에선 박인비가 올해 5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전부 거머쥐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도 있다고 한다. 6월 현재 LPGA 상금랭킹 톱 10안에 박인비 외에 신지애•김인경•유소연•최나연 등 한국선수만 5명이 몰려 있다. 모두가 언제든 우승할 실력을 갖추고 있어 박인비 외에 누구나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가능성도 있다. 상황이 이 정도면 미국 LPGA는 한국이 점령했다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골프는 미식축구•야구•농구•아이스하키와 함께 미국 5대 메이저 스포츠 가운데 하나다. 선수의 90% 이상이 미국인이며 상위랭킹 90% 이상 역시 미국인이다. 미국 이외의 선수라도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거나 미국내에 거주지가 있어 사실상 미국생활을 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여자골프만 예외다.

▲ ‘세리 키즈’가 미국 LPGA를 점령하고 있다.
최상위 50%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온 선수들이다. 한시적인 취업비자를 받아 미국에 일정한 거주지도 없다. 미국 스포츠 사상 전무후무한 사례다. 놀라운 점은 미국언론이 한국선수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선수의 스타부재를 개탄하는 보도는 더러 있지만 한국 선수, 나아가 한국을 싸잡아 비판하는 보도는 없다. 칭찬 일색이다. 한국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놀라운 변화다. 10년 전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미국에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속어는 ‘gook’이다. 무작정 미국으로 날아간 옛 한국인들은 “어디서 왔나?”라는 질문에 “한국”이라고 대답했다. ‘국’이란 발음을 미국인들은 할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He’s a gook”하면 “우리나라(미국) 말을 전혀 못알아 듣는 한국인”이란 뜻이다. 10년전 만해도 제2의 박세리를 꿈꾸며 미국무대에 나선 상당수의 한국 골프선수들은 이 말을 들어야 했다.

문화적 충돌 없는 ‘세리 키즈’

그들은 골프실력 하나만 달랑 들고 언어는 물론 미국 문화에 대한 적응도 현지에서 시작했다. 메이저 스포츠무대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골프 이외의 자질이 여러면에서 부족했다. 한국선수들이 성적을 내자 스폰서가 줄어들고 TV 중계가 축소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사실 박세리가 1998년 6월부터 불과 두달 새에 4개 대회 우승을 휩쓸었을 때도 미국 언론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작게 취급했었다.

대회 때 자주 검은색 티셔츠를 입었는데 강하다는 이미지를 겨냥한 의상이었으나 현지 언론은 마녀란 이미지의 ‘black woman’으로 표현했다. 지금 활약 중인 한국선수들은 ‘세리 키즈’ 즉, 2세대들이다.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세대다. 자질을 갖추고 미국으로 날아간 세대다. 현지 방송은 물론 와이드 인터뷰도 거침없다. 미국문화와의 충돌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자연스럽다.

스포츠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결정적으로 바뀐 것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땄을 때부터일 것이다. 당시 김연아의 연기를 중계한 NBC TV의 순간 시청률은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또 해설자는 격앙된 목소리로 “오, 신이시여! 눈부시게 아름답다! 여왕폐하 만세!(long live the Qeen!)”를 외쳤었다. 이보다 더한 찬사는 없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다. 말이 글로벌이지 현실은 초강대국 미국 문화와의 융합이다. 우리 선수들은 미국 메이저 스포츠 무대에 서기 위한 필수 자질인 그들과의 문화융합에 훌륭히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만약 한국 프로야구나 축구에서 미국•일본•브라질 등 수입선수들이 베스트 멤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면?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글로벌마인드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직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박차고 미국 메이저 스포츠 무대를 장악한 우리선수이기에 그 노력이 더욱 가상하다.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