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좌우하는 ‘아시아 변수’

▲ 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문제로 국제 원유가격이 출렁이고 있다. 하반기 국제 원유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의 확인이 필요하다.

국제 원유가격은 올해도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하반기 국제유가의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는 요인은 다양하다. 이집트 정정불안 등 지정학적 변수에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변수가 많다. 하반기 국제유가의 흐름과 변수를 분석해 봤다.

국제 원유가격은 올해도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에 비해서는 다소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동산 두바이유의 가격은 1분기 배럴당 110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3월 이후 하락해 2분기에는 100달러 내외에서 등락을 거듭했고 3분기 들어서는 다시 100~110달러 범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올해 8월까지 두아비유의 평균 가격은 배럴당 약 105달러로, 지난해 연평균 가격인 109달러에 비해 4달러 정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올해 원유가격을 상승시키거나 하락시키는 요인이 시시각각 발생했지만 하락 요인이 상승요인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원유가격의 하락세에 기여한 요인은 크게 두가지다. 세계 석유시장의 공급과잉과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다. 먼저 세계 석유시장은 석유수요 증가세가 둔화된 가운데 북미지역의 셰일가스와 오일샌드 등 비전통 원유의 생산 증가로 2012년 1분기 이후 6분기 연속 공급과잉이 지속되고 있다.

올 들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수급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해보다 원유생산량을 큰폭으로 줄였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등 비OPEC 국가들의 생산증가로 공급이 수요를 계속 초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1~7월의 공급과잉 규모는 대략 하루 100만 배럴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세계 원유재고도 예년보다 높게 유지되고 있다. OPEC 국가의 원유재고는 과거 5년 평균보다 3% 높은 수준이다. 특히 미국의 원유재고는 과거 5년 평균치를 19% 정도 상회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중국 경제성장 둔화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부진도 국제유가를 하락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초부터 회복세를 보이던 미국 경제는 지난 3월 시퀘스터(미국 연방정부의 예산 자동 삭감 장치)가 발동되면서 다시 하락세를 띠었다. 또한 미국의 양적완화정책이 조기 종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총선 이후 국정공백이 있었던 이탈리아와 경제위기로 구제 금융을 신청한 키프로스로 인해 EU의 경기침체는 계속됐다.

올해 원유가격 상승에 기여한 요인은 시리아 내전ㆍ이라크 종파 분쟁ㆍ이집트 시위 등 중동ㆍ아프리카 지역의 지정학적인 문제들이다. 시리아 내전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동 주변국이 부분적으로 무력 개입을 했고 서방세계 역시 반군에 대한 군사지원을 결정해 시리아 내전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라크에서는 시아파와 수니파간의 종파 분쟁으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와 터키를 잇는 키르쿠크-제이한 송유관의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집트에서는 모하메드 무르시 정권에 대한 시위가 1월 이후 지속됐다. 지난 7월 3일 무르시 정권은 군부에 의해 축출됐다. 하지만 이후 무르시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양한 변수에 출렁이는 유가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이란과 서방국가 사이의 대립은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이란의 원유수출을 제한하는 서방측의 각종 제재는 계속 이어졌다. 올해 남은 기간의 국제 원유가격은 세계 경제상황과 석유수급 상황, 지정학적 문제는 물론 달러화 가치ㆍ투기성 자금의 움직임ㆍ기후ㆍ석유시설과 관련한 사고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국제 원유가격 하락 요인인 ‘석유시장 공급과잉’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상승 요인인 ‘지정학적 문제’가 서로 줄다리기를 하면서 상반기와 비슷하거나 다소 낮은 배럴당 103~105달러(두아비유 기준)에서 평균 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집트 사태 등 지정학적 문제로 공급차질이 발생할 경우에는 추가로 상승해 110달러를 넘을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악화되거나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위기가 확산될 경우에는 유가가 100달러 아래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유가의 두가지 시나리오가 있다는 얘기다.

이집트가 산유국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 석유수송의 요충지인 수에즈운하를 운영하고 있어 이집트의 정정불안이 수에즈운하 폐쇄로 연결될 경우 일시적인 원유가격 폭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원유와 석유제품 수송량은 지난해 기준 하루 297만 배럴로 세계 석유 교역량의 5.4%를 차지했다. 원유는 주로 중동 지역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수송되고 석유제품은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싱가포르ㆍ중국ㆍ인도 등 아시아로 수송된다.

물론 이집트 정부가 수에즈운하 주변의 보안을 강화하고 있어 운하가 폐쇄될 가능성은 적다. 또한 운하가 폐쇄돼 원유가격이 폭등하더라도 그 기간이 길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운하가 폐쇄되면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경유하는 대체 항로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희망봉을 경유할 때 수송기간은 중동에서 유럽까지는 약 15일, 미국까지는 23~25일이 소요된다.

시리아 내전이 악화되는 상황도 유가 상승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시리아 내전은 단순한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 그 배후에 종파적ㆍ인종적 갈등과 주변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시리아는 시아파의 한 분파(알라위파)인 소수 지도 세력에 다수의 수니파가 대항하는 전형적인 이슬람 종파문제를 갖고 있다.

또한 쿠르드족이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게다가 주변 국가인 이란과 이라크는 정부군을 지원하고 사우디와 카타르는 반군을 지원하고 있어 이들 국가로 분쟁이 확산되면 세계 석유공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정학적 문제 외에도 석유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멕시코만의 허리케인 피해가 있다. 일반적으로 허리케인 시즌은 6월부터 11월까지 지속된다. 멕시코만에는 미국 원유생산시설과 원유정제시설의 25%가량이 밀집돼 있다. 미국해양기상청(NOAA)은 올해 예상되는 허리케인이 7~11회이고 석유시설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카테고리 3이상의 허리케인은 3~6회 발생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허리케인 피해로 인해 원유와 석유제품의 공급차질이 발생한다면 유가는 당연히 요동칠 것이다.

이집트 정정불안, 원유가격 끌어올릴 수도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악화되거나 아시아 신흥국의 금융위기가 확산되는 유가 하락 시나리오의 가능성도 있다. 유로존은 유럽중앙은행(ECB)이 국채매입을 실시하고 유로안정화기구(ESM)를 통해 구제 금융을 제공받아 금융경색 우려가 완화됐다. 하지만 그리스와 스페인이 지원의 전제조건인 재정 긴축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행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또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문제는 언제든 다시 등장해 세계 경제와 국제 석유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미국이 9월부터 양적완화를 축소할 것이란 전망으로 투자자들이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으로부터 급격히 자금을 회수한다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돼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세계경제의 위험요소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는 석유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원유가격이 크게 하락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고유가 시나리오와 저유가 시나리오를 제외하면 올해 하반기 세계 석유시장은 지정학적 요인보다는 세계 경제상황과 수급 요인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원유가격의 하향 안정화가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dslee@keei.re.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