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CBS The Scoop] ‘대한민국 여자골프 전설’ 구옥희가 7월 10일 일본의 골프장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향년 57세. 이제 ‘전설’은 강춘자 한 명 남았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 여자골프를 만든 그의 공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강프로. 참 오랜만입니다. 35년의 골프인생을 함께했던 구옥희를 떠나 보낸 심정은 듣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 한명의 전설이 사라졌습니다. 평소 “필드에서 평생 지내겠다”던 분이 결국 필드에서 사바세계를 마감하셨네요. 윤회를 믿는 독실한 불교신자여서 구옥희는 극락에서도 골프와 함께 하실 겁니다. 이제 혼자 남으셨군요. 1978년 대한민국에 여자프로란 게 생겨 프로테스트를 실시했을 때 “기준타수 합격!”이란 선언을 가장 처음 들었던 강 프로지요. 2위로 구옥희가 합격선언을 받았고, 한명현 안종현 4명이 프로 1•2•3•4호로 대한민국 여자프로골프가 시작됐습니다. 81년 안종현이 먼저 백혈병으로 떠났지요.

대한민국 여자골프의 시작

프로라지만 돈이 됐습니까? 주최측이 용돈 몇푼 쥐어주다가 공식적인 첫 상금이 1982년 오란씨오픈 여자부였는데, 그때 총상금 50만원에 우승한 구옥희가 25만원이었지 않습니까. 당시 일반인들의 골프 레슨비가 월 20만원이었습니다.

서울근교에서 대회가 열리면 돈이 아까워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 넷이 모여 택시를 탔지요. 경기장에서도 밥 두그릇 시켜놓고 넷이서 나눠먹던 그런 추억을 함께 간직한 사이였습니다. 이게 불과 30년 전 얘기입니다.

▲ KLPGA를 창립한 ‘여장부 3총사’ 중 강추자만이 남았다.
몸 하나만은 강철이라고 자신한 당신들은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1983년 한명현이 일본 프로테스트에 합격하자 구옥희가 날아갔고, 결국 구옥희는 미국까지 날아가 88년 스탠더드 레지스터 터콰이즈 클래식에서 우승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용기를 얻어 그해 KPGA 사무실 한구석에 여자프로부로 연명하던 곁살림에서 뛰쳐나와 ‘한국여자프로골퍼협회(KLPGA)’를 창립했습니다. 창립을 선언하는 자리에 저도 있었지요. 그때 제 눈에 비친 강 프로, 구옥희 한명현 3명은 ‘여장부 3총사’ 였습니다.

제가 당신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 것은 1998년말이었습니다. 박세리가 세계여자골프계를 놀라게 한 그해입니다. 저는 강남의 어느 카페에서 한명현과 춤을 췄고, 강 프로는 노래를 불러 주셨는데 어떤 곡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브루스 곡이었을 겁니다.

“이제 우리 세대는 지났어요. 하지만 진짜 할 일이 생겼습니다. 도와주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여장부 한명현이 제 귓속에 대고 한 말이었습니다. 이미 그때 당신들은 대한민국 여자골프의 전설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세리 신드롬을 KLPGA 중흥의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 당신들의 명예와 자존심을 기꺼이 내던져 버리고 세일즈맨이 되어 밤낮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사실 지금 얘기지만 언론이나 TV 방송이 되레 고마워했습니다.

1998년 시즌 국내 여자대회는 7개였고, 총상금 7억8000만원이었습니다. 딱 2년 뒤 15개 대회 총상금 27억원. 놀랍게도 여자가 남자를 앞질렀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삼성의 ‘세리 프로젝트’는 국내 스포츠 마케팅 사상 최고로 성공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지만 오늘의 여자골프를 있게 한 공로는 전부 당신들이 차지해야합니다.

KLPGA 중흥 이끌어

지난해 2월 한명현을 보냈을 때 멀리서 뵌 강 프로의 모습에서 세월무상을 느꼈습니다. 해맑은 아름다운 미소가 매력인 영원한 처녀의 이미지에서 이제는 백발이 그윽한, 인자한 어머니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때 3총사 중 한명이 빠진 충격으로 구옥희 KLPGA 회장이 회장직을 버렸고, 아직도 그 후유증으로 허전하던 차에 강 프로는 마지막 파트너마저 잃어 버렸네요.

 
2013년 국내 시즌 27개 대회 총상금 175억원, 미국 LPGA 투어 한국선수 100승 돌파, 올 US여자오픈 한국선수 1•2•3위, 박인비의 세계여자골프 그랜드슬램 달성 유력 등 더이상 올라갈 데가 없을 정도가 돼 버린 대한민국 여자골프에 한 명 남은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골프계는 대한민국 여자프로 1호가 생존한다는 사실과 함께 ‘여장부 3총사’를 존경하고 잊지 않으리라 봅니다. 이제는 과거가 돼 버린 ‘전설’ 구옥희 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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