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창업가 4人이 말하는 창업

▲ 홍난영 대표와 배성민 대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창업을 했다. 하지만 이상준 대표와 최성호 대표처럼 현실을 고려해 창업한 청년들도 많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홍난영·배성민·최성호·이상준 대표.(사진=지정훈 기자)
청년창업이 ‘붐’이다. 인생을 담보로 꿈을 펼치는 청년이 늘고 있다. 정부도 이 ‘붐’에 동승하고 있다. 청년실업을 해소하는데 이만한 대책이 없어서다. 물론 정부의 지원을 받고 꿈을 펼친 이들도 많다. 그러나 정부지원의 영역 밖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청년창업가도 적지 않다. 청년창업가 4인에게 창업의 현실을 물었다.

청년창업가를 육성하는 경기도 안산시의 청년창업사관학교 연수원에 가면 벤처 성공의 화려함과 실패의 쓴맛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본관 로비의 한쪽 벽에는 성공한 벤처창업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지만, 2층 복도에는 “자살하고 싶었다”는 무서운 문구가 가득한 실패 경험담이 줄줄이 붙어 있어서다. 창업의 성공은 쓰디쓴 실패에서 시작된다는 걸 잘 보여준다.

씁쓸한 에스프레소가 없으면 캐러멜 마키아토도 설탕물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다. 인천의 한 카페에서 4명의 청년들과 창업에 대한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눈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상준(35) 꿀삐닭강정 대표와 홍난영(37) 먹는언니컴퍼니 대표는 창업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꿀삐닭강정은 외식업 프랜차이즈, 먹는언니컴퍼니는 온라인 PR을 하는 1인 기업이다.

최성호(30) 웃어밥 대표는 창업 1년차다. 배성민(35) Alaseo(아라서) 대표는 창업을 준비 중이다. 웃어밥은 주먹밥 외식업, 아라서는 강연사업이 주종이다. 쉽지 않은 길에 들어선 그들에게 창업이란 어떤 의미일까. 홍난영 대표와 배성민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 홍난영 대표(이하 홍난영) :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1인 기업가가 됐다. 처음 창업을 한 건 2002년이다. 글을 쓰고 싶어서 ‘배설주의보’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기존 문학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나온 B급 잡지였다. 하지만 창업에 대한 기본지식이나 자본이 턱없이 부족해 오래가지 못했다. 웹서비스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홈피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홈페이지 제작붐이 가라앉고 업체들이 대형화되면서 접었다. 자본금이 떨어지면 잡지사에 취직을 했다. 창업과 직장생활을 반복하다 2010년 온라인PR을 아이템으로 삼아 청년창업프로젝트에 지원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벌써 네번째 창업이다. 실패가 많았지만 큰 자본금 없이 공짜로 창업할 수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공짜로 창업하기」라는 책도 펴냈다.”

 
✚ 배성민 대표(이하 배성민) : “강연사업을 구상했는데, 먼저 시장에 진입한 업체가 있어 창업을 늦추고 있다. 값싸고 유용한 강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 중이다. 현재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시범적으로 우쿨렐레 강연을 하고 있다.”

둘은 꿈을 맘껏 펼치기 위해 창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택한 청년도 많다. 이상준 대표와 최성호 대표가 그랬다.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가

✚ 이상준 대표(이하 이상준) : “원래는 미술을 하고 싶었다. 대학에서도 미술을 전공했다. 하지만 비싼 학비를 내고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을 해봐야 비전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3학년 때 그만뒀다. 2002년부터 16.5㎡(약 5평)짜리 매장을 마련해 초밥과 우동을 팔았다. 가맹점을 내고 싶다는 이들을 만나면서 5년만에 280여개의 가맹점을 거느린 프랜차이즈로 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지분 문제로 다툼이 생겨 사업을 접었다. 2년가량의 일본생활, 귀국 후 2~3년의 직장생활 끝에 2010년 다시 외식업에 도전했다.”

✚ 최성호 대표(이하 최성호) : “기자가 되고 싶어 신문방송학과에 다녔다. 하지만 학교에선 실무에 필요 없는 지식만 가르쳤다. 유명 잡지사에서 일하는 선배를 따라 일을 해보기도 했지만 겉만 화려할 뿐 미래는 캄캄해 보였다. 2010년에 신세계그룹에서 추진한 유통프런티어 공모전에 응시하기도 했지만 떨어졌다. 지난해 초 뒤늦게 학교를 졸업하고 창업을 결심한 친구 두명과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외식업계에 뛰어들었다.”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이상준•최성호 대표가 꿈을 접고 외식업을 창업한 건 단적인 예다. 2010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음식점•주점업의 신규창업률은 21.1%로 오락 관련 서비스업(23.1%) 다음으로 높았다. 영업이익률은 23%로 개인 서비스업(28.8%)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직장보다 안정적인 창업을 택하고 싶었단 거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을 접고 ‘되는 종목’을 택했지만 목표까지 바뀐 건 아니다.

 
✚ 최성호 :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건 맞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회사에 인생을 바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돈만 벌 목적에서 창업을 택한 건 아니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지금의 사업을 향후 3년 내 1000억원 이상의 브랜드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 이상준 :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못하니까 경제적으로 가능성 있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망할까. 아닐 거다. 창업자는 다른 직장인보다 안정적일 수 없다. 망하면 그걸로 끝이고, 보상받을 길도 없다. 그러니 올인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 힘을 쏟으면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 배성민 : “동의는 하지만 1년 전에도 몇 개월 전에도 계속 머릿속에 그것만 맴돈다면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수 있겠나. 물론 지금 하려고 하는 게 내 적성에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홍난영 : “하고 싶은 게 자신이 잘 하는 거라면 몰라도 잘 못한다면 그건 사업이 아니라 취미다. 많은 이들이 원하는 걸 했다가 실패한다. 그것보다는 자신이 잘 하는 게 뭔지 발견하는 게 우선인 것 같다. 더구나 하고 싶은 것과 팔 수 있는 상품은 다르더라. 하고 싶은 것을 상품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신불자보다 처지 안 좋은 1인 기업가

정부는 청년에게 “창업으로 꿈을 펼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청년에게 창업은 ‘꿈을 펼치는 수단’이 아니라 ‘현실에 맞춰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 현실에서 꿈을 재설계해야 하는 게 창업자들의 숙명이다.

자신의 꿈을 현실에 맞추는 과정에서 겪은 실패는 얼마나 썼을까. 4명 중 가장 크게 사업을 벌였다가 주저앉은 경험이 있는 이상준 대표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 이상준 : “프랜차이즈에 처음 도전했을 때 자금난으로 크게 고생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쉽지 않더라. 사채를 쓸까 생각한 적도 있다. 청년창업가들이 겪는 돈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 홍나영 : “1인 기업에 은행 돈은 그림의 떡이다. 신용불량자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자금줄이 막히면 사업을 곧바로 접고, 취직을 해서 다시 자금을 마련했다. 은행 돈도 있는 사람들이 빌리는 거지, 우리 같은 1인 기업가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자금뿐만이 아니다. 1인 창조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프로그램은 있지만 콘텐트 지원이 많지 않다. 정부는 짧은 기간에 성과를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과 투자가 필요한 사업에는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는다. 청년창업프로젝트는 청년창업자를 위한 ‘종합선물세트’지만 실제로 유용한 게 별로 없다는 거다.”

✚ 최성호 : “빚지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대출은 알아보지도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 각자 끌어들일 수 있는 돈을 끌어 모아 공동으로 창업한 건 다행이다. 뉴스나 신문에서 사업자금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있어도 조심스럽다.”

✚ 이상준 : “사업을 보고 투자를 하겠다는 데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업이 망할 거라는 전제를 하지 않는다면 투자를 받아 더 좋은 기업을 만들 수도 있는 거다.”

✚ 배성민 : “누군가 투자를 원하면 뿌리칠 생각은 없다. 오히려 투자할 사람들이 없어서 고민이다. 서울시가 지원하는 청년창업프로젝트도 알아봤다. 하지만 청년창업프로젝트는 커리큘럼에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이라서 포기했다. 사업아이템 별로 비용을 지원하는 대책이 필요한 듯하다.”

✚ 이상준 : “개별 창업아이템에 맞는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정부는 IT만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수많은 청년창업프로젝트가 있지만 외식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외식 분야로 진출하는 창업자들은 매우 많다. 그중 10~20%가 성공한다. 외식업은 많은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외식업 전문가들의 컨설팅만 제공해줘도 성공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대지를 활용하거나 점포를 싼값에 혹은 무료로 임대해줘도 인큐베이팅이 되는 게 외식업이다. 지원금도 100% 회수할 수 있다.”

현실적인 창업 지원 필요해

✚ 최성호 : “청년창업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별 도움이 안 되더라. 외식업에는 맞지 않다. 점포가 필요한데 사무실만 내주니 할 게 없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도 청년창업정책을 건의한 적 있다. 청년창업프로젝트의 경우 이율이 낮은 대출상품이 있지만 센터에 입주한 기업이어야 하고, 외식업은 안 된다더라. 컨설팅은 꼭 필요한 거 같다. 외식업을 창업하면서 조언을 해줄 분이 마땅치 않아 일일이 찾아다녔다. 오진권 놀부 대표, 김상현 국대떡볶이 대표 등 외식업계 CEO들에게 편지를 써서 만나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에게서 들은 생생한 경험담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담당자들이 “정부는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사업에 투자할 의무가 있다”며 “더구나 외식업은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창업자 10명 중 2~3명이 외식업에 뛰어들고 외식업에 뛰어든 10명 중 2~3명만이 살아남는 현실, 창업지원 프로그램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창업자가 많다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집에도 정부에도 손 벌리지 않고 묵묵히 창업에 몰두해온 그들은 어떤 기업을 만들고 싶을까. 바라는 기업의 상像을 물어봤다.

▲ 청년창업이 붐을 이루고 있지만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청년창업가들의 불만은 많다.(사진=뉴시스)
✚ 최성호 :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바쁠 때나 한가할 때나 왜 시급이 같을까. 바쁠 때는 시급이 더 많아야 되지 않나. 매출이 더 많을 때도 시급이 달라져야 하지 않나. 그런 상식적인 생각들이 통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 이익을 안겨준 고객들에게는 충분한 사회 환원을 하고, 직원에게는 땀 흘린 만큼 월급을 주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

✚ 이상준 : “요즘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가맹점과의 갑을甲乙계약으로 시끄럽다. 사람들 인식이 좋지 않다. 프랜차이즈가 다 나쁜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 홍난영 : “1인 창조기업이라서 일반적인 청년창업가들이 꿈꾸는 기업상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기업을 지나치게 키울 생각은 없다. 기업이 성장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 배성민 : “이미 시장에 선두를 달리는 기업이 있다고 주눅들 생각은 없다. 선두기업에서 하지 못하는 분야를 찾아서 더 많은 사람에게 싸고 질 좋은 강연을 제공하는 기업을 만들 거다.”

애초에 청년창업이 늘어나야 한다고 했던 건 정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한 라디오 연설을 통해 “청년실업 문제는 청년들이 벤처를 창업하거나 중소기업과 해외 일자리에 더 많이 도전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박 대통령은 6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앞으로 청년사업가들이 벤처기업을 일으켜 성공신화를 만들어가기를 항상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청년창업을 앞으로도 지원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창업은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창업지원대책 역시 이상을 좇을 게 아니라 현실에 맞춰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많은 청년이 어쩔 수 없이 꿈을 접고 외식업에 도전한다. 그런데 정부는 ‘외식업은 너무 많다’며 창업을 지원해주지 않는다. 대체 어쩌란 말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도와주진 못해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게’는 만들어줘야 하지 않는가. IT제품을 만들든 햄버거를 팔든 창업가는 창업가다. 인생을 담보로 꿈을 쫓는 것 역시 같다. 창업시장엔 정부가 생각하는 ‘격格’이 필요하지 않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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