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의 현주소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은 한때 ‘특별한 날’에만 가는 ‘특별한 곳’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1990년대 한국시장에 진출한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 가운데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드물다. 그나마 살아 있는 곳은 ‘저가카드’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 런치세트 가격이 시쳇말로 백반값이 됐다. 베니건스 런치세트는 8800원부터 시작한다.
#서울 을지로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성훈(32)씨. 그는 최근 점심시간이면 패밀리레스토랑을 종종 찾는다.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자주 가는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아웃백)에서 왈할라 파스타 런치세트를 주문하면 식전빵, 오늘의 수프, 메인메뉴(파스타), 과일, 후식(커피)까지 모두 합쳐 1만800원밖에 하지 않는다. 그것도 부가세 포함 가격이다. 현장에서 30%가 할인되는 체크카드를 사용하면 7560원만 내면 된다. 최씨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식당 백반도 6000~7000원 합니다. 요즘 패밀리레스토랑 런치세트는 백반 가격밖에 안 합니다. 이러다가 망할까봐 걱정될 정도입니다.”

# 코엑스에 방문한 김영현(38)씨는 최근 패밀리레스토랑 마르쉐 코엑스점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지점이라도 갈까 해서 웹사이트에 접속했더니 ‘6월 1일부로 영업을 종료했다’는 문구만 덩그러니 떴다.

1990년대 초 붐을 일으킨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스위스 메벤픽 그룹의 프랜차이즈인 ‘마르쉐’는 한국 진출 17년 만에 사업을 종료했다. ‘유럽 재래시장’을 재연한 콘셉트가 인기를 끌면서 매장이 12개까지 늘어났지만 올 4월 부산점, 5월 코엑스점을 각각 폐점하고 6월에 영업을 종료했다.

1995년 서울 압구정에 둥지를 튼 미국 패밀리레스토랑 토니로마스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현재 여의도점·광화문점·도곡점 3개 매장만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붐이었던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이 사실상 정리수순을 밟고 있다. 토니로마스의 운영사 썬앳푸드도 남아 있는 매장을 철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은 대부분 소셜커머스에 40~50%의 파격적인 할인가를 내세우고 1만원 안팎의 런치세트를 팔며 연명하고 있다. 미국 패밀리레스토랑인 TGI프라이데이스는 최근 런치세트를 9900원에 내놨다.

 
베니건스의 런치세트는 심지어 8800원부터 시작한다. 통신사의 20% 할인율을 적용하면 7040원이다. 특별한 날에만 찾던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의 위용은 온데간데 없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이 브랜드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브랜드에만 기댄 채 국내 소비자의 욕구를 살피지 않은 게 부메랑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1990년대 국내에 상륙한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의 메뉴는 론칭 초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웃백의 인기 메뉴는 여전히 오픈 초기와 마찬가지로 ‘투움바 파스타’ ‘컨트리 치킨 샐러드’ 등이다. 반면 국내 토종 레스토랑인 빕스(CJ푸드빌) 등은 시즌별 신메뉴를 내놓고 확실한 콘셉트로 소비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패밀리레스토랑 애슐리도 3개월마다 신메뉴를 내놓는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 니즈를 따라잡지 못하면 한국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의 몰락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시장은 브랜드로 버틸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story6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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