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경영의 정석 ‘삼천리그룹’

▲ 2대에 걸친 동업경영으로 승승장구하는 기업이 있다. 삼천리그룹이다. 사진은 이장균(왼쪽), 유성연 삼천리 명예회장의 모습.
돈 앞에 장사는 없다. 피를 나눈 형제도 ‘이익’을 시아에 두고 다투게 마련이다. 그래서 함께 돈을 버는 것, 이를테면 ‘동업同業’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남남으로 만나 2대代째 동업관계를 유지하면서 승승장구하는 기업이 있다. 에너지 중견기업 ‘삼천리’다.

동업同業. 무언가 시작할 땐 더할나위 없이 좋다.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을 수 있으니, 생계형 창업에도 제격이다. 그러나 동업은 ‘잘나갈 때’ 깨지기 쉽다. 돈 때문이다.

한 동업자에게 무게중심이 쏠릴 경우에도 위험하다. 특히 그것이 ‘경영세습’과 관련돼 있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물보다 진한 피를 나눈 형제들도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데 동업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모범적인 분가사례로 손꼽히는 LG와 GS도 지난해 하이엔텍(옛 대우엔텍) 인수전에 함께 뛰어들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2대째 이어지는 동업경영

그렇다고 ‘동업관계’를 유지하면서 승승장구하는 기업이 없는 건 아니다. 여기 50년 이상의 ‘동업경영’을 통해 천리를 앞서가는 기업이 있다. 삼천리다. 이 회사는 2대代에 걸쳐 ‘한지붕 두가족 체제’를 유지하는 알짜 에너지 중견기업이다. 이제는 대기업 자리도 노린다. 삼천리의 지난해 자산 총액은 4조7000여억원. 내년이면 자산규모 5조원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 집단(5조원 이상)에 삼천리가 포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천리의 전신은 1955년 설립된 ‘삼천리연탄기업사’다. 함경남도 출신의 유성연(1999년 작고)·이장균(1997년 작고) 삼천리 명예회장이 함께 만들었다. 해방 직후 소련군을 상대로 소고기 통조림 장사를 하던 두 사람은 1955년 의기투합해 삼천리연탄기업사를 차렸다.

둘은 연탄가루를 기계틀에 넣어서 만든 석탄을 수레로 직접 배달하면서 회사를 키웠다. 1962년엔 삼척탄좌개발(현 삼탄)을 세워 석탄채굴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80년대에는 도시가스 사업에도 진출했다. 경인도시가스를 인수(1982)해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한 삼천리는 현재 국내 1위 도시가스 공급업체다.
 

 

1990년대 두 명예회장이 타계한 이후 삼천리그룹은 2대 동업경영 체제를 시작했다. 이장균 선대 회장의 차남인 이만득 회장이 도시가스 사업을 주축으로 한 삼천리 계열을, 유성연 회장의 외아들 유상덕 회장이 탄광산업 중심의 삼탄 계열을 맡고 있다. 한지붕 두가족 체제인 셈이다.

이만득 회장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삼천리 계열은 도시가스를 중심으로 집단에너지, 자원개발, 신·재생에너지사업 등에 진출해 있다. 유상덕 회장이 맡고 있는 삼탄 계열은 유연탄 채굴·판매사업을 중심으로 LPG사업, 자원개발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공통점은 삼천리, 삼탄의 뿌리가 에너지라는 것이다.
 

 

일단 삼천리 계열의 실적부터 보자. 경기도 13개시와 인천 5개구 271만 세대에 연간 39.3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삼천리는 최근 몇년 동안 발전·신재생에너지·플랜트 등 에너지 관련 신新사업에 뛰어들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특히 아파트·상가에 에너지를 대량 공급하는 집단에너지 사업에서 알찬 결실을 맺고 있다. 평택국제화지구 집단에너지사업권(2009)·광명시흥 보금자리지구 집단에너지사업권(2012)을 따냈다. 그 결과 2010년 156억원에 불과하던 집단에너지 매출은 지난해 419억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플랜트 사업의 실적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2010년 59억원에서 지난해 552억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삼천리는 현재 삼천리이엔지(배관·냉난방 공사업), 삼천리이에스(배관·냉난방장치 도매업), 삼천리와 한국지역난방공사가 함께 만든 휴세스(지역냉난방 공급), 삼천리엔바이오(상하수도처리관련 공사업), 삼천리자산운용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유상덕 회장이 맡고 있는 삼탄은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82년 국내 최초로 인도네시아 동부 칼리만탄에 있는 ‘파시르 탄광(노천 유연탄광)’ 개발에 성공한 삼탄은 연간 3400만t의 유연탄을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 9360억원, 영업이익 451억원을 올렸다. 최근에는 민자발전사업(IPP)·팜오일(CPO)·인도네시아 가스개발사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직책은 맡아도 경영간섭은 안해

이처럼 2대에 걸친 동업경영에도 별다른 문제 없이 각자의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는 비결은 뭘까. 답은 간단하다. 이익배분은 똑같이 하되, 서로의 영역에 대해선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이만득 삼천리 회장은 삼탄의 등기임원이지만 상시업무를 보지 않는 ‘비상무이사’다. 유상덕 삼탄 회장도 삼천리의 무보수 비상무이사로 등재돼 있다. 이들은 임원인사·신규사업 등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만 서로에게 동의를 구한다. 평소엔 ‘불간섭의 원칙’이 통한다.
 

 

이익 배분은 철저하다. 각각 계열사의 지분율이 소수점까지 같다. 올 3월말 기준으로 이만득 삼천리 회장의 삼천리 지분은 8.34%, 이 회장의 형인 이천득씨(1987년 타계)의 아들 이은백 상무 지분은 7.84%다. 합쳐서 16.18%다. 유씨 일가의 지분율도 같다. 유상덕 회장이 삼천리 지분은 12.30%, 유 회장의 누나인 유혜숙씨의 지분율은 3.88%로 정확하게 16.18%다. 삼탄 지분도 다르지 않다. 이 회장과 유 회장 일가 모두 각각 삼탄 지분 33.49%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두 명예회장의 유언과 무관치 않다. 두 명예회장이 살아있을 때 양쪽 아들에게 남긴 동업서약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다른 사람이 남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투자비율이 다르더라도 수익은 절반씩 나눈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 삼천리는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2대 동업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이만득 삼천리 회장(왼쪽)과 유상덕 삼탄 회장.

그렇다고 지분과 동업서약서만으로 ‘한지붕 두가족 체제’가 유지되는 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이어진 끈끈한 관계가 동업유지에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과거 유상덕 삼탄 회장은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이장균 (삼천리) 회장 댁과 우리 집안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웃에서 살았고 서로 큰집, 작은집이라 부르며 지내왔다. 이 때문에 서로 남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릴 때 우리 집안은 유劉가인데 왜 작은 아버지의 성은 이李가인지 궁금했던 적도 있었다.”

2009년 3월 ‘제36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한 이만득 회장의 수상소감은 더 큰 울림을 준다. “금탑산업훈장의 절반은 계열사인 삼탄 유상덕 회장의 몫이다.”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이라도 서로의 이익만 좇으면 관계가 깨진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 중 ‘형제의 난’을 겪지 않은 곳은 드물다. 삼천리그룹의 끈끈한 동업경영이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을 몸소 실천하고 있어서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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